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안회사들에게 미국 시장 진출은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미국 시장은 보안 업계의 메이저리그다. 세계에서 통할만한 보안 제품이라면 미국에서 통해야 한다.
내로라하는 국내 보안 업체들이 계속해서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던 이유다. 문은 많이 두드렸지만 문을 제대로 연 곳은 없다. 미국 진출 이후 성과를 못내 조용히 사업을 접거나 이름만 걸어둔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회사들이 늘다보니 미국 시장은 국내 보안 업체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쯤되면 이제 국내 보안 업체는 미국 시장 진출의 꿈을 접을것도 같은데, 사장님들은 그게 잘 안되는가 보다. 최근 미국 시장을 문을 두드리려는 또 하나의 국내 보안 업체가 등장했다. 네트워크접근제어(NAC) 솔루션 전문 업체 지니네트웍스다. 지니네트웍스는 당장 내년 1월부터 정식으로 현지법인을 설립한다. 미국 내에서 자사 제품에 대한 사용성을 검토하기 위해 뉴햄프셔 주립대 이노베이션센터 산하 상호운용성 연구소(UNH-IOL)와도 공동연구를 진행키로 했다. 지니네트웍스는 미국 시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15일 만난 이동범 지니네트웍스 대표는 "적어도 망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보안회사가 미국 시장에서 내세울만한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여러가지 난관을 거쳐야 한다. 기술력은 기본이고, 브랜드 인지도가 약하다는 점 외에도 마케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여기에 여러가지 변수까지 고려하면 '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상당히 오랜기간 고민해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반드시 성공해내겠다'는 각오보다도 국내 보안회사들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왜 하필 미국이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정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회사들이 일본, 중동,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단발성 수출에 그치는 탓에 지속성이 없다. 예를들어 해외 전자정부 구축사업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해에 50만달러 수출실적을 냈다고 다음해에 100만달러 수출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로 브랜딩을 꼽았다. 미국 시장에서 업계 선도기업들과 협업 또는 경쟁하면서 실적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되레 다른 나라에서 지속가능한 실적을 올리기 위한 필수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기술력이 뒷받침돼야하고, 경쟁사가 많은 레드오션이 아니라는 전제가 따른다.
그는 이전 직장에서 처음으로 국산 방화벽을 만들어 수출까지 노렸던 어울림정보기술에서 기술본부장을 맡았던 경험이 있다. 2002년, 2003년 당시 이 회사는 미국 뉴저지에 마이크로시큐어라는 현지법인을 세우기까지 했으나 결국 얼마 안돼 문을 닫고 말았다. 현지에서 기술 관련 지원업무를 담당했었던 이 대표는 2005년 지니네트웍스를 창업하기 전부터 미국 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했던 것이다. 이 대표는 "이때부터 어떻게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도전해 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NAC는 미국 시장에서도 시스코, 포어스카우트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지니네트웍스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네트워크는 물론 PC,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포함해 수많은 단말기들을 기업, 기관 내부 네트워크에 물리기 전에 보안정책 준수하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와 수많은 종류의 단말기들을 제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시스코, 포어스카우트는 주로 대기업과 같이 규모가 큰 사업장에 대해서만 NAC 솔루션을 구축해 왔다. 사내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모든 단말기를 관리하는 것만으로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중소, 중견기업 시장까지 들어갈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시스코, 포어스카우트의 고객사가 각각 2천여개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서만 800개~900개 고객사를 관리하고 있는 지니네트웍스 역시 현지 대응면에서는 크게 뒤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력은 어떨까. 이 대표에 따르면 과거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트러스티드 컴퓨팅 그룹(TCG)이 각각 NAC에 대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던 시기 TCG 내에 NAC 관련 표준화 워킹그룹에서 활동했던 보안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제품 경쟁력은 충분한데 미국 은 마케팅이 안 되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지니네트웍스는 미국 시장에서 크게 온라인 유통, 현지 파트너사들을 통한 유통으로 나눠 투트랙 전략을 쓴다는 계획이다.
이중 핵심은 중소, 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판매다. 현지에서 유통 파트너사도 활용하겠지만 미국 전역을 커버하기 힘들기 때문에 온라인 유통채널에서 자사 '지니안NAC' 무료 버전을 다운로드해서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한 뒤에 일정 이상 사용자를 확보하면 유료로 전환하는 모델을 계획 중이라는 설명이다. 온라인에서 판매, 유통, 설치 등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 UNH-IOL과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앞서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기술에 대한 경쟁력 못지 않게 브랜딩과 마케팅 역량도 중요한 요소다. NAC는 다른 보안솔루션들과 협업을 통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글로벌 보안회사들이 제공하는 보안솔루션과 지니안NAC을 연동시키는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니안NAC은 팔로알토네트웍스, 파이어아이, 최근 트렌드마이크로 등이 제공하는 보안솔루션들과 연동되도록 기술적인 협력을 마친 상태다. 예를들어 트렌드마이크로가 제공하는 APT대응 솔루션인 딥 디스커버리에서 탐지한 위험한 단말기를 지니안NAC이 차단하고 필요하면 백신프로그램인 'TM에이전트'를 통해 보안업데이트를 배포하거나 해당 에이전트와 서버의 연동상태, 버전정보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보안회사들의 협력사라는 것만으로도 미국 진출시 한국의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지니네트웍스는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매년 발표하는 각 산업분야에서 경쟁력,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되는 매직쿼드런트 보고서에도 NAC 분야에 대해 자사 이름을 올리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많은 보안회사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 글로벌 IT기업에 인수합병되는 사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서도 성공적으로 '엑시트(exit)' 하는 회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업계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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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 대표는 "한국 스타일이라 어쩔 수 없다"며 "바람직한 모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회사를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히려 이스라엘에서는 중급으로 성장해 성공적으로 글로벌 IT기업에 인수된 회사들은 많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처럼 대표적인 보안회사로 꼽을만한 곳이 없어 한국을 부러워하는 현지 담당자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로 10살을 맞은 지니네트웍스가 미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공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섣불리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적어도 '망하지 않을 만큼의 자신감은 있다'는 이 대표의 말이 성공확률을 높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