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업계의 맏형인 현대자동차가 노조의 파업에 신음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이제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례 행사로 여겨진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단 네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년 파업을 벌여왔다. 올해 파업은 2012년 이후 5년 연속이다. 글로벌 경쟁 심화와 내수 침체 등 경영환경 악화에도 아랑곳없이 노조는 매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의 칼날을 휘두른다.
올해는 5월부터 시작된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의 총 24차례에 걸친 특근 거부 및 파업에 따른 생산차질이 벌써 2조9천억원에 육박한다. 지난 2012년 기록한 역대 최고 파업 손실액 1조7천48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현대차에 납품을 해야 하는 협력업체들의 손실은 더 크다. 1차 협력업체 348개사는 1조4천억원의 매출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약 5천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2·3차 협력업체까지 더하면 손실액은 약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초 올해 협상은 사측이 최대 쟁점인 임금피크제 확대안을 철회하면서 조기 타결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는 "예년보다 임금 인상 폭이 적다"는 이유를 내세워 파업을 하고 있다. 사측의 양보에도 지금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아야겠다는 얘기다.
사측이 최근 내놓은 추가 제시안에는 기본급 7만원 인상과 주간 연속 2교대 관련 10만 포인트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새로 담겼다. 기본급 7만원 인상은 상여금과 일부 수당에까지 영향을 미쳐 근로자 1인당 150만원 이상의 인상 효과가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측의 제시안대로 올해 협상이 타결될 경우 현대차 근로자 평균 연간 임금은 9천461만원으로 1억원에 육박하게 된다. 일본 토요타(7천961만원), 독일 폭스바겐(7천841만원) 등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업체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반면 생산성은 이들 업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현대차 국내공장의 HPV(자동차 1대당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는 26.8시간으로 토요타(24.1시간), 폭스바겐(23.4시간)에 미치지 못한다. 해외 생산기지인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14.7시간)보다는 두 배 가까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낮은 생산성으로 노동 강도는 덜하지만, 현재 받고 있는 급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노조의 파업이 생산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낸 결론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지난 8월 도출한 1차 잠정합의안의 부결도 결국 노노(勞勞)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찬반투표 당시 일부 현장 조직의 현 집행부 흔들기가 조직적으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업에 염증을 느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파업이 부담스럽다'는 볼멘 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론의 반응은 더 싸늘하다. 지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강성 노조의 파업을 비판하는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 단체 15곳으로 구성된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언급한 상태다. 노조의 파업 때마다 동조해 오던 일부 진보 언론들의 지원 사격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권 역시 현대차 노조에 대해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국내 완성차업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현대차의 파업은 국가 경제 지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고용의 12%, 생산의 13%, 수출의 14%를 차지하는 기간산업이다.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액은 409억달러로 전년동월 대비 5.9% 감소했다. 수출 악화는 현대차 파업이 직격탄이 됐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자동차업계 파업으로 수출액은 11억4천만달러(약 1조2천585억 원), 수출물량은 7만9천대가량 줄었다. 노조 측은 재고 물량이 충분한 만큼 사측이나 정부의 추산처럼 손실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 파업의 당위성을 담보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에 사측은 총수가 직접 나서 해외시장에서 해법을 모색 중이지만 노조는 파업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 여름 78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럽, 북미, 남미 등 3개 대륙에 걸친 왕복 4만km를 비행하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현장경영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노조의 장기 파업은 여론 악화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는 내수는 물론, 글로벌 판매량 감소로 직결된다. 결국 경영환경 악화를 극복하기 위한 사측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는 11년 만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긴급조정권은 노조의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거나 국민경제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발동하는 조치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해당 노조는 30일간 파업 또는 쟁의행위가 금지되며,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을 개시한다. 만약 정부가 노조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현대차는 1993년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이나 긴급조정권을 적용받는 첫 번째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노조는 오는 11일까지는 파업을 벌이지 않고 정상조업을 진행키로 했다. 여론 악화에 부담을 느낀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12일까지 임금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다시 파업 돌입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지난달 26일에 이어 또 다시 전면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엄포도 놓은 상태다. 노조가 또 다시 파업을 결정할 경우 파업 손실은 3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전가의 보도(傳家寶刀)' 라는 말이 있다. 대대로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보검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 방법이나 수단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의 뉘앙스가 강해 상황이 불리하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고 나오는 호구책을 빗대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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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의 일탈을 감시하고 현장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주어진 파업이라는 보도(寶刀)가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이기적인 집단의 칼자루로 전횡(專橫)되면서 날끝이 무뎌졌다. 파업 대신 상생을 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노조의 발상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자신들만 예외라는 욕심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