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人은 왜 늘 약자 입장에 처하게 될까

[리셋 IT 코리아 1-2] 한국 개발자는 부품?

컴퓨팅입력 :2017/03/20 13:17    수정: 2017/03/20 13:53

김우용, 임민철, 임유경 기자

산업 생태계에서 소프트웨어(SW)를 비롯한 IT는 늘 약자였다. 부당한 요구나 관행에 저항하거나 자기 의지를 관철하기 힘들었다. 그 능력을 필요로하고 소비하는 누군가에게 휘둘려왔다.

왜 IT는 항상 약자일까. 어떤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걸까. 각계 각층 IT종사자들에게 자가 진단과 자문을 요청했다. 양상은 달랐지만, 흐름은 일정했다. 개인이나 일개 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화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에서 SW개발자는 부품처럼 소비됐다. 일반 기업내 IT담당 임원조차 때로는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됐다. 공공, 대기업이 IT기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용자와 구매자는 기술의 가치를 무시한 채 값싸게 이용할 방법만 궁리한다.

(사진=영화 찰리채플린 모던타임즈 중)

■ 개발자는 부품 취급

IT산업에서 SI프로젝트 현장은 프리랜서 개발자의 주 무대다. 그런데 현장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이 전문가가 아닌 부품에 불과했다고 한탄한다. 한 프리랜서 개발자는 국회사무처가 4년전 내놓은 'IT노동자 근로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보고서' 녹취록으로 담긴 집단인터뷰 중 이런 말을 남겼다.

“기술력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고용을 해서 파견 보내야 프로젝트 품질도 좋아지고, 우리도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까 인정도 받고요. 지금은 (발주처가) 아무나 데리고 와서 아무나 쓰는 마인드로 고용을 하니까 부품 취급을 합니다."

근본 문제는 중앙정부부처와 산하기관 등 '공공기관' 그리고 IT서비스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등 소위 '발주처'가 IT를 바라보는 인식이다. 발주처는 SW를 공장에서 제조한 물건 보듯 한다. SI 발주를 원하는 SW를 주문제작하는 것으로 여긴다. 수주업체를 결과물의 책임자로 삼는다. 개발자를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결과물을 구성하는 재료로 다룬다.

이런 인식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SW개발자 A씨는 200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다년간 SI현장을 경험한 16년차 프리랜서다. 그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서 발주하는 SI프로젝트 사업이 마치 조립제품 외주생산을 맡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조립라인처럼 돌아간다고 묘사했다.

"(발주처가) 내용 무시하고 1년 짜리 SI 프로젝트 발주하죠. 몇 달 안 되는 개발기간 잡아 퀄리티 엉망인 결과물을 만들고요.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 홈페이지처럼. 아무리 중요한 기술이나 서비스도 프로젝트 발주해서 업체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공공이든 민간이든, 발주처는 제조업 마인드에 머물러 있는 거죠."

SI프로젝트에서 인건비 항목은 부품단가처럼 취급된다 (사진=픽사베이)

SI프로젝트 사업계획에서 인건비 항목은 부품단가처럼 취급된다. '어떤 등급 개발자 몇 명을 몇 달 쓰니까 얼마'라는 식으로 산출되는 식이다. 등급별 인건비는 한국SW산업협회가 조사, 발표하는 SW기술자 평균임금을 근거로 한다. 협회의 SW기술자 등급은 실제 개발 역량과 무관하다는 비판에도 여러 SI프로젝트에 인건비 산출 근거로 쓰여 왔다.

이런 인식은 프리랜서 개발자를 SI 현장에 파견하는 군소 하도급업체, 일명 '보도방'의 경력 부풀리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업체가 신입에 가까운 개발자에게 현장 수요에 맞춘 허위 경력을 붙여 파견하는 수법이다. 업체는 태연하다. 발주처가 전문성 검증을 못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역시 A씨의 설명이다.

"오키(Okky, 개발자 커뮤니티)에 '경력 뻥튀기' 사례 많이 올라와요. '나 학원 6개월 다녔는데 5년 경력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 댓글에 '난 실제 경력보다 3년 더 붙였다'고. 당사자가 원한 게 아녜요. 보도방 사장이, 발주처에 단가 높여 받으려고 그래요. 잘 안 걸리죠. 개발자가 서너달 일하고 빠지는데. 업체가 부풀린 경력을 상위 SI업체가 숨겨 주는 셈이 되고."

발주처는 경력이 부풀려진 신입 개발자의 실력을 '실제 그 연차인 개발자의 수준'이라 여겨 얕보게 된다. 경력을 위조한 하도급업체 사장 역시, 그 차이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SW개발자의 경력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SI프로젝트 환경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 한 개발자가 전문성을 존중받긴 어렵다.

■ 직장 안에서도 얕보이는 IT 인력

IT종사자의 전문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식은 SI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 SW업체나 일반 기업 조직내 IT담당자도 전문성을 존중받기 만만찮은 건 매한가지다. 아무래도 기술에 무지한 비IT담당자와 기업 경영진의 시각이 그 배경으로 작용한다.

