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관점에서 보면 ‘에코(아마존 AI스피커)’도 로봇입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고요. PC, 스마트폰, 에코를 거쳐 ‘페퍼(소프트뱅크 로봇)’까지 왔습니다. 인공지능을 적용할 기기(디바이스)들이 계속 진화한 겁니다. 인공지능학자로서 너무 신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닮은 기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머신러닝 분야 대부다. 지난 30년간 머신러닝 한 분야만 천착해왔다. 석사와 박사 논문 모두 머신러닝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독일 본(Bonn) 대학에서 역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 교수는 “석박사 논문 모두를 머신러닝으로 한 것은 국내에서 내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머신러닝 원류인 인공지능을 전공한 사람들이 1990년대 인공지능 빙하기를 맞아 다른 데로 갔지만 나는 계속해 머신러닝을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머신러닝은 말 그대로 기계가 학습하는 것이다.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을 대변하는 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장교수는 석사학위에서 기계가 번역을 자동으로 학습하는 내용을 다뤘다. 박사 논문에서는 기계가 스스로 데이터를 찾아 다니면서 학습하는 자율적 아키텍처인 ‘지니(GENIE)’를 고안해 제시했다.
현재 인공지능과 머신러닝간 상관 관계는 90% 정도로 높아졌다. 특히 장 교수는 인공지능을 로봇에 접목하는데 관심이 많다. 지난 7월말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17 국제 로보컵 대회(RoboCup)’에 대학원생들과 팀을 이뤄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팀이 이 대회에서 우승한 건 처음이었다.
머신러닝과 ‘2017 국제로보컵 대회’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지난 5일 장 교수 일하는 서울대 컴퓨터공학연구소를 찾았다. 어릴 때 일본 로봇 만화 ‘아톰’을 보고 자란 장 교수는 63년생이지만 동안이다. 머신러닝과 AI로봇을 이야기할때는 소년 같은 표정이었다. 사람과 같은 기계를 만들고 싶은 게 궁극적인 그의 꿈이다. 조만간 대중을 위해 쉽게 쓴 머신러닝 책도 완성, 출간될 예정이다.
=2017 국제 로보컵 대회(RoboCup)에서 우승한 걸 다시 한번 축하한다. 어떤 행사인가.
▲우리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로봇이 얼마나 잘 수행하는 지를 겨루는 행사였다. 9명의 대학원생(이범진, 최진영, 박경화, 이충연, 백다솜, 패트릭 이마스, 한철호, 한동식, 최성준)과 팀을 이뤄 ‘오페어(AUPAIR)’라는 인공지능 로봇을 가지고 참가했다. 일상 환경에서 로봇이 서비스 임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경연 이름이 ‘소셜 홈 로봇’이다.
음식 주문 등 8개 시나리오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를 놓고 점수를 매긴다. 칵테일 파티 서비스의 경우 파티장으로 꾸며진 환경에서 손님이 테이블에서 말이나 손짓으로 호출하면 로봇이 다가와 음료를 주문 받고, 바에 주문을 한 후 다시 손님에 배달해야 한다. 손님이 주문한 음료가 없으면 다른 음료를 주문 받는 등 예외 상황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참가 팀 7곳 중 최고 점수를 얻어 1등을 했다. 2등과 점수차이가 컸다. 하지만 절대 점수로 보면 우리도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한국팀이 처음으로 참가해 우승했다는데, 또 어떤 의미가 있나.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이 대회는 의미가 매우 큰 행사다. 보통의 로봇대회는 움직임을 가지고 겨룬다. 축구로봇 대회가 대표적이다. 또 일반적으로 로보틱스하면 보스톤다이나믹스(미국 로봇회사)가 만든 로봇을 연상한다.
이 대회는 컴패니언 로봇, 로봇이 인간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회다. 로봇이 사람 말을 알아 듣고 이를 수행해야 한다. 가정 환경에서 로봇이 사람과 사물, 환경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 로봇이 가정용 로봇으로 발전해가는 정표를 제시하는 행사다.
=행사에 참가하고 나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 내년에도 참가하나
▲경연에 참가한 팀이 모두 일본이 만든 로봇 ‘페퍼’를 이용해 업무를 수행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이 아쉬웠다. 국산 로봇을 활용한 이런 대회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올해는 처음이라 가볍게 참가했는데, 내년에는 우승팀으로 참가하게 돼 어깨가 무거워졌다.
세계적으로 가정용 홈 로봇을 만드는 벤처들이 꽤 있다. 이중 중국 성장세가 놀랍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이 많았으면 좋겠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일등을 한 비결이 궁금하다.
▲이 대회는 꽤 오래됐다. 그런데 가정용(앳 홈)이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연 건 2006년부터다. 하드웨어보다 완전히 소프트웨어(SW) 경쟁이었다. 애플PC를 만든 워즈니악이 참석해 대회를 지켜보기도 했다. 이 대회는 기능적으로 인공지능 다운, 즉 로봇이 사람말을 알아듣고 제대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연구실에 경연장 같은 환경을 조성, 연구해왔다. 이게 비결인 듯 하다. 하지만 아직 개선점이 많다.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AI로봇은 무인자동차와도 비슷하다. 내년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머신러닝 대부라는데...
▲인공지능을 전공한 선배들은 꽤 있다. 하지만 나처럼 30년간 머신러닝을 한 사람은 없다. ‘고파이(GOFAI)’라는 말이 있다. ‘굿 올드패션드 AI’라는 말이다. 옛날 AI를 전공한 사람을 말한다. 인공지능 분야가 세계시장에서도 90년을 전후에 변화가 많았다. 빙하기에 들어갔다. 대부분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머신러닝이 기초 분야고,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초보다 응용을 강조하지 않나. 사실 기초 랑 응용은 종이 한장 차이다”.
