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청이 국내 기업 서버와 스토리지 장비를 공공시장에서 3년간 우대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 결과를 30일 고시했다.
이날 중기청 측은 이 제도를 수혜 업체들이 "공정 경쟁을 통해 중소기업에서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징검다리"로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서버와 스토리지 품목을 만드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내년부터 2018년말까지 외국 업체와 경쟁하지 않고 연간 2천억원 규모 공공 조달 시장에 제품을 팔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육성이란 중기청의 명분이 시작부터 흐려지는 것 아니냐란 우려가 관련 업계에서 적지 않다. 중소 기업자간 경젱제품 지정 수혜 업체 중 하나인 이트론 전 회장이 배임 회의로 기소되면서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 한국컴퓨팅산업협회가 서버와 스토리지에 대한 경쟁제품 지정 신청은 사단법인 한국컴퓨팅산업협회가 주도했다. 서버 제조사인 이트론은 협회 회장사다.
김영준 이트론 전 회장은 수십억원대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중기청 측은 어떤 업체의 생산 품목을 공공시장에서 우대할지 판단하는 일과 해당 업체 경영진의 배임 여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트론 측도 자사 경영 상황과 김 씨의 관계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공시를 통해 전 회장의 구속기소 사실을 밝힌 뒤 공식사이트에선 회사 경영이 그와 무관하며 재무 상황도 양호하다고 진화에 나선 상태다.
이트론은 지난 10월 27일자 공시를 통해 "김영준은 당사의 임직원으로 재직한 사실은 없으나, 검찰 공소장에서는 당사의 실질적인 운영자로 기재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29일자 공식사이트 공지에선 "검찰에서 피고인으로 지목한 김영준은 당사의 주식 소유 및 임원 등재가 일체되어 있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참조링크(2015.10.27): 이트론 횡령ㆍ배임 혐의발생]
[☞참조링크(2015.10.29): 한국거래소 공시 관련 당사 의견]
이트론의 공식 입장만으로는 세간의 부정적 시선을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씨를 구속기소한 검찰 측 수사 현황에 따르면 그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재산을 관리하고 회삿돈을 빼돌려 개인적 이익을 도모했다.
이트론이 공시에서 구속기소됐다고 밝힌 김 씨의 이름은 이트론과 지분 관계로 얽혔거나 얽혀 있는 다른 기업들의 공시에도 비슷하게 등장했다. 이동통신기기 조립업체 '이아이디'와 발전기 및 전기변환장치 제조사 '이화전기공업'도 김 씨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공소 사건 내용을 각각 공시했다.
[☞참조링크(2015.10.27): 이아이디 횡령ㆍ배임 혐의발생(자율공시)]
[☞참조링크(2015.10.26): 이화전기 횡령ㆍ배임 혐의발생]
이트론의 제17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분 7.41%를 보유한 이아이디가 회사 최대주주다. 이아이디의 제14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분 21.07%를 보유한 이화전기공업이 이아이디 최대주주다. 이트론의 경영 실적과 재무 상황은 이아이디와 이화전기공업의 경영진이나 주요 주주들의 사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참조링크(2015.11.16): 이아이디 분기보고서(제14기)]
[☞참조링크(2015.11.13): 이트론 분기보고서(제17기)]
2개월 전 연합뉴스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이진동 부장검사)가 김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및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보도했다. 김 씨는 이화전기공업 그룹의 회장으로서 ▲작년 1월부터 1년간 이화전기공업과 계열사 회삿돈 약 87억원을 홍콩의 개인 회사로 보내 가로챘고 ▲2013년 6월에는 외국 자회사 파산신청 사실을 공지하지 않은 채 105억원 상당의 이화전기공업 유상증자를 했으며 ▲2012년에는 횡령한 회삿돈 18억원으로 자회사 주식을 차명으로 사들이고 허위 공시 등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7억원 상당의 차익을 챙겼다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참조링크(2015.10.27): '이용호 게이트' 배후 이화전기공업 김영준 회장 기소]
현재 검찰이 김 씨를 구속기소한 여파로 이트론 주식매매거래는 중지된 상태다. 상장폐지 가능성도 불거졌다. 지난달 중순 한국거래소가 이트론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트론은 상장폐지를 막고 주식매매거래가 재개되도록 하기 위해 지난달 7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향후 2개년 영업계획과 배임혐의금액(33억원, 자기자본대비 7.88%) 보전방안을 포함한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했다. 올해 매출에서 서버제조부문이 상대적으로 감소해 유통부문 비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업용 태블릿, 스마트POS, 카지노칩 IoT솔루션 개발 등 사업을 진행 중이며 배임혐의금액에 상응하는 부동산 근저당권을 설정했다는 내용이다.
[☞참조링크(2015.11.16): 이트론(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결정]
[☞참조링크(2015.11.19): 이트론 주주님께 드리는 글]
[☞참조링크(2015.12.8): 이트론 주주님께 드리는 글 #2]
[☞참조링크(2015.12.24): 이트론 주주님께 드리는 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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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트론의 사업 방향은 향후 이 회사가 서버제조 전문업체보다는 다른 신규 사업을 통한 성장에 힘을 쏟겠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국산서버 제조사로서의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상장폐지 가능성과 김 씨의 배임혐의금액에 따른 손실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적절할 수 있겠지만, 중기청 공공우대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또다른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도 이트론을 비롯한 국내 제조사들의 서버 제품들은 주요 부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할 뿐 이렇다 할 기술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와, 이 점은 공공우대 제도를 통해 개선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