SW를 만드는 흔한 과정은 순차적인 기획, 디자인, 구현 모델이다. 기획자가 기획하고, 기획안을 받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디자인을 포함한 기획안을 받은 개발자가 구현한다. 이러다 막판에 일이 틀어진다.

흔한 사고는 앞 단계인 기획 담당자가 뒷 단계인 개발의 업무 특성이나 구현 과정의 기술적 제약사항을 고려하지 못해 생긴다. PC와 모바일용 솔루션을 B2B 형태로 공급하는 국내 SW업체의 프로젝트매니저(PM) B씨 얘기다.

"(SW개발 과정에) 기획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기획자 중에선, 개발을 잘 모르고 자기는 사용성 쪽만 안다는 기획자도 있어요. 그런 기획자가 기획서를 내놓으면 개발자가 봤을 때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의외로 기획자가 힘이 센 회사가 많죠."

조직 내에서도 IT종사자의 힘이 약한 경우가 많다(사진=픽사베이)

의사결정에서 기획자와 개발자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반영되지 않는 회사가 많다.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가 구현 요구사항으로 개발자에게 주어질 때 이를 바로잡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라고 강요당할 공산이 크다.

개발자만 겪는 일이 아니다. 웹개발을 처음 접한 지 이제 20년을 훌쩍 넘겼다는 개발자 C씨는 SW업체 최고기술책임자(CTO) 직함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무리한 외주 프로젝트를 사장이 밀어부쳤다가 엎어진 여러 사례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SW회사인데도) 기술전문가가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경영자(CEO)가 얼마 없죠. 기술전문가와 다른 경영진간 역할, 책임구조가 수평하지도 않아요. CTO가 의사결정에 관여한다기보다는, 권한 없이 책임만 지는 자리가 되죠. 금융권은 그래도 나아 보여요. 은행 전산 총괄하는 사람은 부행장급이고 해당 업무에 자부심도 갖고 있고…"

C씨는 조직 안에서 CTO를 비롯한 기술직군 업무가 영업이나 관리직 등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뒤처진다고 느꼈다고 한다. 기술직군의 역량과 축적된 경험을 인정해 주는 곳이 거의 없었다는 설명이다.

"일정직급 이상 올라가면 기술직군이라도 코딩을 못해요. 관리직이나 영업을 맡기죠. 고급인력인데 코딩하면 돈 아깝다 여겨서. 이렇게 생각 안 하는 기업을 한 번도 못 봤어요. (기술) 전문가가 그렇게 소비돼요. 조직 안에서 기술적인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직급을 높여갈 수가 없어요. 네이버 정도 돼야 펠로(fellow, 기술전문위원)같은 자리가 있지."

■ 정보화 한숨돌리자 ‘토사구팽’

인터넷업체가 기술전문위원을 두듯 은행이나 보험사는 자체 전산시스템을 구축, 운영, 관리하기 위한 최고정보책임자(CIO)를 둔다. 기업이 비즈니스에 필요한 기술을 찾아 도입하고 활용하는 전략을 짜는 임원급 기술직군이다. C씨 평가처럼, 금융권 조직내 기술직군의 권한과 책임은 다른 산업 분야보다 좀 나을까.

국내 금융사 CIO인 D씨를 찾아갔다. 그는 일반 기업 IT담당자를 거쳐 20년째 금융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조직내 IT전문가와 IT담당 부서의 위상이 시기에 따라 높아지기도, 다소 낮아지기도 한다고 묘사했다.

"국내서 CIO란 직책명이 대략 1997년부터 쓰였어요. …(중략)… 대개 COO, 일부는 재무책임자(CFO) 밑에 있었죠. 최근 생긴 마케팅책임자(CMO) 밑에 있기도 해요. CEO 직속인 경우는 초기에나 지금이나 드물어요. CIO가 CEO 직속으로 있는 기업에서 IT부문 위상, 정보화(프로젝트) 추진력 이런 게, 한다리 건너 있는 것보다 확실히 원활하죠, 아무래도."

정보화가 어느정도 달성되면 토사구팽 당하는 IT (사진=픽사베이)

D씨는 금융 전산화 사업이 한창일 때 IT의 위상은 다소 높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상대적으로 위상이 하락했단 얘기다. 왜일까. 그는 전산화사업 이후 인프라가 안정화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금융권에서도 IT의 중요성을 예전보다 덜하다고 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봤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기본적인 (금융) 전산화는 일단락 됐다 볼 수 있어요. 담당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토사구팽이라 볼 수 있어요. 전산화를 잘해놓고 나면 일어날 수 있죠. (전산화를) 너무 못 해도 문제지만, 너무 잘 해놓으면 (윗선에서) '뭐 이정도면 상무급이 해도 되겠네' 생각할 수 있죠."

다만 D씨는 IT의 위상이 앞으로 점차 더 높아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편이다. 담당자의 역량과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관점이다.

