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퀵링크' 공방, 美 판결문 봤더니

법적공방보다 절차 공방…분석서버가 핵심

홈&모바일입력 :2016/10/10 17:46    수정: 2016/10/11 09:0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심 배심원들은 실질적 증거(substantial evidence)를 갖고 평결했다. 2심 판사들은 항소하지도 않은 사안을 독자적인 조사(independent research)를 통해 1심 평결을 뒤집었다.”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전원합의체가 7일(현지 시각) 삼성 승리를 선언한 2심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삼성이 데이터 태핑(647특허)을 비롯한 애플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지난 2월 항소법원 3인 재판부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항소법원은 통상 판사 3인으로 재판부를 구성한다. 항소법원 판결에 불만을 가진 측은 대법원에 상고하거나 전원합의체(en banc) 재심리를 요청할 수 있다. 전원합의체 심리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해당법원 판사 전원이 재판부를 구성하게 된다.

애플 요청으로 열린 이번 전원합의체 재심리에선 8대3으로 항소법원 3인 재판부 판결을 기각했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 항소심이 열린 연방항소법원. (사진=연방항소법원)

■ 데이터 태핑 특허에 대한 상반된 해석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을 뒤집은 것은 ‘절차상 하자’ 때문이었다. 항소법원 재판부가 ‘항소하지 않은 사안이나 배심원 평결 때 제시되지 않은 증거를 토대로 판결을 했다’는 게 그 이유다.

전원합의체는 왜 판결을 뒤집었을까? 구체적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판결문을 구해서 읽어봤다. 그 중 두 회사 2차 소송 핵심 쟁점인 ‘데이터 태핑’ 특허 관련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2차 소송의 핵심 쟁점은 ▲데이터 태핑(647)▲단어 자동완성(172)▲밀어서 잠금 해제(721) 등 애플 특허권 세 개였다. 삼성은 지난 2014년 5월 끝난 1심에서 애플 특허권 세 개를 침해한 혐의로 1억1천9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았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것이 647 특허다. 삼성에 부과된 1억1천900만 달러 배상금 중 80% 가량이 이 특허권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11개 연방항소법원의 관할 구역. 제9 연방항소법원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 지역 9개 주를 관장한다. (사진=위키피디아)

647 특허는 특정 데이터를 누르면 바로 연결 동작을 지원해주는 기술이다. 이를테면 웹 페이지를 누르면 바로 관련 창이 뜨고, 전화번호를 누르게 되면 곧바로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이다. 이 특허 기술이 ‘퀵링크’로도 불리는 건 그 때문이다.

애플 647 특허 청구 조항에는 “분석 서버가 애플리케이션에서 데이터를 받은 뒤 유형 분석 단위를 이용해 구조를 탐지한 다음 적합한 행동으로 연결해준다”고 돼 있다. 쉽게 얘기하면, 이메일인지 전화번호인지 구분한 뒤 메일을 보내거나 통화 연결을 자동으로 해 준다는 의미다.

여기서 핵심은 ‘분석 서버(analyzer server)’와 ‘연결행위(linking actions)’다.

1. 분석 서버 해석 공방

‘분석서버’ 이슈는 두 회사가 한창 1심 소송 중이던 지난 2014년에 돌연 불거져 나왔다. 애플이 모토로라와 데이터 태핑 특허를 놓고 다툰 별도 소송에서 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은 애플과 모토로라 소송 때 제기된 분석 서버와 연결 행위 관련 내용을 배심원들에게 전달했다. 당시 배심원들은 두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는 지침을 받았다.

- 분석서버: 데이터를 수신하는 글라이언트와 분리돼 있는 서버 루틴.

- 감지된 구조와 연결하는 행위: 감지된 구조와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컴퓨터 서브루틴(특정 또는 다수 프로그램에서 반복 사용되는 명령어) 간에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을 만들어내는 행위. 컴퓨터 서브루틴은 중앙처리장치(CPU)로 하여금 감지된 구조에 일련의 작동을 하도록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두 회사 공방의 핵심 쟁점은 삼성 기기들이 애플 특허권 적용 범위 내에 있느냐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분석 서버였다. 삼성은 자신들의 기술은 단말기 내 애플리케이션 단에서 구동되기 때문에 별도 분석 서버가 있는 애플 특허와 다르다고 맞섰다.

