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를 IT강국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기자가 아는 A는 중국통이다. 중국에서 초중고와 대학까지 나왔다. 10년 넘게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중국 모바일 비즈니스 환경을 설명하던 A는 “중국에서는 거리에서 물건을 사도 모바일 결제가 된다. 그런데 한국은 IT강국이라면서 인터넷 결제도 하기 힘들다"고 불평했다. 중국보다 뒤진 한국의 후진적 핀테크 환경을 지적한 것이다. 규제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얼굴이 다소 화끈거렸다.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을 지낸 한석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이 최근 한 강연회에서 OECD가 조사한 교육 현장의 ICT 친숙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교의 디지털 기기 접근성은 5.62로 OECD 평균(6.08)에도 못미쳤다. 순위로는 세계 22위였다.
다른 지수도 낮았다. 학교내 디지털 기기 사용 빈도는 세계 27위,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자율적 문제 해결지수는 세계 31위였다. 학생수 대비 PC 비율도 세계 32위에 그쳤다. 학교와 관련한 디지털 기기 지수들이 모두 OECD 최하위권이다. 한 원장은 “학교 디지털 기기에 관한한 우리나라는 IT강국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조사한 한국,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5개국간 분야별 ICT 기술 경쟁력 격차도 우리나라가 IT강국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IITP는 우리나라 IT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산학연관 전문가 5200여명을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이 결과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이 포함된 기반SW와 컴퓨팅이 74.1로 5개국 중 꼴찌였다. 미국을 100으로 했을때 20점 이상 차이가 났다.
4차 산업혁명 꽃이라 불리는 소프트웨어도 80점이 안됐다. 유럽(85.5)과 일본(80.1)에 뒤졌다. 단지 이동통신 분야만 91.4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뿐이다.
이런 자료를 접하면서 산업부 전 고위 관료가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차관까지 지낸 그는 기자를 볼때마다 “우리나라를 왜 IT강국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컴퓨터와 통신 분야에서 우리 제품이 뭐가 있냐”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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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이중 초고속인터넷만 보면 확실히 우리는 IT강국이다. 빵빵 터지는 인터넷 속도는 세계가 부러워 한다. 해외에 며칠 가 있다 오면 안다. 우리 인터넷이 얼마나 빠른지, 또 얼마나 감사한지. 초고속인터넷과 함께 TV, 스마트폰, 메모리반도체도 우리가 세계 정상이다.
유독 약한 게 소프트웨어다. 세상은 이미 소프트웨어가 접수했는데 말이다. 자동차는 오래전부터 달리는 SW가 됐고, 지속성장에 목말라하는 세계 기업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앞다퉈 디지털 전환(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 축은 소프트웨어다. 시가 총액 기준 세계 1~5위 업체가 다 소프트웨어 기업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맹렬히 집어삼키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IT강국이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