"지금처럼 (안정화 했다는 분위기에서) CMO에 맡긴다고 해도 조직 안에서 여러 담당자가 각자 IT를 활용하는 식으로 '분권화'하면, 다시 전체를 아우르는 사람(책임자)이 있어야겠다는 얘기가 나와요. 이 흐름에선 비즈니스 쪽만, 또는 IT쪽만 아는 사람이 아니고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죠. CIO의 역할은 토사구팽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발전한다 생각해요."

■ 한국은 ‘사상농공’이다

IT담당자와 조직의 위상 문제는 개인 기술직군이나 조직내 특정 부서에 국한하지 않는다. 자체 SW패키지 솔루션을 개발하거나 외주 SI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IT업체도 같은 처지다. 원인은 역시 솔루션을 구매하고 SI프로젝트를 발주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이다.

과거 한 시스템SW 업체 CTO 겸 대표였던 E씨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SW업체를 상대로 불공정한 거래관행을 강요해 국내 IT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객사를 상대로 상습적인 불공정거래를 강요당했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공공기관은 싸게 쓰고 부리기 쉬운 대상을 선호해요. SW판매단가, 유지보수료 깎으려 할 때 '안된다'고 해도 결국 깎아요. IT서비스업체를 안 거치고 대기업에 직접 납품할 수 없는 관행이 있고. IT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호주는 대우 좋고 적정 가격이 지켜지는 걸 보면, 구매 예산이 부족해서만은 아닌 거 같아요."

조선시대 사농공상이 현대에는 사상농공이 되었다는 자조적인 얘기도 나온다(사진=에듀넷 및 교육부 블로그)

E씨는 국내 SW업체들이 낮은 라이선스 가격과 유지보수 요율이 강요되는 불공정거래 환경 때문에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일단 저가, 저품질로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하니 수익이 나빠진다. 저수익 상태로 종사자 처우를 개선할 수 없으니 결과물 품질 개선도 안 된다. 품질은 제품 가격과 인건비 책정 수준의 발목을 잡는다.

"힘들게 일하며 죽지 않을 정도로만 버티는 상황이 되는 거죠. 각 고객사에 요구에 맞춰 커스터마이징을 하느라 원천SW 품질 높일 여력이 없고, 계속 그 상태에 붙들리는 거예요."

한 인터넷서비스 회사 CTO인 F씨도 대기업의 불공정한 거래 행태를 꼬집었다. 그도 과거 SI프로젝트를 뛰었던 프리랜서 개발자 출신이다. 그는 IT서비스 계열 회사를 동원해 그룹 전산화를 추진하면서 만들어진 구조가 불공정 거래를 조장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IT서비스 자회사는 기술적으로 가치를 주지 못하는 프로젝트 외주 관리밖에 할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자체 SW제품이 아닌 외주개발 전문업체의 사정이 열악한 배경도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 SI프로젝트 구조 때문으로 요약됐다. 이제는 SW업체 소속 PM인 B씨의 과거 경험담이다.

"전에 6개월 정도씩 다녀 본 회사 서너곳이 거의 다 망했습니다. (SI프로젝트 수주하는) 에이전시들끼리 가격 경쟁을 엄청나게 해요. 앱 하나 만들 때 순수 개발비를 5천만원으로 잡았다면 그게 수주 경쟁 하다 1천만원까지 떨어져요. 가격 안 낮추면 한 건도 못 따니까. 이런 걸 수십개 받아서 일단 돌립니다. 경영난이 심해지죠. 인건비도 안 남고."

SW개발자, IT전문가와 기업의 역할, 개발 솔루션과 서비스는 시장에서 많은 대체재와 경쟁한다. 제공하는 가치의 수준에 차이가 있음에도 가격은 하향평준화다. 사는 쪽에서 더 나은 가치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지나 가치를 알아볼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다시 웹개발 경력이 20년 이상 된 개발자 C씨의 진단이다.

"한국은 SW와 서비스같은 무형 자산이 산업을 주도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그런 인식이 성숙되지 않았어요. 조선시대 식으로 표현하면 그 땐 직업의 서열이 '사농공상'이었는데, 지금은 '사상농공'이겠네요. IT대국이라지만 이런 유교적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거죠. 이런 사회가 과연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지 의문이에요. 통신, 포털, 게임같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의 특정한 회사, 서비스에서만 그 역량을 소비해요. 일반 기업은 채산성이 낮아 싼 인력과 노동력을 충당하는 일자리만 만들고요. 작은 내수 기반 시장에서 더 저렴한 인건비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전문가가 필요치 않은 사회 아닌가 싶어요."

IT업계 종사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근본적 인식 전환을 호소한다. 부품으로 취급받고, 산업 피라미드 속의 최하층으로 존재하는 한 IT 경쟁력회복은 요원하다고 한다. 사실 해법은 이미 수년 간 논의됐다. 분명 해결의 실마리는 있다는 얘기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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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IT 개발자?…부품과 다를 바 없어요"

②IT人은 왜 늘 약자 입장에 처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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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용, 임민철, 임유경 기자yong2@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