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알파고가 또 다시 인간 바둑 최강을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인공지능(AI) 파워를 만천하에 과시했다. AI가 인간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인터넷서비스, 전자상거래, 핀테크, 사이버보안, 애드테크 등 전 산업분야에서 AI를 적용해 보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AI 연구가 가장 뜨거운 분야 중 하나가 헬스케어다.
이 분야에서 AI가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경우 엄청난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볼 수 없던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기본이고, 환자의 증상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한 덕이다.
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헬스케어 AI 스타트업들에게 많은 자금이 몰리고 있다.
■ 헬스케어 AI, 2조원 투자금 몰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헬스케어 AI 분야에 270건 18억달러 투자가 진행됐다.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2조196억원에 달한다. 2012년만해도 헬스케어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20건에 그쳤으나 지난해부터 70건으로 늘었다. 올해 3월 기준 헬스케어 AI 스타트업은 22건 거래를 통해 1억3천200만달러를 모았다.
헬스케어 AI 스타트업들은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신약 개발 시간을 줄이거나 환자들을 위한 가상 비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의료영상을 더 정확히 분석해 오진을 줄이는 것도 AI의 몫이 돼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 중에는 IBM 왓슨 그룹이 익스플로리스, 파이텔, 머지헬스케어 등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이들은 IBM 왓슨 그룹이 전 세계 병원과 파트너십을 맺어 수백만명 환자들의 진료기록과 각종 데이터 수치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최근 다시 알파고 열풍을 불러왔던 구글 딥마인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만들어진 딥마인드 헬스 이니셔티브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운영하는 NHS 신탁재단과 협업해 영국 런던 소재 병원 3곳으로부터 의료데이터를 제공받아 환자가 급성 신부전증에 걸릴 위험성을 미리 예측하는 모바일앱 '스트림스(Streams)'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프로스트앤설리번 하프리트 싱 부타르 애널리스트는 "2025년까지 AI 시스템은 인구통계학 상 국민건강관리에서부터 디지털 아바타로서 환자의 특정한 질문에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수준까지 모든 영역에 연동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지난해에는 2개 유니콘 스타트업이 출현하기도 했다. 미국 회사인 플래티론헬스(Flatiron health)는 머신러닝을 이용해 환자의 전자건강기록(EHR)에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 병원, 주요 헬스케어 회사들이 암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플랫폼을 만들었다.
중국 회사인 아이카본X(iCarbonX)는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를 위한 AI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질병 치료, 예방의학, 환자 특성에 따른 정밀한 영양분 공급 등을 목표로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래에 개인별 맞춤형 신약개발에도 이런 기술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카본X는 1억5천400만달러를, 플래티론헬스도 1억달러 이상 투자금을 유치했다.
■ 의료영상서 신약개발, 암치료까지…생태계 보니
헬스케어 AI를 구분해 보면 먼저 의료영상 분석 분야가 가장 주목된다.
구글 리서치 의학 영상팀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의료영상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당뇨병성 망막증, 암 조기 발견 분야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 환자 안구 뒤쪽인 '안저'를 촬영한 고화질 사진을 분석해 심층 인공신경망(deep convolution neural network)에 학습시켰다. 그 결과 의사들의 판단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질병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유방암이 림프절로 전이된 정도를 판단하는데 인공신경망을 적용해 암의 위치를 추정한 정도를 나타내는 점수(FROC)에서 89%를 기록했다. 인간 병리학자에게 시간제한 없이 분석을 수행토록 할 경우 이 점수는 73%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구글 리서치 의학 영상팀 릴리 펭 프로덕트 매니저는 AI도 오판을 할 수 있는 만큼 병리학자들이 오판이 난 경우에만 추가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협업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CB인사이트 선정 100대 AI 기업 중 하나로 꼽힌 국내 스타트업 루닛은 X-레이로 촬영한 사진을 분석해 질병 여부를 판단한다. 이 회사 이정인 최고제품책임자(CPO)는 "CT, MRI 등 의료영상을 보는 회사들도 있지만 X-레이의 경우 더 적은 정보만 갖고 분석을 해야한다는 점이 어려운 작업"이라며 "우리 외에도 엔리틱(Enlitic), 지브라메디컬 등이 임상실험, 인허가 신청 등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원격환자모니터링 분야에서는 딥마인드가 개발한 스트림스가 대표적이다. 영국 런던 소재 바빌론헬스의 경우 구글 딥마인드, 킨네빅이라는 투자사 등을 통해 지난해 2천500만달러 시리즈A 펀딩을 받았다. 이 회사는 AI 기반 채팅 플랫폼을 만드는 중이다. 미국 뉴욕 소재 AI큐어는 여러 투자사 연합으로부터 1천230만달러 시리즈A 펀딩을 받았다. 이 회사는 AI를 활용해 환자들이 자동으로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센스닷리는 가상 간호사 '몰리(Molly)'를 서비스 한다. 몰리는 의료진들에게 그들의 하루 일과 중 20%를 돌려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센트리언은 생체센서데이터를 분석해 환자들 마다 서로 다른 증상에 대한 알람을 의료진에 제공한다.
국내 기업 중에는 헬스케어챗봇이 GSK, 먼디파이, 페링 등 글로벌 제약사와 싱가포르국립대학병원에 환자 치료 계획(케어플랜)에 따라 먼저 말을 걸어주는 AI 기반 챗봇 '바이터스(VITUS)'를 개발, 공급했다.
신약 개발 분야에도 AI 열풍이 부는 중이다. 이들은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시간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리콘밸리 유명 IT 벤처 투자사 앤드리센 호로위츠는 올해 초 투XAR(twoXAR)이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이 회사는 'DUMA'라는 신약 개발 플랫폼을 고안해 냈다. 아톰와이즈(Atomwise)라는 회사는 지난해 AI 기술을 활용, 에볼라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암 치료 분야에서는 IBM 왓슨 그룹이 지원하는 패스웨이제노믹스도 주목할만 하다. 이 회사는 새로운 혈액 테스트 키트인 '캔서인터셉트디텍트(CancerIntercept Detect)'를 연구 중이다. 혈액샘플을 수집해 한번도 병원에 온 적이 없었던 사람들을 진찰하거나 가능하다면 초기에 질병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아예 헬스케어 전용 AI 알고리즘만 개발하는 회사들도 있다. 아야스디(Ayasdi)는 위상학적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머신 인텔리전스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를 환자 위험 지수 측정, 재입원을 줄이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헬스케어 기업들에게 제공한다. 이밖에 H2O.ai, 디지털 리즈닝 시스템 등이 이 분야에 속한다.
■헬스케어 AI, 프라이버시 보호-인허가 지연 과제 넘어야
커제 9단을 이긴 알파고 마스터에 대해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알파고 마스터는 더 범용성을 추구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알파고팀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실버 책임 개발자는 "AI는 사람들을 돕는데 매우 놀라운 도구"라며 "(여러 분야에서)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량을 따라잡기가 역부족인 상황에서 AI가 과학자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의사들이 환자를 더 잘 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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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에서 AI 기술을 직접 보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 개인 데이터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에 더해 FDA와 같은 공인된 기관으로부터 임상실험 결과 문제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고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스케어 분야는 바둑을 이기거나 일정을 관리해주는 AI비서와 달리 인간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영역인 만큼 투자금이 쏠리고, 기술개발이 활발한 분야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