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디자인 특허권을 침해했는데 전체 이익을 환수하는 게 합당한가?”
애플과 특허 소송 중인 삼성이 14일(현지 시각) 미국 대법원에 상고 신청을 하면서 디자인 특허 배상 범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게 됐다. “대법원이 상고를 허락할 경우”란 단서가 붙긴 하지만 이 문제는 내년 대법원 뿐 아니라 미국 IT업계를 뒤흔들 핫이슈가 될 전망이다.
상고 신청을 한 삼성은 미국 디자인 특허법이 시대에 뒤진 낡은 법이란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삼성은 상고신청 문건에서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not in line with modern times)”란 표현을 사용했다.
■ 제조물품성 비롯한 핵심 개념 동원될듯
그 뿐 아니다. 삼성 측은 “현재 판례가 계속 유지될 경우 혁신을 저해하고 경쟁을 말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디자인 특허 괴물들이 경제와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소송에선 애플 특허의 유효성 못지 않게 ‘배상 범위’가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대법원이 삼성의 상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선 지난 5월 끝난 항소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항소심 당시 쟁점이 된 부분은 특정 디자인이나 기능 관련 특허를 침해했을 때도 특허 침해자의 전체 이익을 토해내도록 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1심에서는 그 부분을 그대로 인정했다. 항소법원도 1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여론은 이 판결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편은 못 된다. 항소심에 앞서 미국 법학교수 27명과 컴퓨터 및 통신산업협회(CCIA)는 1심이 특정 디자인 특허 침해 때도 포괄적인 배상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물론 항소법원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법원은 “법학교수 27명은 현대 사회에서 특정 디자인 특허권 침해 때 피고의 전체 이익을 배상하도록 한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면서 “이 문제는 의회에서 논의해야 할 정책 관련 주장이다”고 일축했다. 법원은 법에 충실해서 판결할 뿐 정책적인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당시 항소법원 판결에 대해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는 “CCIA의 주장은 단순히 정책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면서 “그것은 제조물품성(article of manufacture)의 적용과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제조물품성은 장식성(ornamentality)과 함께 미국 특허법의 주요 보호 대상이다. 미국에선 디자인 특허권을 인정받기 위해선 반드시 표현되는 물품이 있어야만 한다. 도면만으로는 특허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재판에 앞서 CCIA는 1심 법원이 물품성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CCIA는 항소법원에 “물품성은 디자인 특허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그 부품이 포함된 좀 더 큰 기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특히 CCIA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기도 했다. 즉 1심 재판부 판결은 내비게이션 디자인 특허권을 침해했는 데 차량 전체 가격을 피해보상액으로 부과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었다.
■ 구글-페북, "남의 일 아니다" 판단한 듯
이번 소송에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들이 삼성 편을 드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대법원이 애플 손을 들어줄 경우 자신들도 ‘디자인 특허 괴물’의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디자인 특허권에 대한 과도한 보호 문제는 미국에서도 계속 이슈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싱크탱크 중 하나로 꼽히는 링컨연구소는 특허 소송 남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좀 더 과감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일부 디자인 특허는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과도한 보호 문제는 쟁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삼성이 상고 신청서에 적시한 대로 양탄자와 스푼처럼 간단한 제품과 달리 스마트폰 같은 복잡한 제품은 디자인이 제품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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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잘 빠진 스푼과 역시 디자인이 잘 나온 스마트폰이 소비자들에게 소구하는 강도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은 이번 상고 신청을 통해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을 환수하는 것이 논리적인가?”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