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민용 공공 웹서비스 품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액티브X 같은 기술 때문에 불편해서 못쓴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모바일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민간과 공공 웹서비스 간 수준 차도 점점 벌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대로 두면 공공 웹서비스는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쏟아진다. 공공 웹서비스를 둘러싼 현재 상황과 향후 개선 방향을 점검했다.(편집자주)
#1
직장인 A씨는 평일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터넷으로 전입신고를 하려다 한 시간을 허비했다. 평상시 성능에 별 불편이 없었던 업무용 컴퓨터로 민원24 웹사이트 로그인 후 개인정보 확인과 발급절차 신청을 거치는 동안 키보드보안, 개인정보암호화, 인터넷민원발급, 발급모듈보완, 금융결제원전자지갑 등의 프로그램 설치 안내를 받고 설치, 브라우저 종료, 다시 로그인, 메뉴 선택 등을 반복한 결과였다. 이를 지켜 본 동료는 '휴가 내고 동사무소에 가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A는 그에 동의하며 허탈해 했다.
#2
직장인 B씨는 악명높다는 국세청의 홈택스 사이트에 들어가보기로 큰 마음을 먹었다. 그는 홈택스메인화면에 들어가 공지사항의 윈도10 관련 글을 읽으려 제목을 클릭했다. 하지만 공지사항 글을 읽으려면 통합 보안 플러그인을 설치해야 한다는 안내 팝업만 보고 웹브라우저를 닫아야 했다. 그의 컴퓨터가 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홈택스 홈페이지 개소 이후 단 한번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상태다. 그는 지금 다가올 연말정산을 위해 중고로 윈도7 컴퓨터를 구입해야 할 지 고민중이다.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가 자체 점검한 주요 대민서비스용 웹사이트의 윈도10 및 브라우저 호환성 점검 결과가 공개됐다. 그 결과 최신 운영체제 브라우저로 국내 주요 공공 웹사이트를 전혀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원24, 국세청, 특허청, 보건복지부, 교육부, 조달청, 농촌진흥청, 경찰청 등 중앙행정기관 웹사이트 20여곳이 액티브X 또는 별도 프로그램 설치를 이용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설치하라는 프로그램이 쓸데 없이 너무 많다’, ‘윈도 이외 환경에 대한 지원은 전멸 수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편의성이 이렇게 떨어지느냐’, ‘세금을 어디에 쓰는 거냐’ 등등 정부의 대국민 서비스 웹사이트에 쏟아지는 국민의 목소리는 10년이상 한결같다.
정부는 전자정부 서비스를 만든 이후 특정 영리업체 기술에 의존한 웹사이트를 만들고, 유지했다. 윈도를 쓰지 않거나, 특정 버전의 인터넷익스플로러(IE)를 쓰지 않으면 인터넷으로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국민에게 차별없이 보편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갖는 정부의 무책임이 드러난다.
공공 웹사이트를 포함한 '전자정부' 주무부처는 행정자치부다. 행자부가 공공 웹사이트의 문제점을 모르지 않았다. 정부는 수시로 공공 웹사이트를 새 단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사이트를 웹표준 기술로 개편하려 계속 시도했다.
지난 2009년 5월, 당시 행정안전부 정보자원정책과는 '전자정부 웹표준 강화 종합대책'을 내놨다. 특정 웹브라우저에구애받지 않고 전자정부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는 2011년까지 기존 대민사이트 50곳의 웹표준 개선을 예고했다.
유감스럽게도 문제는 그대로다. 프로그램 설치 강요, 웹 호환성 부재, 윈도 및 IE 이외 OS나 브라우저의 배제 등은 여전하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비롯해 정부기관은 종종 전자정부 발전 성과를 강조하며 대국민 편의성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색 내지만, 국민에 대한 공공기관의 '차별 행위'는 시정되지 않았다.
