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시스코 IoT 신사협정일까, 적대적 공생일까?

전략적 입지 강화 위한 두 회사의 협력 속 역학관계 주목

컴퓨팅입력 :2016/06/09 08:24    수정: 2016/06/09 09:02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IBM와 시스코시스템즈가 손을 맞잡았다. 주목할 키워드는 '분석(Analytics)'이었다.

양사는 각자 보유한 IoT용 데이터 분석 플랫폼과 소프트웨어(SW) 및 하드웨어(HW) 기술을 통합해 기업들이 쓸 수 있는 솔루션으로 내놓기로 했다. 석유 굴착지, 공장, 광산 등 네트워크 지원이 열악한 원격지 사업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에게 현장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플랫폼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 협력 시나리오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2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IBM이 중심부, 시스코가 주변부를 맡는 역할분담 구도다. 다른 하나는 정황상 IBM과 동등하다기보다 뭔가 그에 의존적인 듯한 시스코의 태도였다. 양측의 역할분담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신사협정일지, 당장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는 시스코와 IBM의 적대적 공생일지 지켜볼 일이다.

IBM과 시스코가 2016년 6월 각자 IoT분야 기술을 통합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IoT인프라 중앙 및 주변부 데이터 분석에 초점을 맞춘 양측의 역할분담과 미묘한 역학관계가 눈길을 끈다.

두 글로벌 IT업체의 협력에 담긴 역학관계가 그들과 손잡은 SK텔레콤과 SK주식회사 C&C의 행보에 반영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시스코는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이 전략 사업으로 꼽은 IoT 분야의 기술 개발 파트너이며, IBM은 시스템통합(SI) 업체에서 클라우드 및 스마트팩토리 등 융합기술 사업자로 변신을 꾀하는 SK주식회사 C&C가 클라우드 사업을 위해 영입한 기술 협력 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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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중심-시스코 주변부…절묘한 역할분담?

IBM과 시스코는 공통적으로 데이터센터용 HW인프라 사업을 비롯한 전통적 IT시장에서 성장 부진이나 매출 하락을 겪었다. 몇년 전부터 이를 극복할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IoT를 꺼내들었다. 그간 각자의 핵심 기술과 파트너 생태계에 기반한 IoT 전략에 주력했다면, 이번에 양사 기술을 통합한 솔루션으로 기업들이 IoT 네트워크 엣지(Edge) 단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정제, 분석해 사업적인 필요에 맞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IBM은 지난 몇년간 비정형 데이터 처리와 분석 및 시각화 기술을 확충하는 추세였고, 시스코 역시 몇년 전부터 컴플렉스이벤트프로세싱(CEP)이나 실시간 스트리밍 데이터 처리 기술 업체를 인수하면서 데이터 처리 및 분석 역량을 높였다고 강조한 상태다. 이런 신기술이 양사 통합솔루션에 투입될 예정이다. 통합솔루션 구성요소로 IBM의 '왓슨IoT', '비즈니스애널리틱스'와 시스코의 '엣지애널리틱스'가 언급됐다.

양사 협력 계획에 언급된 왓슨IoT는 IBM의 서비스, 솔루션, 컨설팅 브랜드다. IBM 퍼블릭클라우드 '블루믹스(BlueMix)' 기반으로 IoT 애플리케이션용 API를 제공하고 센서 데이터를 수집케 해주는 종량제 서비스형플랫폼(PaaS)을 포함한다. 또 비즈니스애널리틱스는 IBM의 기업용 데이터 인프라 관련 사업을 지칭한다. 즉 IBM의 DB, 데이터통합, 분석, 예측, 리포팅, DW 등 데이터 처리 솔루션과 플랫폼을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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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가 제공한다는 엣지애널리틱스는 IoT 인프라 말단 영역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그와 가까운 위치의 시스템에서 처리해, 전체 인프라 효율을 높인다는 아이디어를 뜻하는 용어다. 이를 구현한 시스템을 흔히 업계에선 'IoT게이트웨이'라고 불렀다. 시스코는 2년전 자사 라우터 장비 중심의 '포그컴퓨팅' 아키텍처를 제시했다. 이후 CEP 및 스트리밍데이터 SW업체를 인수, 자체 IoT게이트웨이 솔루션을 완성했다.

시스코 엣지애널리틱스 솔루션 개념도. 왼쪽이 엣지라우터 HW 및 스트리밍데이터 처리 SW로 구성된 IoT게이트웨이 내부의 기술 스택을 보여 준다. 오른쪽은 그와 연결되는 실시간 모니터링, 고급 분석 시스템과 중앙인프라의 분석 및 운영 애플리케이션 구성요소다. 이는 시스코 기술이 아닌 별도의 클라우드 플랫폼과의 결합 및 연동을 전제한다. [사진=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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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와 IBM의 협력 내용은 일종의 분업 양상을 띤다. 양사 협력 구도를 거칠게 요약하면 IBM 기술은 IoT 데이터를 중앙에서 처리하는 역할이고, 시스코 기술은 말단의 데이터를 수집, 정제해 중앙으로 보내는 역할이다. 각각의 개념을 들여다보면 모두 IoT 환경에 필요한 데이터 처리 및 분석 수단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상대방의 영역을 기술적으로 절묘하게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달 시스코 공식블로그에 게재된 엣지애널리틱스 관련 포스팅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향후 시스코는 IBM에 필요한 IoT용 네트워크 기술과 장비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 특히 IoT게이트웨이에 탑재된 시스코 분석SW가 IBM 중앙 분석시스템에 알맞게 정제된 데이터를 건네는 기능을 맡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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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 IoT 분석 플랫폼 파워게임에서 IBM에 밀렸나

