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시대, 잘 노는 인간이 필요하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문화경제의 힘' 저술

컴퓨팅입력 :2017/07/04 09:36

“4차산업혁명 시대 인재상이요? 잘 노는 거죠”.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거는 200여년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책을 출간, ‘놀 줄 아는 인간’이란 화두를 던졌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은 “4차산업혁명시대야 말로 놀 줄 아는 인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간과 기계의 극명한 차이가 놀 줄 아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런 생각을 담아 최근 ‘4차산업혁명시대 문화경제의 힘’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지난달말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있는 서울 선릉로에서 만난 최 위원은 “문화는 미래 변화의 트렌드를 읽는 가장 중요한 코드”라면서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비즈니스 기회도 잘 노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최 위원은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정치사회학 석사를, 마른 라 발레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콘텐츠란 무엇인가’ 등 다수의 문화 관련 책을 저술했다. 그가 일하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은 과학자 지원과 과학 대중화를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올해 설립 50년을 맞았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최 위원은 인공지능 전문가인 제리 카플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먼저 언급했다. 카플란 교수는 오래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AI발전으로 현재 인류 직업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로봇이 초래한 대량 실업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 한 바 있다. 카플란 교수 예상처럼 AI발전으로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언급한 최 위원은 “기계가 더 잘하는 걸 굳이 사람이 할 필요가 없다”면서 “노는 것은 인간이 기계보다 더 잘 할 수 있으니 학교도, 기업도, 놀면서 일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글 엔지니어 이사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기계 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날을 싱귤래러티(Singularity)로 표현했다. 최 위원은 싱귤래러티 시대가 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기본적으로 나는 미래를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로 본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이라는데는 동의한다는 그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어 정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4차산업혁명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뭐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느 나라 교과서에도 1차, 2차라는 말은 없다.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만 나온다. 4차산업혁명은 공식적 학술용어가 아니다”면서 “용어의 정의를 떠나 기술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변화시키는 지를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로봇세 도입을 이야기하는 등 기술과 사회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최 위원은 우리도 이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어떤 새로운 제도나 기술이 등장하면 부작용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인공지능이 부작용까지 해결해주지 못한다. 결국 인간이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조정해야 하는데 여기서 문화경제의 중요성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이 쓴 책 '4차산업혁명시대 문화경제의 힘'.

그는 문화와 감성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은 예화로 설명했다. 한 맹인 거지가 구걸을 하는데 구걸 문구를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못보는 불쌍한 맹인입니다. 제발 한 푼 보태주세요’라고 썼더니 돈이 잘 모으지 않았다. 지나가던 어느 시인이 이 문구를 ‘나는 봄이와도 꽃을 보지 못합니다’고 고쳐썼더니 이전보다 훨씬 많은 돈이 쌓였다는 것이다.

최 위원은 과학기술도 문화의 일부라면서 “모든 사업은 상상력,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성패는 문화에 달려 있다. 4차산업혁명 같은 경제현상이 눈에 보이는 물결이라면 그 저변에 흐르는, 잘 보이지 않는 큰 해류가 문화현상”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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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BM이 만든 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온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을때도 충격적이었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결은 그 이상의 충격과 두려움을 우리 사회에 안겨주었다고 설명한 그는 “문화는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4차산업혁명시대에도 문화 같은 소프트파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와 자동화로 사람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고, 또 사람은 즐거워야하므로 앞으로 서비스 산업쪽에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 그는 “4차산업혁명 같은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 창조성, 감수성이 뛰어나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통섭형 인재’가 필요하다”면서 “창조계급이 주도하는 21세기에는 ‘아웃라이어’와 괴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