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회사 인텔이 지난달 개발자포럼(IDF)에서 SK텔레콤과 사물인터넷(IoT) 기기 개발에 협력한다고 밝혔다. 인텔판 라즈베리파이 컴퓨터인 '에디슨' 기판에 웹RTC(WebRTC) 표준을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든다는 게 핵심이었다.
PC와 스마트폰에 한정됐던 웹RTC 적용 영역을 IoT 기기 범주로 확대한다는 시도로 해석할 순 있지만, '인텔처럼 웹 기술과 뚜렷한 접점이 없는 회사가 어째서 웹RTC 표준 활용 기술 개발에 나섰느냐'는 의문을 풀만한 설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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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행보가 갖는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선 몇 가지 선행 키워드를 이해해야 한다. 인텔의 에디슨이 어떤 기기인지. 거기서 돌아가는 웹RTC가 어떤 기술인지. 인텔과 손잡은 SK텔레콤의 역할은 뭔지. 인텔의 구상을 엿보는 것은 그 다음이다.
결론부터 요약하면 인텔이 웹RTC 투자하는 목적도 결국 인텔칩 기반 하드웨어 생태계 확대였다. 클라우드와 플랫폼 서비스같은 어려운 사업을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반도체 제조와 판매라는 단순한 모델을 지속하기 위한 행보였다. 기술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의문을 풀어 봤다.
■웹RTC와 인텔 에디슨
인텔의 에디슨은 개발자들이 소형 단말 제품 실물을 양산 이전에 빠르게 구현해볼 수 있는 기판형 컴퓨터로 2년전 등장했다. 이번에 인텔과 SK텔레콤은 에디슨 기판에 웹RTC를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함께 만들고, 개발자들에게 무상으로 웹RTC 개발도구를 제공해 IoT 개발 생태계 활성화에 나서기로 했다. 두 회사의 협력 결과물은 향후 개발자들이 웹RTC 표준을 활용해 IoT서비스 아이디어를 만들려 할 때 에디슨을 표준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삼도록 유도하는 성격을 띨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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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에디슨이라는 하드웨어에 적용된다는 웹RTC는 뭘까. 웹RTC는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브라우저에서 작동하는 다자간 영상회의나 양방향 멀티미디어 및 파일 전송 서비스를 구현케 해 주는 차세대 실시간 통신 표준의 이름이다. 수년간 웹표준화기구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에서 에릭슨,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모질라 소속 전문가의 주도로 표준화가 진행돼 왔다. 웹RTC 주요 기능을 이미 크롬, 파이어폭스, 오페라 브라우저가 구현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엣지와 애플 사파리에도 구현될 예정이다. 다만 당장 모든 사용자 플랫폼 그리고 산업용 임베디드 장치와 웨어러블 기기를 연결하진 못한다.
■SK텔레콤은 왜
이 대목에서 인텔의 웹RTC 파트너가 SK텔레콤인 이유가 설명된다. 앞서 SK텔레콤은 아직 웹RTC를 못 쓰는 사용자 환경까지 아우르기 위한 서비스 개발도구와 플랫폼을 상용화했다. 그 이름은 '플레이RTC(PlayRTC)'다. 플레이RTC는 2년전 SK텔레콤이 자체 개발자 지원 센터를 열며 내놓은 수십종의 API 중 대표격으로 소개됐다. 플레이RTC는 개발자들이 웹RTC 기능을 더 쉽게 다루면서 일부 PC 브라우저만 대응했던 표준의 한계를 넘어 안드로이드와 iOS에서도 쓸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인텔과의 협력은 향후 SK텔레콤이 플레이RTC에 에디슨이라는 IoT 기기 유형을 고려한 지원 요소를 더할 것이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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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과의 협력 발표 당시 SK텔레콤의 차인혁 플랫폼기술원장은 "플레이RTC(PlayRTC)가 O2O, 커머스, 완구, 스마트공장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혁신 도구로 활용되길 바란다"며 "IoT 기기 활용도를 높이고 고객에게 차별화된 통화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자 및 중소 벤처 기업과 연구개발 협력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텔과의 웹RTC 관련 협력을 통해 SK텔레콤이 기대하는 방향을 단순화해 표현하면 이렇다. SK텔레콤은 인텔과 협력해 플레이RTC의 활용 범위를 IoT 서비스에 연결되는 여러 유형의 기기로 넓힐 수 있다. 이런 IoT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SK텔레콤이 서비스하는 플레이RTC용 개발 API가 많이 쓰인단 얘기가 된다. 그 개발자 생태계가 많아지고, 거기서 유용한 서비스가 많이 나오고, 사업자가 많은 사용자를 얻고, 결국 플레이RTC 플랫폼을 제공하는 SK텔레콤에게 사업적인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럼, 인텔은 왜
