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 올해 무슨 공부했나 살펴보면…

저성장·인구절벽·미래기술·국제정세 등이 화두

디지털경제입력 :2016/12/21 11:22    수정: 2016/12/21 11:38

이은정, 정현정 기자

올해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와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어느 때보다 뒤숭숭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삼성 사장단이 혼란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고민은 치열하게 진행했다. 특히 저성장 시대 해법 찾기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 미래 기술이 올 한 해를 관통한 화두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삼성 사장단 회의가 21일을 마지막으로 올해 일정을 마무리했다. 올해도 바쁜 일정을 소화한 삼성 사장단은 잠시 공백기를 갖고 내년 1월 둘째주부터 회의를 재개한다.

이날 삼성 계열사 주요 사장단은 삼성 서초사옥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사장단 회의에서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으로부터 '한국의 미래 - 전망과 대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지난해 마지막 사장단 회의에 정호승 시인을 초청해 시를 들으며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을 가졌던것과 달리 올해는 마지막까지 미래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계속됐다.

보통 매년 12월 첫 주 사장단 인사가 나면서 새로운 사장단이 상견례를 갖고 한 해를 마무리했던 에년과 달리 올해는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인사가 계속 미뤄지면서 어정쩡한 상태로 신년을 맞게 됐다. 또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 분석이 늦어지면서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스마트폰 사업 불확실성도 해결되지 않은 것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날 한 해를 보낸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영기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은 “내년에 잘하자”고 짧게 말했고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한 해 동안 진행된 강연에 대해서도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매우 유익하고 좋았다”는 소감을,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사장은 “항상 좋았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날 강연에 대해서도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4차산업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면서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사회 문화가 못 따라가는 것이 우려된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육현표 에스원 사장은 “장기적 불황 속 대책이 필요하고 솔루션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삼성 서초사옥

올해 삼성 사장단 회의는 지난 1월 6일 차문중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의 '2016년 주요 경제 이슈 점검'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45차례 진행됐다. 설 연휴(2월 10일)와 추석 연휴(9월 14일), 총선일(4월 13일)과 3주 간의 여름휴가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빠짐없이 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해 특정 주제에 대한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연 주제는 경영 현안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국제,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울렀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저성장 시대 해법을 찾기 위한 방안이 주로 모색됐다. 그 중에서도 올해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장기 불황 위기에 대응 방안이 화두였다. 지난 3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부터 '인구 변동으로 예측한 10년 뒤 사회'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삼성 사장단은 지난주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인구변동과 미래사회'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9월에는 장기 불황을 먼저 경험한 일본에서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 교수를 초청해 '일본 기업의 장기불황 극복'을 주제 강연을 듣기도 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주제도 빈번하게 등장했다. 특히 가상현실(AR), 인공지능, 드론, 로봇, 바이오헬스, 자율주행차, 에너지신산업 등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과 관련된 강연들이 많았다. ▲4차 산업혁명과 바이오테크놀로지(이상혁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자율주행차 관련 강의(선우명호 한양대 교수) ▲딥러닝: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최승진 포스텍 교수) ▲제약산업의 글로벌 트렌드와 신약개발산업(김성훈 서울대 교수) ▲포켓몬고 열풍으로 본 AR/VR 가능성(우운택 KAIST 교수) ▲현실로 다가오는 웨어러블 로봇 시대(한양대 로봇공학과 한창수 교수) 등 강연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국제 관계 분야의 강연이 많아진 것도 눈에 띄었다. 지난 1월 비크람 도라이스와미 주한 인도대사로부터 '변화하는 인도 경제 동향 및 전망'을 들은 것을 시작으로 ▲美中 관계와 한반도의 미래(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 ▲이란, 현황과 전망(송웅엽 외교특임대사) ▲영국 역사와 문화(설혜심 연세대 교수) ▲최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한국경제(조동철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세계무역질서의 변화와 신보호무역주의(정인교 인하대 교수) ▲문명 대전환기, 미국 대선결과의 파장과 시사점(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등 강연이 진행됐다.

경영 현안에 대한 강연들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6월 삼성전자 인사 제도 개편안을 앞두고서는 오세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로부터 '변화에 저항하는 기업문화 어떻게 바꿀까'라는 강의를 들었고, 지난 10월에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공개서한 형태의 주주제안을 보내기 일주일 전에는 정형진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대표로부터 '글로벌 헤지펀드 트렌드'에 대한 강의를 들어 눈길을 끌었다.

현안과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강연들이 주류를 이루기는 했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교양 강의들도 적지 않게 진행됐다. ▲조선의 형이상학적 미에 대해서(국민대 김개전 교수) ▲영화감독들의 리더십과 소통(이동진 영화평론가) ▲뇌를 즐겁게 하는 생각의 변화(윤대현 서울대병원 교수) 등이다. 지난 10월에는 '백년 허리' 저자인 정선근 서울대병원 교수로부터 허리 건강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주로 외부 강연이 많았지만 내부 강연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첫 강연자였던 삼성경제연구소 차문중 소장을 비롯해 지난 2월에는 구윤모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기술전략그룹 전무가 '가상현실 현황 및 기회'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고 백재봉 삼성안전환경연구소 부사장이 '2016년 안전 환경 추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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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 ‘수요회’를 모체로 하는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는 2010년 이건의 회장의 경영 복귀와 함께 현재와 같은 공부모임 형태를 띄게 됐다.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장 직함을 갖고 있는 임원진 50여명이 대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사업부 사장 등 오너 일가는 참석하지 않는다.

참석자들은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모여 약 1시간 동안 초청연사의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과 토론을 진행한다. 삼성 사장단 회의는 공식적으로 경영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자리는 아니지만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모두 모이는 만큼 재계 안팎의 관심을 받는다. 사장단 회의가 열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서초사옥 로비가 취재사진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한다. 미래전략실에서 담당하는 강의 주제와 강연자 선정에도 삼성그룹의 관심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