=우리나라 머신러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분야에 따라 다르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게 제일 문제다. 머신러닝을 지금 있는 걸 하면 잘하는데, 조금 더 나가면 기초가 부족하다. 수학이 약하기 때문이다. 수학 잘하는 사람이 치고 나가면 머신러닝을 더 잘 할 수 있다. AI와 머신러닝간 상관성은 지금은 90%로 올라왔다. 원래는 아니었다. 사실 두 분야는 다르다. 원래 인공지능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러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모두 머신러닝으로 만든다.
5년전만 해도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다 머신러닝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 지금 컴퓨터는 아직 덤(dumb, 사람의 눈으로 보면 멍청하다는 의미)하다. 정말 똘똘한 기계, 사람 닮은 기계를 만들고 싶다. 계산만 잘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 같은 기계를 만들고 싶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뇌과학과 인지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2014년에 인지과학산업협회를 만들었고, 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는 인지과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지과학회는 학계 단체다.
=사람을 닮은 로봇 언제쯤 나올까
▲모른다(웃음). 글쎄, 내 대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머신러닝도 우연히 각광을 받은 것이다. ‘페퍼’는 사람을 닯은 로봇 관점에서 보면 100점에서 20점 정도 된다. 우리가 만든 ‘오페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말로 시작할 수 있는 20점이다. 이제 방향을 잡았고, 알고 갈 수 있는 단계다. 방향을 잡았으니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현재는 완전히 초기 단계다.
= 오래전부터 ‘홈 로봇’ 시대가 온다고 했는데...
▲그렇다. 나는 오래전부터 홈로봇 시대가 온다고 강조했다. 2015년에 홈로봇과 관련한 회사를 세운 것도 이때문이다.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나는 지금이 80년대 PC 붐과 비슷하다고 본다. PC 붐이 일던 80년대 처럼 인공지능 로봇이 이제 막 떠오르는 초기에 진입한 듯 하다. 페퍼가 각광 받고 있지만 누가 시장을 지배할 지 아직 모른다. 페퍼는 아직 가격이 비싸다. 새로운 시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강자가 나올 수 있다.
=아마존이 출시한 가정용 AI 스피커 ‘에코’가 로봇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
▲국내에서 로봇을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하드웨어(HW) 쪽이다. 인공지능이나 소프트웨어를 한 사람은 드물다. PC도 예전엔 그랬다. 애플컴퓨터는 당시 PC시장에 ‘파괴적 혁신’이었다. 내가 보기엔 AI로봇시장에선 애플컴퓨터 같은 ‘애플2’가 아직 안 나왔다.
내가 말하는 로봇은 광의의 로봇이다. 기계공학이나 로봇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에코’가 로봇이 아니겠지만, 인공지능을 전공한 내가 보기엔 ‘에코’도 로봇이다. 다른 말로 지능형 에이전트라고도 한다. AI 관점에서 로봇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지각행동을 하는 것이다. 90년대에는 이를 SW로봇, 지금은 봇이라 불린다.
애플의 ‘시리’도 마찬가지다. 시리 에이전트, 로봇SW다. 기계공학이나 로봇하는 사람들은 ‘조작(머니퓰레이션)’이 있어야 로봇이라고 하지만 AI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오래전부터 스마트폰이 로봇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왔다.
=회사를 설립한게 MIT 출신들이 만든 로봇 ‘지보(JIBO)’와 관련이 있다는데.
▲지보는 ‘에코’보다 더 AI스러운 기계다. MIT 출신들이 만들었다. 에코보다 지보가 로봇에 더 가깝다고 본다. 하지만 상용화하지 못했다. 아마존이 더 빨랐다. 지보를 보면서 내가 지보보다 더 나은 AI로봇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회사를 만들었다.
SW적으로 내가 지보보다 더 나은 기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2015년 7월에 써로마인드로보틱스라는 법인 회사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몇 년 후 실리콘밸리에 가서 사업할 생각이었다”.
=소프트뱅크가 만든 로봇 '페퍼'를 보면서 할일이 많아져 즐겁다고 했는데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디바이스와 연계,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디바이스를 비교하면, 예전 PC는 정말 구석에 숨어 있는 박스였다. 지각 능력이 없다. 인터넷이 생겨 지각 능력을 가졌다. 이후에 나온 스마트폰은 위치 센서 등을 달고 돌아다닌다. 지역 기반 서비스가 쏟아졌다. 모바일 시대가 된 것이다. 엄청난 시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스마트폰은 여전히 지각능력이 떨어진다. 여기서 나아간게 에코와 페퍼다. 페퍼는 움직일 뿐 아니라 스스로 환경을 이해하고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 스스로 사람이 명령한 일도 수행한다.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페퍼와 같은 하드웨어 플랫폼이 있다는 게 너무 신난다. 이런게 나오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인공지능적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볼 수 있다. 기계가 점점 사람다워 질 것이고, 이런 기계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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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머신러닝과 AI로봇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강하다. 디바이스와 AI를 잘 접목하면 무언가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아쉽다. 머신러닝과 AI로봇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해주고 싶은데 내 역할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3분의 2가 아직 없다. 세계 시장을 제패하려면 혼자 힘만으로는 안된다. 기술, 돈, 마케팅이 합쳐져야 하고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 연합군이 필요하다.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