사실 여기까지 이해했더라도 인텔이 이 기술에 어째서 관심을 갖고 있고, 에디슨 기반의 웹RTC 적용 기술을 SK텔레콤과 공동개발하겠다고 나섰는지 딱 집어내기는 쉽지 않다. 업계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인터넷 기술 관련 국제표준 제정기구인 '인터넷엔지니어링태스크포스(IETF)'의 표준화위원으로 활동 중인 알렉산드르 과이아르(Alexandre Gouaillard) 박사가 인텔과 SK텔레콤 협력 발표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 그는 과거 싱가폴 웹RTC 업체와 시스코시스템즈, 시트릭스 등 글로벌 IT업체에서 일했던 웹RTC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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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이아르 박사는 우선 인텔이 웹RTC 기술에 투자하는 것과, 웹RTC 서비스를 만들려고 하는 개발자나 회사들에게 그 과정을 거드는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즉 인텔은 이미 자사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웹RTC 기술을 만들고 있었다. 그걸 전체인프라 구성없이 웹RTC솔루션이나 PaaS 개발을 하려는 회사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왔다. 그가 볼 때 이유는 단순했다. 한 마디로, 인텔 프로세서와 그걸 탑재한 하드웨어의 수요를 더 키우려는 시도다. 관련 부분을 아래에 한국어로 옮겨 봤다.
"인텔은 항상 데스크톱CPU 제조사로 인식돼 왔다. GPU가 아니라. 임베디드 하드웨어나 더 작은 기기(분야)는 ARM에게 남겨 둔 채. 인텔의 IoT 모듈 에디슨은 다른 (경쟁) 솔루션에 비해 꽤 크다. …(중략)… 인텔은 매우 강력하고 유능한 웹RTC 팀을 보유했고 그들은 (오픈소스는 아니지만) 인텔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무료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 …(중략)… 그들의 명백한 목표는 인텔 하드웨어를 팔되, 자체 웹RTC PaaS(플랫폼)이나 자체 클라우드 상품을 보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왜 SK텔레콤과 함께하나
정리하면, 인텔은 자사 프로세서를 IoT 시대에 확산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에디슨을 만들었다. 이제 그간 투자해 온 웹RTC 표준 기술을 그 촉매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인텔은 왜 이걸 혼자서가 한국 통신사 SK텔레콤과 함께 하려고 하는 걸까? 이 물음에 과이아르 박사가 제시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요약하면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인텔과 SK텔레콤이 비슷한 문제에 처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얘기다.
"…SK텔레콤은 새로운 클라우드 기술, IoT, 웹RTC 분야에 진취적이었다. …(중략)… 하지만 역시 클라우드 사업자이자, 1년도 더 전에 웹RTC 플랫폼 '스카이웨이(Skyway)'를 내놓은 (일본 통신사) NTT와 경쟁하긴 여전히 힘들다. 다들 자기 솔루션을 공짜로 제공해 (기술 생태계로)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지난 7월 소프트뱅크는 ARM홀딩스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IoT와 모바일 기기의 핵심기술을 품어 빠르게 발전시키고 그에 기반한 기술을 개발하겠단 뜻이어서 인텔에겐 잠재적으로 (경쟁 환경상) 문제였다. 이는 또한 일본 생태계를 강화해 (글로벌 진출을 원하는) SK텔레콤에게도 큰 문제였다. 인텔과 SK텔레콤은 같은 문제를 안고 있고, 조화로운(matching) 기술을 갖고 있어서, 협력하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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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개발팀의 웹RTC 기술 역량과 SK텔레콤의 플레이RTC는, 기술적으로도 각각 서버와 클라이언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상호 보완적이라고 과이아르 박사는 덧붙였다.
"SK텔레콤의 플레이RTC는 NTT 스카이웨이와 약간 닮았지만, 사물(things)의 클라이언트 측에 비중을 두고 있어 인프라측에 약간 부족한 점을 보인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동일한 개발 과정을 따르는데, 우선 웹앱/sdk와 시그널링 서버, 다음 모바일앱/sdk 순이다. 인텔은 하이브리드미디어서버(SFU/MCU), SIP게이트웨이 등 매우 좋은 인프라측 요소들을 제공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