가령 2009년 정부의 웹표준 강화 종합대책은 3개 브라우저 이상에서 정상 동작하면 비표준 프로그램 설치를 허용하는 '기본 방침'을 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비표준 프로그램이 유지됐을 뿐 아니라, 2015년 현재 MS, 구글, 모질라 등이 기술 및 정책을 변경함에 따라 대부분의 브라우저에서 공공 웹사이트를 쓸 수 없게 되는 사태마저 초래했다.
정부에서 공공웹사이트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지한 게 이미 6년 이상 지났다. 중간에 개선 노력도 진행됐다.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앞서 예로 든 국세청 홈택스가 대표적이다. 홈택스는 2천억원의 세금을 투입하고, 국민 대다수가 쓰지 못하는 괴물로 만들어졌다. 정부가 홈택스를 사용하려는 국민에게 최신 버전인 윈도10을 쓰지 말라고 공지하는 웃지 못할 광경마저 벌어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정부의 개선 노력에도 공공 웹사이트의 불편함은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 있을까.
일단행자부는 그 나름대로 문제를 파악하고 지난해 7월 대민업무 웹사이트에 액티브X, NPAPI 등 플러그인 형태로 깔리는 프로그램을 최대한 웹표준(HTML5) 기술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올해 선행작업을 거쳐 내년부터 정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앙부처 41곳, 지방자치단체 및 교육청 각 17곳, 공공기관 315곳 등 390개 기관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1만2천여곳 가운데 3분의 2 정도의 사이트에선 액티브X 제거 작업을 마쳤다. 나머지 3분의 1은 대민업무상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액티브X를 사용 중인데 내후년까지 순차 개선하기로 했다. 다양한 웹브라우저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다수 공공웹사이트의 출력물 보안, 키보드보안, 공인인증서 구동 프로그램 등은 여전히 액티브X같은 플러그인 기술에 의존한다. 행자부는 액티브X가 쓰이는 곳에서도 최근 출시된 윈도10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문제는 없다고 밝혔지만, 비표준 기술 의존성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약해 보인다.
이런 태도로 공공웹사이트를 구축하면 당장 출시된 최신 운영체제나 웹브라우저에선 돌아가도, 나중에 또 달라질 수 있는 기술 환경에 대비할 수 없다. 이래서는 계획이 실행돼도 피부에 와닿는 개선을 장담할 수 없다. 그간 정부 서비스에서 액티브X 문제가 잊을만하면 되살아난 이유도 이와 같다.
6년전 행안부 웹표준 강화 종합대책 수립 과정에 민간 부문 자문위원으로 관여했던 웹퍼블리싱 전문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10년 전부터 많은 시도를 해 왔는데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한다. 전자정부서비스 개편은 2009년에 시작됐는데, (이후 상황이 더 나빠져) 그 논의에 참여했다는 걸 요즘 어디 가서 말하기가 부끄럽다. 모든 제안요청서(RFP) 공고에 웹표준 준수 나와 있는데도(기관들이 지키질 않는다). 국세청(홈택스)만 해도 불가피한 2개 (비표준)모듈 빼고 다 빼게 했었는데, 이번에 10여개가 들어갔다. 개악이 된 거다."
비표준웹기술에 의존하는 주요 전자정부 공공웹사이트는 특정 기업 제품을 쓰지 않는 시민들을 차별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행정자치부가 2009~2011년, 이용빈도가 높은 공공웹사이트를 가려 웹표준으로 전환을 추진했는데, 올초 개편한 국세청 '홈택스' 사이트에서도 10여개 플러그인 설치를 안내하는 모습을 보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다음편에 계속-
관련기사
- 공공 웹서비스 혁신의 3가지 키워드2015.11.02
- 대민 웹서비스, 어쩌다 이렇게 불편해졌지?2015.11.02
- AI폰 '기지개' 폴더블폰 '주춤'…새해 '슬림폰' 뜬다2024.12.27
- 삼성·SK, 낸드 불황에 원가절감 전력…구세대 설비로 개조로 'V9' 대응2024.12.27
[연재 순서]①민간과 격차 심화...국가 생산성 저하 우려②대민 웹서비스, 어쩌다 이렇게 불편해졌지?③공공 웹서비스 혁신의 3가지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