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올 3분기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이 의무화된 2010년 이후 전 분기를 통틀어 가장 저조한 실적이다.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에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신흥시장 판매 부진이 겹치면서 직전 분기 어렵게 반등했던 실적이 다시 크게 뒷걸음질 쳤다.
원화 강세가 지속된 환율 환경도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에겐 부담이 됐고, 수익성이 높은 내수시장에서의 부진도 2분기 어렵게 반등했던 분기 실적이 다시 역성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남은 4분기 상황도 여의치 않다. 내수시장에서는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판매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태풍 차바에 따른 공장 가동 중단 여파와 노후 경유차 교체 지원책이 정치권에서 표류하고 있는 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신흥시장 부진 지속과 YF쏘나타 리콜에 따른 비용 발생 부담도 추가 악재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전사적인 비상경영 조치에 돌입키로 했다. 현대차 임원들은 이달부터 급여 중 10%를 자발적으로 삭감키로 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수익성 악화 등 어려워진 대내외 경영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만 현대차는 다음달 출시 예정인 6세대 '신형 그랜저(IG)'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랜저는 1986년 1세대 모델 출시 이후 올해 9월까지 30년간 전 세계에서 총 185만여대가 판매된 현대차의 볼륨 모델이다. 직전 모델인 5세대 그랜저(HG)의 경우 2011년 출시 이후 지난달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57만여대가 판매됐다. 특히 이중 국내 시장 판매량이 47만여대로 내수 비중이 80%를 상회한다. 지난달 내수 점유율이 32.3%로 사상 최저치까지 하락한 현대차에게는 그랜저의 선전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글로벌 판매 본격화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공급을 확대하며 공략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는 26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올 3분기 영업이익이 1조681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0% 급감한 수준이다. 전분기(1조7천618억원) 대비로도 무려 39.4% 줄었다. 지난 2분기 현대차는 27개월 만인 9개 분기 만에 분기 영업이익이 증가세로 전환됐으나, 한 분기 만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게 됐다.
현대차의 분기별 영업이익은 2012년 2분기에 2조5천372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기세가 다소 꺾였지만 2013년 2분기부터 4분기까지 3분기 연속 2조원대를 기록했다. 2014년 1분기 1조9천384억원으로 내려 앉았지만 2분기 2조872억원으로 다시 2조원대를 회복하며 등락을 반복했다. 이후 같은해 3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여덟 개 분기 연속 1조원 중반대에 머물렀지만 올 3분기 1조원대에 간신히 턱걸이하며 하락세가 가팔라졌다.
3분기 영업이익률 역시 4.8%로 전년동기 대비 2.4%P 빠졌다. 분기 기준으로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이 5% 이하로 내려간 것 역시 2010년 이후 처음이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1조1천188억원으로 7.2% 줄었다. 매출액 역시 5.7% 감소한 22조837억원을 기록했다.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5월 17일부터 시작된 임협 과정에서 석 달여간 총 24차례에 걸친 파업과 12차례 특근을 거부했다. 지난달 26일에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파업까지 강행했다. 5개월여 간의 파업은 14만2천여대의 생산 차질을 빚어 3조1천여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남겼다.
실제 현대차의 올 3분기 해외 판매는 76만6천978대로 7.8% 늘었지만, 내수(13만1천242대)와 국내생산 수출(18만6천454대)은 각각 19.2%, 24.7% 급감했다. 현대차는 올 3분기 전 세계 시장에서 108만4천674대를 판매, 전년동기 대비 3.3% 감소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3분기 실적 악화는 파업으로 인한 국내공장 생산 차질 영향이 매우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4분기에는 3분기 실적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공장 가동률이 개선되고 전사적인 수익성 제고 노력이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판매는 물론 수익성 또한 향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반기 '신형 그랜저·제네시스'로 뚫는다
현대차는 4분기에도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선진국 성장세 둔화와 신흥국 경기부진 지속으로 인해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남은 기간동안 내수시장에는 신형 그랜저 출시로, 해외시장에서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글로벌 판매 본격화로 실적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최병철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임금협상이 마무리돼 국내 공장 가동률이 상승하고 신형 그랜저를 바탕으로 한 국내 판매가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며 "국내공장 생산 재개에 따른 제네시스 브랜드 차종 등 수출 확대도 4분기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미국 시장과 관련해서는 "올 4분기와 내년에도 미국 시장 수요둔화와 경쟁심화는 지속될 것"이라면서도 "제네시스 G80, G90의 성공적 출시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판매 믹스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신흥시장에도 판매 확대에 적극 나선다.
현대차 구자용 IR담당 상무는 "신흥시장 판매를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라며 "러시아 시장에서는 8월 출시한 크레타 판매 증가를 통한 SUV 비중 확대 등의 실적개선 호재가 예상되고 브라질에서는 HB20 사양개선 모델 등 현지시장 니즈에 부합하는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중동 시장의 경우 SUV 판촉을 강화하고, 친환경차 및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의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판매량이 점차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은 향후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올 초 중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판매가 상승세로 반등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중국시장에서 10만6천253대를 판매했다. 이는 전년동월 대비 11.7% 증가한 수치로 5개월 연속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현대차의 중국 내 월간 판매량이 10만대를 넘은 것도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올 3분기까지 누적판매대수는 78만대로 전년동기 대비 7.5% 증가했다.
구 상무는 "중국에서 이달 출시한 베르나 신차효과의 극대화와 구매세 인하 종료 전 판매 증가세를 적극 활용하는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또 이달부터 가동에 들어간 창저우 공장과 내년 충칭 공장 설립을 계기로 현지 시장에 전략 신차를 대거 투입하고 우수 딜러를 영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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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4분기 현대차를 둘러싼 대내외 경영환경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면서도 "내수시장에서는 신형 그랜저, 해외시장에서는 제네시스 G90와 G80 등 고급 세단들의 성패 여부가 향후 실적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현대차는 올해 판매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 1~3분기 누적판매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연초 사업계획에서 밝힌 501만대를 크게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올 1~3분기 누적판매량은 347만7911대다. 월평균 38만6천400여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