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작업이 당분간 보류된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따른 부정적인 여론을 극복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대내외 환경 악화로 이사회 투명성 강화를 위해 추진하려던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 영입도 보류됐다.
삼성전자는 경영진들을 중심으로 경영 정상화와 신뢰 프로세스 회복, 주주가치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24일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제48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연결기준으로 매출 202조원과 영업이익 29조원 달성 등 경영 성과 보고와 함께 ▲재무제표 승인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 의안을 처리했다. 지난해 390억이던 이사 보수한도는 올해 550억원으로 160억원 늘어나게 됐다. 신규 이사 선임 안건은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기소에도 불구하고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 사내이사진은 이재용 부회장과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의 4인체제가 유지된다.
이날 주주총회는 총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 처음 열린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의안은 모두 원안대로 처리됐지만 일부 주주들이 비선실세 최순실 일가 지원이나 반도체 사업장 백혈병 문제 등을 지적하는 주주 발언을 이어가면서 처리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날 주총장 밖에서는 반올림 주최로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 이사직 해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주주총회 의장을 맡은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은 1시간 45분 간 주주들의 쓴소리를 모두 들으면서도 잘못된 지적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해명에도 나섰다.
권 부회장은 최순실 일가 지원에 대한 한 주주의 지적에 "삼성전자의 연간 기부나 후원활동 지원 금액이 5천억원 정도 규모이며, 전통적으로 관행적으로 진행되던 후원활동이었는데 본의아니게 물의를 일으켰다"면서 "다만 집행 과정은 결코 불법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정상적인 업무 프로세스로서 진행됐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주주총회에 참석한 네덜란드 자산운용사 APG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대한 대처 및 발전 방향과 향후 지배구조 측면에서의 관리 감독 기능 강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권 부회장은 이에 대해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이사회 다양성 및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수립했고, 대외 후원금 등 집행 프로세서 강화, 후원금 출연금 등에 대해서 사전에 심의하고 분기별로 운영현황을 집행 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했다”면서 “거버넌스 위원회도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될 것이고 이사회 다양화는 지속될 것이며 글로벌 경험을 갖춘 사외이사 영입을 지속 검토하고, 경영활동이나 기부, 모든 활동에 대해서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의 투명성을 재고해 주주분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12살 어린이의 주주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12세 유 모군은 "주주총회에 처음 참석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갤럭시노트7처럼 폭발하는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주주총회 역사 상 제일 어린 주주인 것 같다"면서 "역사에 남을 일 같다"고 화답했다.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지주회사 전환 작업은 당장 실행이 어려워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공식화하면서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안 마련에 최소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6개월이 되는 시점인 오는 5월 말 삼성전자가 검토 결과를 밝힐 것으로 예상해왔다.
하지만 지난 2월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여론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지주회사 전환에 부정적으로 바뀌고 지주회사 전환을 어렵게 하는 법안들도 발의되면서 빠른 추진이 어려워졌다.
권 부회장은 지주회사 전환 등 사업구조 검토와 관련해 "법률, 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를 진행한 뒤 결과를 주주들에게 공유하겠다"면서 "다만 검토 과정에서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해 지금으로서는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 출신 사외이사 선임 작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권 부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 경험을 가진 외국인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다각도로 영입을 추진해 왔지만 최근 회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번 주총에서 후보 추천을 하지 못했다"며 "글로벌 기업의 경험과 충분한 자질을 갖춘 사외이사 영입에 대한 회사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11월 발표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서 밝힌 것과 같이 예정대로 진행된다.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30% 증가한 4조원 규모의 2016년 배당 ▲총 9조3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올 1분기부터 분기배당 시행 등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날 주총에서는 권오현 부회장(DS부문장), 윤부근 사장(CE부문장), 신종균 사장(IM부문장) 등 각 사업부문별 대표이사가 직접 지난해 경영 현황과 올해 사업 전략을 발표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지난해 최대 실적을 달성한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부품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은 올해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세와 OLED 채용 증가 및 LCD 대형화로 호실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메모리 사업은 2세대 10나노급 D램, 5세대 V낸드 등 첨단 공정을 적기에 개발해 기술 격차를 확대하고, 시스템 LSI 사업은 안정적인 10나노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오토모티브, 웨어러블, IoT 등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응용처 다변화를 통해 다양한 고객을 확보할 예정이다. 디스플레이 사업은 OLED 생산 능력 확대를 통해 플렉서블 전환 가속화를 추진하고 LCD는 퀀텀닷, UHD 대형 패널 등 고부가 제품 경쟁력 강화와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경영 현황 발표 중 중국 업체들의 반도체 사업 맹추격에 대한 전략을 묻는 한 주주의 질문에 권 부회장은 "반도체라는 것이 단기간 실적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 규모가 보도된 것만해도 200조원이 넘는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위협요소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기술 유출이나 인재 유출이 이뤄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소비자가전(CE) 부문은 올해 QLED TV로 12년 연속 세계 1위에 도전한다. 또 생활가전 사업에서도 패밀리허브2.0과 플렉스워시·플렉스드라이 등 혁신 제품을 바탕으로 지난해 성공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스마트 사이니지와 LED 디스플레이, 시스템에어컨과 빌트인 키친 등 기업간거래(B2B) 사업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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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IM(IT·모바일) 부문은 올해 5대 핵심 전략으로 ▲경영 전반에 품질 최우선 경영체제 정착 ▲브랜드 이미지 재건 ▲태블릿, 웨어러블, 액세서리, B2B, 온라인 사업 적극 육성 ▲라인업 효율화 및 유통구조·제조 혁신 추진 ▲지속 성장을 위한 미래 준비를 정했다.
신종균 IM부문장 사장은 "올해 스마트폰 시장은 한자릿수 성장률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지난해 갤럭시노트7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품질 최우선 경영체제를 정착하고 수익과 성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