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당신껜 미래가 곧 현재였습니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를 기리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6/30 11:29    수정: 2016/06/30 16:1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요즘 ‘제4차산업혁명’이 화두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같은 새로운 기술이 몰고올 엄청난 파장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올초 다보스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을 공식화한 덕분에 로버트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의 주가는 갈수록 치솟고 있습니다.

저 역시 4차산업혁명이 던지는 메시지에 많이 공감하는 편입니다. 전례없는 속도와 범위로 우리 사회를 휘감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 역시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4차산업혁명 얘길 처음 접하면서 엉뚱하게도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이었나요? 당신은 ’제3의 물결’이란 저술을 통해 정보통신 혁명을 예견했더랬습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얘기이지요. 하지만 1980년엔 컴퓨터는 거대 연구기관에서나 볼 수 있던 물건이었습니다. IBM이 PC를 만들고 빌 게이츠가 그 PC에 도스란 운영체제를 공급한 게 그 이듬해였으니까요.

(사진=Toffler Associates)

■ 1980년대 초에 벌써 2010년대 예측

앨빈 토플러.

당신은 정말 뛰어난 혜안을 가진 미래학자였습니다. 출근 길에 당신의 부음을 접하면서 “우리 시대 또 한 분의 뛰어난 학자가 타계했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학계의 평가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전 학문은 현실에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대중들에게 쉽게 풀어줄 수 있는 게 학문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믿고 있구요. 그런 점에서 당신은 정말 (적어도 제겐) 최고였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당신은 1970년 출간한 ‘미래 쇼크’에서 사회 발전을 여러 물결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더 주목할 만한 건 당신이 던진 경고 메시지였습니다.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변화”란 경고였지요. 다가올 이런 기술, 정보 쓰나미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이런 경고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4차산업혁명 담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입니다. 그만큼 당신은 시대를 앞서갔던 분이었습니다.

10년 전 당신은 산자부 주최 포럼에 참여한 적 있습니다. 당시 SBS와 인터뷰하면서 ‘생명공학과 우주산업이 결합된 제4의 물결이 올 것이다”고 예견하셨더군요. (☞SBS 기사 바로 가기 )

아마 그 때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당신이 예견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런 예지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전 뉴욕타임스의 멋진 부음 기사에서 한 단초를 찾아냈습니다.

■ 1960년대 중반 5년간 침잠 끝에 '미래쇼크' 발표

그 기사엔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사실 보도’ 바로 뒤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프리랜서 기자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가던 당신은 1960년대 중반 결단을 했다더군요.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을 휘감고 있는 문화적 격변의 근본 원인을 탐구하는데 전력하기로 했다구요.

그렇게 5년 동안 엄청난 공부를 한 결과물이 미래예측 3부작 중 첫 번째인 ‘미래쇼크’였습니다. 그 책에서 당신은 지구촌 곳곳에서 수집한 단편적인 사실들을 멋지게 조합해 과학과 자본,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융합이 그런 변화의 근본 원인이란 결론을 도출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습니다.

당신은 또 뭔가를 보도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길 원했다고 하더군요. 뉴욕타임스가 전해준 당신의 이 말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포도 수확하러 갔다. 잭 런던은 배를 타고 항해를 떠났다.” 스타인벡의 역작 ‘분노의 포도’와 잭 런던의 ‘바다의 늑대’는 바로 이런 경험을 통해 탄생했단 의미겠지요.

토플러 선생님.

당신께 보내는 편지를 준비하기 위해 이런 저런 자료를 뒤지다가 알게 됐습니다. 당신은 영문학을 전공했더군요. 젊은 시절엔 시를 쓰기도 했구요. 시인이었던 삼촌 부부의 영향도 많이 받았구요.

이런 자양분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미래학에 따뜻한 양념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특히 당신은 뛰어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여러 신조어들을 만들어냈지요. 그 중 많은 것들은 요즘은 일상 용어로 자리잡았지요.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볼까요?

정보과부하(information overload), 프로슈머(prosumer)처럼 이젠 보통 명사가 된 단어들은 전부 당신이 만들어낸 말이었습니다. 관료제에서 탈피한 전문가 위주 조직을 의미하는 애드호크라시(adhocracy)란 말을 널리 유통시킨 것도 당신이었습니다.

‘제3의 물결’이야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겠죠. 제가 아는 한 분은 1990년대 초 한 방송사 입사시험 논술 주제가 ‘물결’이었는데, 당시 답안지 중 3분의 2 정도가 당신을 거론했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 현재에서 미래를 본 당신은 진정한 현인

앨빈 토플러.

당신은 현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본 현인이었습니다. 뛰어난 미래 예측은 남다른 혜안에다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려는 부지런함이 함께 한 덕분이란 얘기겠지요.

87세로 생을 마감한 당신의 부음을 접하면서 당신이 2006년 중국 인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자꾸 뇌리를 스쳐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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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미래를 확실하게 알 순 없다. 하지만 우린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유형을 알아낼 순 있다.”

당신은 바로 그 유형을 알아내는 데 남다른 능력을 보여준 탁월한 미래학자였습니다.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미래 학자였던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