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게임 산업이 진흥과 규제 사이의 늪에 빠졌다. 한쪽에선 진흥을, 한쪽에선 규제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웹보드 게임 규제 완화에 이어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추진 소식을 전해 업계에 환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게임 산업은 당분간 진흥과 규제 사이를 오고갈 것이란 전망이다.
18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의 게임 산업 정책은 규제와 진흥이 공존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해석에 따라 움직임은 다르다.
■셧다운제, 웹보드 게임 규제 완화
문체부 측은 게임문화 진흥 계획 발표를 통해 강제적 셧다운제는 폐지하고,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셧다운제 개선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전한 상태.
앞서 문체부 측은 웹보드 게임 월간 구매한도를 월 50만 원으로 상향하고, 직접 충전 금지 조항 등을 삭제하는 등 웹보드 게임 규제도 완화한 바 있다. 게임 자율등급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가 이미 침체기로 접어든 대한민국 게임 산업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윤태용 실장은 “그동안 게임은 너무 산업적인 측면만 강조하거나 반대로 규제 측면으로만 접근하기도 했다. 이제는 관계 부처에서 협력해 게임문화의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은 과몰입 등 결과만으로 게임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게임을 이용하는 문화와 과몰입의 원인, 맥락까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강제적 셧다운제와 선택적 셧다운제 같은 중복 규제안이 존재하고 있다. 셧다운제는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의 게임 이용시간을 강제적으로 제안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문화체육관광부는 부모가 청소년의 시간을 통제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로 각각 산업을 규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규제와 진흥에 오락가락...확률형 아이템 규제 추진
정부가 규제 완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게임 산업 규제가 현재진행형이란 점이 문제란 지적이다. 정치권에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칼끝을 세웠기 때문이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확률형 아이템 규제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게임 내부 또는 아이템 구매 시점에 확률형 아이템 종류, 구성비율, 획득확률 등 정보를 명시해야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는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를 중심으로 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나온 게임법 개정안이다. 협회 측은 업계와 공동으로 지난해 7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시행한 바 있다.
협회 측이 공개한 자율규제 내용을 보면 이행률은 90%에 달한다. 반면 정치권에선 게임 내부 또는 아이템 구매 시점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강제적인 법으로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복수의 전문가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자리 잡기까지 시간을 줘야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법으로 규제하려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업계가 반대했던 강제적 셧다운제도 곧 폐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산업이 망가진 뒤의 조치란 점에선 ‘안 되면 말고 식’의 규제는 피해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업계가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최근 게임사들은 글로벌 진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원빌드 버전(하나의 게임 버전)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강제적으로 진행하면 추가 개발 등의 과정이 길어지고 이에 따른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선 게임 산업을 규제하려는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다. 셧다운제, 웹보드 게임 규제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이미 이러한 규제는 실효성이 없고 산업 성장에 부정적이란 점을 계속 외쳤지만, 이제야 업계의 의견이 반영돼 규제 완화를 추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웃긴 것은 업계의 의견을 또다시 묵살하고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을 개정하면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규제는 게임 산업 발전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 빨라, 정책은 뒷걸음...산업 자율규제 지켜봐야
기술의 속도를 정부의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나온 것은 아니다. 정부가 4차 산업 혁명을 외쳤지만, 장벽은 높다. 게임 산업만 놓고 봐도 그렇다.
게임업계에선 그동안 산업 발전을 위해 자율규제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구했던 상황이다. 강제적 셧다운제와 웹보드 게임 규제 등의 법안 때문에 게임 산업의 성장을 막았고 미국과 중국, 일본 게임에 역공을 당했다는 시선도 있었다.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정치권과 협단체 일각이 게임 산업을 삐딱하게 보면서 새로운 규제 내용이 나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정도.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제가 담긴 게임법 개정안 발의도 이 같은 분위기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했다.
물론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추진 등은 환영할만한 일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중론. 정부의 정책이 기술의 속도를 쫒아가지 못하는 것은 맞지만, 그나마 잘못된 규제 정책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란 얘기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같은 규제 법안이 등장한다면 산업 발전에 계속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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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EA 관계자는 “자율규제는 최대한 이용자에게 알권리를 제공하고 게임사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진행 중이다”라며 “지난해 처음 시작한 만큼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지난 1년간의 데이터를 가지고 개선방향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으로 강제하는 것은 변화가 잦은 게임산업의 특성상 게임산업의 발전을 막고 악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지난 3월부터 준비해온 발전된 자율 규제 방안을 곧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 바란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