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진짜 핵심은 인간과 기계의 협력

이세돌-알파고 '신의 두수' 통해 동반성장 보여줘

과학입력 :2016/03/17 10:32    수정: 2016/03/17 17:4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의 역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벌써부터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전부 빼앗아가는 것 아니냐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인류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인간과 기계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또 다른 메시지도 보여줬다.

이런 관점을 제시한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디지털 문화 전문 매체인 와이어드다. 와이어드는 16일(현지 시각) 알파고가 2국에서 뒀던 37수와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놨던 78수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세돌 9단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나란히 앉아 있다. 이번 대국은 인간과 기계의 협력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2국 37수와 4국 78수는 ‘알파고의 아버지’인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신의 두 수’였다. 하사비스는 4국이 이세돌 9단의 승리로 끝난 직후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뒀던 78수와 알파고가 2국에서 둔 37번째 수는 두고 두고 거론될 명수”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 2국 37수, 1만 번에 한 번 나올만한 수

지난 10일 열린 제2국. 심기일전한 이세돌 9단이 초반 우세를 유지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알파고가 우측 중간 지점에 37수를 두자 여기저기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둘 수 없는 수였기 때문. 미국 해설자인 마이클 레드먼드 9단은 “이상한 행마”라면서 “알파고의 실수”라고 평가했다. 한국 일부 해설자들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충격을 받긴 이세돌 9단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대국장을 떠났던 이세돌 9단은 15분 동안 장고를 한 뒤에야 응수를 했다.

지난 해 10월 다섯 차례 대국을 하면서 알파고를 경험했던 판후이 2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 역시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뒤엔 “정말 아름답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인간의 행마가 아니다. 사람들은 실제 경기에서 이런 행마를 보여주는 걸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2국 판세를 가른 알파고의 37수(붉은 표시). 알파고는 이 수가 1천 번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수라는 계산을 했다.

결국 이 수는 2차전을 결정짓는 ‘회심의 한 수’가 됐다. 경기가 끝난 뒤 이세돌 9단이 “경기 처음부터 단 한 번도 내가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털어놨을 정도였다.

알파고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실버는 2국이 끝난 뒤 통제센터에서 37수의 의미를 분석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데이비드 실버는“알파고는 인간이 어떻게 바둑을 두는 지 이해할 뿐 아니라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수를 볼 능력도 있다”면서 “2국 37수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알파고는 2국 37수가 인간이 1만번에 한 번 정도 둘 가능성이 있는 수라는 계산을 해냈다. 그런 다음엔 앞으로 이어질 수들을 추론한 뒤 바로 그 지점에 과감하게 착점했다.

그리고 이 수는 ‘핵심을 찌른 승부수’ 역할을 해냈다.

■ 4국에서 '1만 번에 한 번 나올 수'로 응수한 이세돌

13일 열린 제4국은 이세돌 9단에겐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이미 세 게임 연속 패배하면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우승은 알파고 차지가 된 상황.

하지만 승부사 이세돌 9단은 절박했다. 한 판이라도 이겨서 프로 기사의 자존심을 회복해야만 했다.

대국 중반까지만 해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경기를 지켜본 모든 사람들은 이세돌 9단이 밀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한 현장 해설자는 “이세돌 9단이 뭔가 특별한 수를 둘 필요가 있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엔 집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회심의 수였던 78수는 그 상황에서 나왔다. 가로 세로 19칸씩 있는 바둑판 중간 지점 근처에 놓인 한 수. 이 9단이 쐐기처럼 보이는 이 수를 놓은 직후 경기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둔 78수(붉은 표시)는 승부를 가른 신의 한 수였다. 경기가 끝난 뒤 알파고는 이 수도 1천 번에 한 번 둘 수 있는 수로 연산했다.

알파고는 실수를 연발하면서 스스로 무너져버렸다. 미국 해설자인 마이클 레드먼드 9단은 “그 수는 대부분의 상대를 놀라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알파고 역시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데미스 하사비스 역시 “알파고가 87수 무렵이 되어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하사비스는 “알파고는 이세돌의 78수에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면서 “인간이 그런 수를 둘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알파고는 수 개월 동안 훈련을 통해 그 상황에서 78수를 놓을 확률이 1만 번에 한 번 정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 결국 이세돌 9단의 78수는 알파고가 2국에 놨던 37수 만큼이나 나오기 힘들었던 한 수였다.

결국 이세돌 9단과 알파고는 모두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될 ‘신의 한 수’를 주고 받았던 셈이다.

■ 이번 대국은 인간과 기계의 긍정적 자극 가능성 보여줘

와이어드는 이 같은 사실을 토대로 “7일간 계속된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우리가 얻어야만 할 교훈이 바로 이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번 대결을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혈투가 아니었다는 것. 와이어드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결하지 않았더라면 4국 78수는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인공지능에 패배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 상황은 지난 해 10월 알파고에 완패했던 판 후이 2단에게도 일어났다. 판 후이 2단은 이후 창의적인 바둑을 많이 두면서 세계 랭킹이 크게 올라갔다고 와이어드가 전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