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왜 '삼성 특허소송' 재심리 요청했나

상고 명분 쌓기용…수용가능성 낮아

홈&모바일입력 :2016/03/30 16:21    수정: 2016/03/30 17:1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삼성과 2차 소송 항소심에서 역전패한 애플이 비상카드를 내걸었다. 2심 재판을 진행한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전원합의체 재심리(en banc)’를 요청하면서 전투 의지를 불살랐다.

미국 특허전문 매체 로360과 삼성 측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28일(현지 시각) 연방순회항소법원에 2차 특허소송 항소심 판결을 재심리해달라는 요청을 접수했다.

이번에 애플이 신청한 것은 전원합의체 재심리(en banc)다. 3인 재판부가 내린 항소심 판결이 합당한 지 여부에 대해 항소법원 재판부 전원이 다시 심리해달라는 요청이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 항소심이 열린 연방항소법원. (사진=연방항소법원)

■ 삼성도 지난 해 10월 1차 소송 재심리 요청했다 기각당해

당연히 두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하나는 애플은 왜 곧바로 상고 신청을 하지 않고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요청했냐는 부분이다. 또 다른 논점은 과연 항소법원은 애플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점이다.

항소심에서 패소한 측이 곧바로 상고하지 않고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요청하는 것은 미국에선 흔하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삼성도 디자인 특허가 쟁점이 된 1차 특허소송 당시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삼성은 상고 신청에 앞서 지난 해 10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항소 기각 판결에 대해 전원합의체 재심리 요청을 했다.

당시 삼성은 “항소 기각 판결이 대법원의 여러 판례들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은 모순된 언동을 금하는 ‘에스토펠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면서 다시 한번 심리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내 11개 연방항소법원의 관할 구역. (사진=위키피디아)

애플 특허가 무효 공방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5억4천800만 달러 배상금을 즉시 지급하라는 명령은 부당하다는 것이 삼성의 주된 논리였다.

하지만 항소법원이 전원합의체 재심리 요청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항소법원이 스스로 소속 판사들이 내린 판결에 의구심을 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항소법원은 삼성이 지난 해 10월 제기한 전원합의체 재심리도 기각했다.

■ 애플, 대법원 상고 염두에 둔 조치인 듯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왜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요청하는 걸까? 그 이유는 우리와는 다른 미국의 상고 절차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은 엄격한 상고 허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항소심에서 패소했다고 해서 전부 대법원에서 공방을 벌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법원이 심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건에 한해서만 상고를 받아주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들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이 한 해 상고를 받아주는 비율은 1%가 채 안 된다. 그만큼 대법원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실제로 오라클과 자바 저작권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던 구글은 상고 신청했다가 기각당했다.

통상적으로 대법원은 하급 법원 판결에 심대한 흠결이 있거나 새로운 판례를 확립할 필요가 있을 때 한해 상고를 받아준다.

미국 대법원 (사진+씨넷)

미국 대법원이 디자인 특허가 쟁점인 삼성과 애플 간 1차 특허소송에 대한 상고 신청을 수용한 것은 두 번째 이유 때문이다. 120년 동안 디자인 특허를 다룬 적 없기 때문에 한 번쯤은 새로운 판례를 확립할 필요가 생겼단 판단을 한 셈이다.

삼성은 지난 해 재심리 신청이 기각된 뒤 곧바로 대법원 상고를 하는 수순을 밟았다. 재심리 신청 자체가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간접 부각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애플이 항소법원에 전원합의체 재심리 요청을 한 것도 비슷한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상고 신청에 앞서 입지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 삼성, 1차소송 상고 성공…애플은 어떨까

당연한 얘기지만 항소법원이 애플의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높지 않은 편이다. 3인 재판부의 판결 자체가 심대한 흠결이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2차 소송 핵심 쟁점인 애플 데이터 태핑 특허(647) 보호 범위에 대해 좁게 해석하는 것은 항소법원의 일관된 관점이었다. 이미 애플이 모토로라와 벌였던 특허소송에서도 비슷한 판결을 한 적이 있다.

따라서 애플의 이번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애플은 재심리 요구가 기각될 경우 곧바로 상고 신청을 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미국 대법원이 애플의 상고 신청을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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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부분에 대해선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새로운 판례 확립’ 필요성이 컸던 디자인 특허 소송과 달리 2차 특허소송은 그런 논점은 크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항소법원의 판결 역시 소프트웨어 특허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 대법원의 최근 판결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는 편도 아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