통신비 논란 2막…보편요금제 공방 스타트

선택약정보다 치열…규개위 심사 결과 주목

방송/통신입력 :2017/11/08 08:25    수정: 2017/11/09 15:00

“제가 미국에 꽤 오랫동안 있어봤지만 한국처럼 통신비 인하 이슈가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 고위공무원)

“통신비 이슈가 끝날 수 있을까요. 아마도 통신비가 0원이 되지 않는 이상 계속 될 것이라고 봅니다.”(이동통신 유통업계 관계자)

“ICT 이슈는 통신비 밖에 없나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관련 산업 육성 정책이나 규제 해소 얘기는 없고 온통 통신비 인하 얘기뿐이네요.”(ICT 산업 종사자)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면 항상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이슈가 통신비다. 공약에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통신비 인하다. 올해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지만 유독 심하다.

기본료 폐지로 시작된 통신비 논란은 선택약정할인율 인상과 취약계층에 대한 통신비 인하를 거쳐 국정감사에서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핫이슈가 됐고, 이제는 보편요금제로 불씨가 옮겨 붙고 있다.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업계에 따르면, 보편요금제와 신규 기간통신사업자의 허가제→등록제 전환 등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이르면 이달 중 국무총리실 산하의 규제개혁심사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통상 해당 주무부처가 법 초안을 만들고 공청회에서 의견수렴을 한 뒤 규개위 심사를 받게 되면 이후 법제처 심사와 차관·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면 법제처가 최종 정부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연말까지 개정안을 해당 상임위에 제출할 계획이지만 남아 있는 일정이 빠듯하다”며 “예상 일정보다 약간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완전자급제보다 보편요금제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이동통신 유통시장의 판을 크게 뒤엎는 일이라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결론 낼 이슈는 아니다. 여기에 완전자급제가 도입될 경우 선택약정할인과 지원금이 사라지고 소비자 편익이 줄어들 수 있어 지루한 논의가 예상된다.

때문에 단기적으로 향후 통신시장의 핫이슈는 보편요금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논쟁의 시발점은 규개위 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입 취지와 달리 보편요금제 자체가 기업 경영권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과거 규개위는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 내에 분리공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제조사의 해외 영업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무산시킨 바 있다.

신광석 KT 재무실장은 지난 1일 “정부가 지난달 2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현재 규개위 심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보편요금제는 시장에서 결정되는 요금 수준을 법률로 직접 규제하는 것으로 해외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고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규개위 심사가 쉽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면서 “보편요금제 도입에 따른 우려를 해소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 보편요금제 찬반 ‘팽팽’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기획한 이유는 저소득층에 대한 통신비 인하를 위해 직접 소매요금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요금감면과 별도로 고가요금제 위주의 이동통신사 마케팅에 저소득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구상하는 보편요금제는 월 2만원대 요금으로 음성 150~210분, 데이터 900MB~1.2GB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2년 마다 일반인의 평균 이용량을 계산해 이를 조정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보편요금제를 반대하는 사업자 측에서는 도입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과도한 경영권 침해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사업자의 요금제를 직접 설계하고 따르도록 하고 있는데다 2년을 주기로 인위적 간섭이 지속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요금제 구조를 보편요금제에 맞춰 일괄적으로 하향 조정해야 하고, 이러한 틀 안에서 요금제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일례로 SK텔레콤의 월 3만2천890원인 밴드 데이터 세이브 요금제가 음성 무제한, 데이터 300MB를 제공하고 있는데, 보편요금제가 출시되면 요금과 음성 데이터 제공량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또 이에 맞춰 도미노처럼 나머지 요금제도 손을 봐야 한다.

결국, 보편요금제 출시는 보편요금제 자체의 이슈뿐만 아니라 이통사의 요금제 전체를 공공요금과 같이 정부가 직접 조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갈등의 원인이다.

유영상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은 “보편요금제는 정부가 민간의 통신서비스 요금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사업자 입장에서 수용하기 매우 어렵다”면서 “정부가 직접 개입해 인위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보다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알뜰폰 정책 포기?

이통사는 ‘경영 자율권 침해’란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데 반해, 업계 전문가들은 보편요금제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월 2만원대에 음성 150~210분, 데이터 900MB~1.2GB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누가 쓰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9월 기준으로 국내 이동통신 이용자의 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5천51MB(4.93GB), 4G 가입자는 6천628MB(6.47GB)에 이른다. 1GB를 조금 넘는 데이터로는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기도 어려울뿐 아니라 정부가 대상으로 삼는 취약계층에게는 2만원대 요금제도 부담이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이통사와 동일한 품질을 제공하면서도 요금이 저렴한 알뜰폰 업계만 고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만원대 보편요금제로 데이터 1GB를 주자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국민 데이터 이용량을 감안할 때 통신비 몇 천원 깎아주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소비자들이 만족할리도 없고 알뜰폰의 입지만 더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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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알뜰폰에는 2만원대 보편요금제보다 저렴하고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가 있다”며 “보편요금제는 정부가 통신비 인하의 대안으로 꼽았던 알뜰폰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석 KT 재무실장은 “보편요금제 도입은 이통사뿐만 아니라 알뜰폰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며 “기업의 요금설정 자율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입법 필요성도 낮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