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용량 전쟁 끝났다…이젠 기능 싸움

용량·품질 차별화 한계…AI 적용 편의성 강조

홈&모바일입력 :2017/04/07 08:00

냉장고 업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업체들은 제품의 '용량'을 두고 논쟁하던 과거 방식을 벗어나 이제는 저마다 다른 첨단 기능으로 경쟁사에 맞서고 있다.

5일 냉장고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업체들은 냉장고의 크기와 용량을 부각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기능의 차별화와 이용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냉장고 제조업체들은 올해들어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냉장고를 속속 출시하며 제품의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냉장고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업체들은 냉장고의 크기와 용량을 부각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기능의 차별화와 이용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픽사베이)

■ 냉장고, 이제는 ‘인공지능·IoT’ 시대

삼성전자는 지난달 28일 스마트 기능을 대거 탑재한 ‘2017년형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 냉장고를 출시하며 '똑똑한 가전'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는 가정 내의 모든 가전이 하나로 연결되는 IoT를 주요 테마로 내세운 프리미엄 냉장고다. 제품에는 음성 인식을 통해 이용자의 말을 글로 바꿔 전송하는 ‘스피치 투 텍스트(Speech To Text)’ 기능과 더불어, 디스플레이를 터치해 그 자리에서 장을 볼 수 있는 기능도 내장됐다.

삼성전자가 신제품을 출시한 바로 이튿날인 지난달 29일, LG전자는 사용자의 이용 패턴을 파악하는 '인공지능 디오스 냉장고'를 출시하며 반격에 나섰다.

LG전자가 출시한 인공지능 디오스 냉장고는 제품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인공지능(AI)'이 주 무기인 제품이다. 도어가 열리는 횟수와 시간을 '딥러닝'으로 분석해 사용자의 제품 이용 패턴을 파악한다. 사용량이 적은 시간엔 '자동절전운전'을 가동해 전기료를 절약한다. 또한 제품이 설치된 장소의 온도·습도를 파악해 음식물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양사는 이처럼 올 초부터 '용량'이 아닌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관련 '첨단 기능'이 특화된 제품들을 각각 공개하며 소비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업체에서 배포하는 제품 관련 보도자료 역시 기능에 초점을 맞춰 제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지난달 출시한 '인공지능 디오스 냉장고'(왼쪽)와 '2017년형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오른쪽).(사진=삼성전자,LG전자)

■ 예전엔 ‘용량 싸움’ 치열…‘10리터’로 법적 논쟁 벌이기도

불과 5년 전, 국내 냉장고 업계의 화두는 바로 '용량'이었다. 업계의 양대 산맥인 LG전자와 삼성전자는 냉장고 용량 문제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한 경쟁 구도를 그려왔다.

양사의 본격적인 용량 경쟁은 지난 2010년 LG전자가 800리터급 냉장고를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이를 지켜보던 삼성전자가 820~840리터 냉장고를 선보인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2011년, LG전자가 전년 제품과 비교해 용량을 50리터 늘린 850리터짜리 냉장고를 출시해 전세를 역전했지만 같은 해 삼성전자가 860리터 용량의 냉장고를 출시하면서 경쟁은 극에 치달았다.

이러한 냉장고 업체들의 끝없는 '용량 싸움'은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2012년 삼성전자가 LG전자의 냉장고 제품에 물을 부어 실제 용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하자 LG전자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광고금지 가처분 소송에 나선 것이다. 이 때 두 회사 제품의 용량 차이는 단 10리터였다. 세계 최대, 국내 최대 등 ‘최대’ 타이틀 때문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냉장고 업계 경쟁이 시작됐던 7~80년대부터 누가 '더 예쁘고 큰' 냉장고를 만드는가가 최대의 관심사가 됐다"며 "경쟁사와 비교해 더 커진 냉장고 용량은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선점하는 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창기 냉장고는 주로 신문의 지면 광고를 통해 용량과 디자인을 크게 부각시켰고, 이 추세는 90년대, 더 나아가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9월 삼성전자가 유튜브에 올린 '냉장고 용량 불편한 진실 2편' 영상 캡처. 당시 삼성전자는 자사의 900리터 냉장고와 LG전자의 910리터 냉장고에 물을 넣어 비교했다. 이후 이러한 양사의 용량 경쟁은 법정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된다.(사진=유튜브)

반면, 6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홈페이지를 통해 살펴본 가전 제품 보도자료에는 용량 정보가 글의 말미에 살짝 나와있을 뿐 제목과 주제부에 언급되진 않았다. 지난달 양사가 각각 출시한 신제품의 소개 페이지에도 제품 용량은 '스펙(정보)'에 각각 825리터(LG), 919리터(삼성)라고 짧게 언급돼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두 제품간 용량이 94리터가량 차이가 나지만 양사는 이 부분에 집중하지 않는다"면서 "과거엔 가정용 냉장고의 용량과 디자인이 천차만별이었지만 최근 중형·대형 냉장고로 용량이 이원화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슷한 크기의 냉장고들이 각기 다른 첨단 기능을 냉장고에 집어넣어 차별화를 꾀하는 이른바 '기능'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맥락으로 지난해 LG전자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품 선호도 조사에서 냉장고 제품의 용량보다는 사용편의성 개선 요구가 더 높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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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한 가전매장에서도 냉장고의 용량보다는 기능 등의 요소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날 김미향씨(43, 서울 연희동)는 "일반 구매자 입장에선 용량 차이를 피부로 느끼긴 어렵다"며 "선호하는 브랜드에 따라 결정하거나 기능면에서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고 구매한다"고 말했다.

홍대 인근 가전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냉장고를 보러 온 손님에게 제품의 용량 등을 설명해주기는 한다"면서 "결국엔 비용이나 기능에 따라 제품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중에 출시된 냉장고들의 용량·품질 측면에서 더 이상의 차별화가 어려워 이제는 업체간 기능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