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대 영국 정부가 ‘일자리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무렵 보급되기 시작한 증기기관이 초래할 일자리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뒤로 이어질 엄청난 사회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까? 당시 산업의 중심이던 농민층의 급속한 붕괴로 인한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까? 훗날 역사 교과서에까지 올라온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을 방지할 수 있었을까?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호들갑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빗대 ‘한국인 특유의 냄비근성’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분명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열기가 과열된 건 사실이다. 웬만한 책이나 행사 제목엔 ‘4차산업혁명’이란 말이 붙는다. 그래야 흥행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쓰는 나라가 드문 것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진원지인 유럽 일부 국가들과 한국 정도만 이 용어를 쓰고 있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 대신 ‘인더스트리 4.0’을 국가적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 4차 산업혁명 열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가장 큰 비판은 ‘지금이 산업혁명적 상황이냐’는 부분이다. ‘원조 산업혁명시대’인 1780년대 만큼 기술이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느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일단 ‘지금이 혁명적인 상황이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한번 따져보자. 당연히 그 때만큼 급변하는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난 그건 ‘역사’와 현실의 차이에서 생기는 착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얘기인가? ‘역사 속 얘기’는 최소 10년 이상 단위로 묶여 있다. 때론 100년 가까운 기간을 한 시대로 묶어서 서술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수 천 년에 이르는 역사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 속의 우리는 하루 하루 느린 시간을 견뎌내면서 살아가고 있다. 거대한 물줄기 속에선 변화를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내가 18세기말 영국 정부가 ‘일자리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란 가정을 한 건 이 때문이다.
만약 그 당시에 누군가 “우리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조롱을 당했을 것이다. 여전히 조용한 삶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괜한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
‘이상한 소리내면서 달리는 마차’가 ‘말이 끄는 마차’를 집어 삼킬 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실제로 당시 많은 마차 주인들은 증기기관차 초기엔 ‘이상한 마차’를 비웃었다고 한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차가 마차를 집어삼킨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왜 한국만 유독 4차 산업혁명을 시끄럽게 외칠까?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때문에? 물론 그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알파고 충격’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이 4차 산업혁명을 외칠 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일 자리 500만 개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뉴스 정도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 달 여 뒤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의 바둑 대결 이후부터 4차 산업혁명 담론이 급속하게 확산됐다.
이전까지 ‘지능정보사회’란 이름으로 추진되던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에도 어느 순간부터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붙기 시작했다. AI의 위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면서 공포감이 커진 결과다.
■ 자율차-공유경제-AI,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기술일까?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선 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쓰지 않는 걸까?
현재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로 거론되고 있는 분야에선 대부분 미국이 앞서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같은 기술들을 주도하고 있다. 굳이 혁명이란 표현을 쓸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도 위기 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백악관 주도로 지난 해에만 세 차례에 걸쳐 AI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AI가 몰고올 사회 변화에 대응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보고서다.
반면 유럽은 혁신 산업 분야에서 미국에 주도권을 내준 상태다. 요즘처럼 연결된 세상에선 미국 주도의 기술 혁명이 진행될 경우 엄청난 파장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 당연히 혁명에 준하는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과연 지금이 혁명적 변화를 앞둔 상황일까?
대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과 비교할 경우 평온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정리된 역사’와 진행중인 현실의 차이에서 유래되는 것일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진 않는다. 점진적으로 발전되다가 어느 순간 사회 전체가 확 달라지게 된다. 물이 끓는 임계점과 비슷하다.
따라서 현재 세계의 기술 수준이 그런 임계점에 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몇 가지만 따져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버를 비롯한 자동차 공유업체들은 기존 택시 사업 모델을 뒤흔들고 있다. 에어비앤비 같은 사업 모델은 호텔 비즈니스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최근 등장한 인터넷은행 때문에 기존 은행 사업사업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은행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 자체를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AI 강풍도 생각보다 강하다. 그동안 전문직 영역으로 통했던 병원과 법률 서비스 쪽까지 위협받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자동차산업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
과연 이런 상황을 쉽게 넘길 수 있는 걸까?
■ 2007년의 혁신, 그리고 10년…녹록치 않은 미래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출간된 ‘늦어서 고마워’란 책에서 2007년을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꼽았다. 그 해에 아이폰이 등장한 것을 비롯해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주요 서비스들이 제 자리를 잡으면서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는 게 그 근거다.
지난 10년 동안 이런 기술들이 우리 사회를 꽤 많이 바꿨다. 뉴스 시장에서는 ‘패키지 상품’이 해체되고 기사 건별 소비가 일상적인 방식이 됐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 같은 기술들이 적용됐다. 일상 생활과 생산활동까지 바꿔놓을 엄청난 기술들이다. 이쯤되면 ‘기술적 변곡점’이 가까웠다는 진단을 한다고 해서 크게 어색하진 않아 보인다.
그래서 난 최근의 4차 산업혁명 담론이 근거 없는 호들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용어 과잉일 수는 있겠으나, 현재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관련 기술 경쟁에서 뒤진 곳일수록 부처를 아우르는 대책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한국형 4차 산업혁명 열풍의 진짜 문제는 '용어'에만 주목하고 '실체'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0여 년 전 웹2.0 열풍 때 그랬던 것처럼, 용어만 요란하게 떠들다가 마는 것이 가장 경계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8월 중 출범할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괜한 호들갑과 근거 없는 비판 모두와 거리를 둔 채 기술 발전에 차분하게 대응하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앞에서 나는 “1780년에 영국 정부가 일자리대책위원회를 만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면?”이란 질문을 던졌다. 안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랬더라면 뒤에 이어질 기계파괴운동 같은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랬다면 산업혁명이란 말 자체가 역사 속에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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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바라는 것도 그런 역할이다. 사회를 확 뒤집어놓는 혁명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발전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단 얘기다.
그래서 먼 훗날 “그 때 그런 단체가 있었지”라면서 즐겁게 회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