그런데 전원합의체가 보기에 3인 재판부가 ‘분석 서버’ 부분에 대한 판결을 할 때 큰 실책을 범했다. 기록에 있지 않은 외부 증거를 활용해서 ‘분석 서버’ 부분에 대한 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논의되거나 제출되지 않은 증거를 토대로 법관이 자의적인 판단을 했다는 게 전원합의체의 생각이었다.

특히 3인 재판부가 “삼성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 프로그램은 별도로 구동되는 ‘독립(standalone)’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해당 기기가 (애플) 특허 침해를 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데이터 태핑 특허권 개념도. 165번과 167번이 별도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애플 특허권의 핵심이다. (사진=미국 항소법원 판결문)

전원합의체는 “애플 증인은 ‘별도(separate)’란 별도로 작동하는 독립 프로그램을 의미한다는 재판부의 주장에 거듭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지적했다. 삼성과 애플 프로그램의 차이를 논할 때 ‘독립 프로그램’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애플 측은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요구하면서 “항소심을 담당한 3인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 때 제시한 ‘별도 서버’와는 다른 해석을 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삼성은 분석 서버을 “데이터를 수신하는 글라이언트와 분리돼 있는 서버 루틴”으로 규정한 모토로라 소송 때의 정의에 대해선 항소를 하지도 않았다고 전원합의체 판결문이 지적했다. 결국 지난 2월 항소심 재판부는 다른 증거를 토대로 하급 법원 판결을 뒤집었다는 게 전원합의체의 판단이다.

2. 실제행동

항소심에서 삼성은 자사 안드로이드 기기엔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에서 분리된 서버 루틴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배심원’이라면 누구나 ‘분석 서버’란 애플 특허권 적용 범위 바깥에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은 당시 브라우저와 메신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외부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앱 내에 데이터 분석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브러리 코드에 가서 필요한 기능을 복사해 온 뒤 해당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작동시킨 단 얘기다. 따라서 공유된 라이브러리 코드는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으로부터 분리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애플 생각은 다르다. 삼성 제품들은 퀵 링크 기능을 수행할 때 해당 라이브러리로 간 뒤 그 곳에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 애플 측 주장이었다.

애플 측 증인으로 나왔던 모우리 박사는 “삼성 라이브러리 코드와 클라이언트 애플리케이션은 메모리의 별도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삼성 라이브러리 코드 복제본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메신저를 비롯한 앱들은 그 곳에 와서 작동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항소법원 전원합의체는 “(모우리 박사의 증언은) 삼성 기기들이 (애플 특허권의) ’분석 서버’ 범위 내에 있다는 배심원들의 판단을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결했다.

3. 사전에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 행위

스마트폰에서 이메일 주소나 URL을 누를 때 해당 기능을 곧바로 띄워주는 것이 사전에 명확하게 규정된 것이냐는 부분도 논란거리였다. 이게 647 특허권이 규정한 ‘연결 행위’ 문제다.

항소법원은 애플 특허의 연결행위란 “감지된 구조와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컴퓨터 서브루틴 간에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specified connection)을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 부분에 대해 삼성은 “어떤 행동을 수행하라는 이용자의 요구와 해당 행위를 하는 애플리케이션 간에는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삼성 스마트폰에서 퀵링크 기능과 관련된 것은 ’startActivity()’다. 삼성은 ’startActivity()’는 단순히 어떤 응용 프로그램이 요청된 행위를 수행할 지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행위 자체를 수행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항소법원. 특허소송 항소심 전담 법원이다. (사진=위키피디아)

따라서 애플 특허권의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항소법원은 지난 2월 삼성의 이 주장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원합의체의 생각은 달랐다. 감지된 구조와 명령을 수행하는 애플리케이션 간에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전원합의체는 “감지된 구조와 CPU로 하여금 해당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는 컴퓨터 서브루틴 사이에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이 있으면 된다”고 해석했다. 1심 법원도 이런 지침을 내렸단 것이다.

둘 간의 차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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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주장을 인용할 경우 ’startActivity()’가 이메일이나 URL을 여는 행위를 결정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특허 침해와는 관계가 없다. 그 정도 행위까지는 관여하기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전원합의체는 데이터 내에 있는 객체를 ‘감지된 구조’로 해석했다. 데이터 내에 있는 객체란 이를테면 전화번호나 URL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startActivity()’는 전화번호나 URL로 연결해주는 런처(launcher) 역할을 한다. 따라서 ‘명확하게 규정된 연결’이 있다고 볼 소지가 많다는 게 전원합의체의 판단이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