데이터 분석 기술의 수익성은 데이터 발생 위치부터 최종적인 소비 지점까지 아우를 때 가장 커진다. 시스코와 IBM이 이를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시스코가 데이터 발생 위치부터 중앙 인프라로 보내기 직전까지의 영역을 맡고, IBM이 중앙 인프라로 넘어온 시점부터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지점까지의 영역을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 듯하다. 이대로라면 시스코가 IBM에 휘둘릴 여지가 많다. 3가지 정황 근거가 있다.

하나는 시스코가 IBM과의 협력에서 지난 2월 인수를 예고한 '재스퍼테크놀로지스'의 기술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재스퍼의 기술은 IoT 인프라에 연결되는 여러 커넥티드디바이스의 정보와 거기서 오가는 데이터를 묶는 SW플랫폼으로 요약된다. 재스퍼 기술의 일부인 디바이스 제어 플랫폼은 IBM이 제공할 왓슨IoT와 통합될 수도 있지만, 재스퍼 기술이 전체적으로 활용되거나 그 브랜드가 부각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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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IBM애널리틱스 기술이 왓슨IoT 플랫폼이나 기업 중앙 인프라의 데이터 처리뿐아니라, 시스코 IoT게이트웨이 시스템에서도 돌아간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 보도를 보면 "IBM 왓슨과 비즈니스애널리틱스 SW가 이제 시스코의 게이트웨이 장비에서도 작동한다"며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지 않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는 양사 협력에 따라 IBM의 분석기술이 시스코의 IoT게이트웨이에서 돌아가며, 그에 따라 시스코 분석기술 역할이 제한받을 가능성도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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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하나는 지난해 발족한 시스코 기술 컨소시엄 '오픈포그(OpenFog)'에 끼지 않고 있는 IBM의 태도다. 오픈포그는 시스코의 포그컴퓨팅 아키텍처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인터페이스를 표준화한다는 명분아래 시스코와 인텔을 비롯한 몇몇 IT 업체들이 모인 단체다. 시스코가 판을 주도하는 곳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IBM은 컨소시엄 멤버가 아니다. 시스코에게 IBM을 끌어들일 명분이 있더라도, IBM은 거기에 별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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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양사 협력을 위해 시스코가 IBM에 한 수 접어 줬다면 그 근본 이유는 시스코의 '포그컴퓨팅' 아키텍처에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시스코는 여러해동안 IoT 인프라의 이상적인 청사진으로 포그컴퓨팅 아키텍처를 제시해 왔다.

시스코가 IoT 네트워크 전략의 핵심인 포그컴퓨팅 구현을 위해 참조 모델로 제안하는 데이터인모션(DMo) 분석 아키텍처 개념도. 분석과 변환을 위한 DMo 기술이 작동하는 것은 제3계층 데이터요소 영역이다.

그런데 시스코는 포그컴퓨팅 아키텍처의 핵심 요소인 네트워크 말단 데이터 처리를 맡는 기술로 엣지애널리틱스를 강화해 왔을 뿐, 그걸 넘겨받는 중앙집중식 클라우드 인프라와 분석 시스템까지 자체 확보하진 않았다. 뒤집어 말하면 IBM처럼 클라우드와 분석플랫폼을 갖고 있는 외부 파트너와의 기술 협력은 필연적이었다. 또 재스퍼의 IoT플랫폼은 시스코와 손잡은 IBM의 기술 전체를 커버할 수준이 되지 못하고,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시스코가 그 기술을 상용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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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IBM에게 시스코는 모든 산업군별 IoT 시장 공략 시나리오에 필수불가결한 파트너는 아니다. IBM이 앞서 포섭한 '왓슨IoT 파트너' 업체들의 면면을 통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왓슨IoT 파트너 명단에는 인텔, ARM 등 대부분 IoT 인프라에서 센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소형 기기 제작용 기판(인텔 에디슨, ARM mbed, 라즈베리파이 등) 및 IoT게이트웨이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회사들이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IoT게이트웨이 파트너 중 글로벌 차원의 협력은 인텔을 통해서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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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IoT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산업 현장에서, 시스코 대신 인텔같은 회사의 기술에 기반하는 IoT용 센서와 게이트웨이가 IBM의 IoT 데이터 분석 플랫폼과 연결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IBM이 이들을 제쳐 놓고 시스코를 우대하기로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IoT 인프라 데이터 분석을 원하는 기업들이 체감할 기술적 완성도와 효율성의 차이를 따진다면 시스코의 역할에 높은 점수를 줄 수야 있겠지만, 시스코가 IBM의 IoT게이트웨이를 독점 공급하는 파트너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