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 참. 기특하단 말이야. 다섯 명 몫은 충분히 해내는 것 같아.”
기자 초년시절 난 편집기자였다. 그 시절 난 어쩔 수 없이 면 담당 부장을 채근할 때가 적지 않았다. “기사가 더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인 채근거리였다.
지금보다는 훨씬 경쟁이 덜 하던 시절 얘기다. 또 전체 매수를 기준으로 한 담당 부장과 면의 모양새를 우선시하는 편집기자간 셈법 차이 때문에 생긴 갈등(아닌 갈등)이었다.
어쨌든 그럴 때면 담당 부장은 그 무렵 편집국에 막 들여왔던 뉴스 통신사 단말기 앞으로 갔다. 그리곤 쭉 살핀 뒤 두어 장을 찢어서 넘겨줬다. 그럴 때마다 ‘요령 피우지도 않는 뉴스 통신사 단말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자 두 어명 비용으로 다섯 명분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그 때만큼 느슨하지도 않을 뿐더러 경쟁 때문에라도 그렇게 할 수 없다.
AP통신이 ‘알고리즘을 활용한 기사 생산’을 확대 실시하기로 했단 소식을 접하면서 그 때 생각을 했다.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보도에 기사 자동 생산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단 뉴스였다. AP는 기사 생산 자동화 알고리즘으로 유명한 오토메이티드 인사이츠(Automated Insignts)의 기술과 MLB 어드밴스트 미디어의 데이터를 활용하기로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과연 언론은, 기자는 AI 기술로부터 안전한걸까
AP가 기사 생산을 기계에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확하게 2년 전부터 이미 시행하고 있다. 2014년 7월부터 기업들의 분기 실적을 이미 자동화 알고리즘으로 처리하고 있다. AP는 자동 생산 알고리즘 도입 이후 매 분기 미국 기업 3천500개의 실적을 기사로 처리하고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말하자면 이번 조치는 그 연장선상인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 기업 분기 실적에 이어 마이너리그 야구였을까? AP는 그 부분에 대해선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추론은 해볼 수 있다.
일단 두 영역은 모두 자료가 충실하게 나온다. 다시 말해 자료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적용하기 쉬운 영역이란 얘기다. 국내에서도 일부 신문들이 증권 공시 등에 우선 적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당장 기자들과 크게 관계가 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꼭 그렇진 않다. 현재 기자들이 하고 있는 일 중 상당 부분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실적 자료나 MLB 어드밴스트 미디어의 데이터를 재가공하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인가? 지금 우리가 상식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할 경우 머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AI)에 일자리를 내줘야 할 수도 있단 얘기다. 이건 연차가 낮은 기자들일수록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선 무서운 전망이 나왔다.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요즘 언론들은 4차산업 혁명 관련 기사를 엄청나게 쏟아낸다. 하지만 AP통신이 전해온 소식은 기자들 역시 자신들이 사회에 경고했던 바로 그 4차산업혁명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단 또 다른 메시지다.
잠시 얘기를 바꿔보자.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초기 신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란 신문을 경영하면서, 동시에 뛰어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당연히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신문사 경영하면서 언제 취재 활동까지 했을까, 란 의문. 하지만 프랭클린이 활동하던 19세기엔 수첩을 들고 현장에 나가 취재하는 건 기자들이 하기엔 ‘낮은 수준의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뛰어난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엣지 있는 분석 기사를 써내는 게 기자들의 참 업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 때가 맞고 지금이 틀렸단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직업에 대한 가치 기준은 그 시대 기술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한단 얘길 하고팠다.
■ AP통신이 우리에게 던진 교훈은?
요즘은 스마트폰 시대다. 누구나 실시간으로 뉴스를 접하고, 또 원하면 실시간으로 소식을 올릴 수 있는 시대다. 그 동안 듣기만 했던 독자들 중 상당수가 직접 발언하는 시대다. 그 중 일부는 문장력이나 지식 면에서 기자들을 압도한다.
이런 시대에 단순 사실보도가 설 자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AP통신이 그 영역 중 일부를 기계에게 넘겨준 건 그런 문제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이란 깨달음이 필요한 시대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이미 무너진 시대. 어쩔 수 없이 개인들이 ‘평생 고용’을 실현할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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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 얘길 들으면서 나 또한 그 격랑의 안전지대에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 나보다 후배 기자들은 그 파고가 더 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갑자기 4차산업혁명이 더 무서워졌다. 그게 혁명이든 아니든, 어쨌든 산업의 틀을 뒤흔들고 수 많은 일자리를 위협하는 건 분명해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