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장에서 국산 IT장비를 우대하는 정책을 놓고 사업자들이 대립하는 품목은 서버와 스토리지뿐만이 아니다. 앞서 해당 정책의 수혜를 받아 온 통신장비 품목에 대해서도 사업자간 찬반 의견이 맞선 상황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년전 관계부처 합동으로 ICT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외산에 치우친 ICT인프라 핵심장비 수요에 국산 비중을 늘려, 오는 2017년까지 ICT장비 생산력을 10위권 수준에서 5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다. (☞관련기사)
그 일환으로 미래부는 중소기업청에서 연말에 지정해 2016~2018년 적용되는 중소기업자간경쟁제품(이하 '경쟁제품')에 국산 IT장비를 포함시키려는 민간업체들의 움직임을 지지한다. 경쟁제품에 포함된 품목은 공공시장에서 대기업, 외국업체 제품 입찰이 배제된다. 해당 품목을 국내에서 직접 제조하는 중소기업들만이 공공기관들의 장비구매 사업에 입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을 기대하고 한국컴퓨팅산업협회가 서버와 스토리지 품목을,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구 한국정보통신산업협동조합, 이하 '협동조합')이 통신장비 품목을 경쟁제품으로 신청 중이다. 통신장비 품목은 크게 '다중화장치', '데이터포트장치', '전화 교환기 네트워크 연결장치' 등으로 분류돼 있다.
그런데 18일 현재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이하 '공사협회')는 서버와 스토리지 품목 일체와 통신장비 품목 일부에 대한 경쟁제품 지정을 반대하고 있다. 공사협회의 서버와 스토리지 품목에 대한 반대 논리는 이를 반대하는 다른 주체들과 대동소이하나(☞관련기사), 통신장비 품목에 대한 반대 논리는 약간 다르게 제시됐다.
우선 협동조합이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한 통신장비 품목은 ▲다중화장치(시분할다중화장치, 다중통신장비, 광다중화장치) ▲데이터포트장치(채널서비스유닛, 디지털서비스유닛, 데이터포트장치) ▲전화·교환기 네트워크 연결장치(자동안내시스템, 통합배선반, 동보장치)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 공사협회의 경쟁제품 지정 반대 의견은 '전화 교환기 네트워크 연결장치' 분류 가운데 '동보장치'와 '통합배선반(구내단자함, 국선단자함, 본배선반, 중간배선반)' 제품에 한정돼 있다. 같은 분류에 포함된 '자동안내장치'는 공사협회 측의 반대 의견 대상 품목에서 빠졌다.
공사협회는 지정 반대 의견에서 ▲규정상 전체 1% 정도인 '직접제조' 공사업등록기업만 입찰이 가능해 여타 정보통신설비공사 중소기업 참여가 오히려 제한되며 ▲기관에서 구매목표비율을 맞추려고 경쟁제품 아닌 품목을 포함하기도 하는 반면 ▲발주 금액은 이미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는 액수(2억1천만원) 미만이라 지정되지 않아도 대기업 참여 제한 효과를 달성한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공사협회와 협동조합은 오는 24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제1소회의실에서 조정회의를 진행한다. 각자 지정 반대의견과 지정 필요성의 근거를 갖고 토론이나 이해관계 조율을 통해 통신장비 경쟁제품 지정여부나 지정방식 등을 정리하게 된다. 중기중앙회는 그 논의 결과에 따라 지정 추천 대상에서 뺄지 말지 결정해 중기청에 이를 넘긴다. 중기청의 최종 지정 시점은 오는 12월이다.
공사협회가 꼽은 반대 품목을 비롯해, 협동조합이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한 통신장비 품목은 통신선로 공사나 전송망 구축 등 과정에서 함께 납품 및 설치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IT업계에서 생각하는 일반적인 '네트워크 장비'와는 개념적 범주가 다르다.
데이터센터와 전산실 등에서 서버와 스토리지 인프라에 맞물리거나 외부 인터넷과 연결되는 제품을 지칭하진 않는단 얘기다. 이런 통신장비 제품에 대해서는 조달청 나라장터 목록정보시스템상 '네트워크스위치', '네트워크라우터', '네트워크시스템장비', '데이터전송장치', '데이터통신장비' 등의 분류명이 적용된다.
다만 협동조합이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한 품목 중 IT업계 사업자들이 의식할만한 대목이 없진 않다. 앞서 제시한 통신장비 품목들 중 '다중화장치' 분류에 해당하는 제품을 예로 들면, 광다중화장치 제품의 경우 대기업과 글로벌업체들이 눈독을 들일만한 공공기관들의 무선통합망 구축사업에서 주요 조달 품목에 해당한다.
현행 2013~2015년 경쟁제품 지정 품목에선 광다중화장치 제품 설명이 "광 통신의 반송신호 다중화와 역다중화, 동기 신호의 검출 및 동기 클럭 발생, 광-전 변환등의 전기 신호를 광 송출 신호로 변환, 송출하는 장치"로 간단했는데, 재지정 신청 자료에선 왠지 대단히 장황해졌다. 자료에 첨부된 '신청제품상세설명'이라는 항목을 일부 옮기면 아래와 같다.
"광 다중화장치는 주파수 분할 다중화, 시분할 다중화, 통계적 다중화, 패킷다중화, 파장분할다중화등의 방식으로 다중화를 하여 광으로 전송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서킷기반(TDM) 또는 패킷 기반(Ethernet)의 데이터, 영상, 음성 등의 다양한 신호(전송채널)를 회선, 패킷 또는 파장 등으로 다중화하여 다양한 통신 서비스를 하나의 광섬유로 전송하는 기기로, 망의 신뢰성 제공을 위하여 ITU-T 규격 수준의 OAM기능과 보호절체기능을 제공하며, SDH/SONET, MSPP 및 MPLS-TP의 PTN 장치와 파장 분할 장치인 WDM장치 등이 포함된다.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의 통신망 구성에 사용되는 제품으로써, 음성+데이터+영상 전송을 단일 장비에서 지원하는 차세대 제품임"
이전까지 공공기관에서 통신장비 구매사업 발주시 광다중화장치는 멀티서비스프로비저닝플랫폼(MSPP) 장비를 뜻했는데, 이번에 보강된 설명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앞으로는 흔히 '캐리어이더넷'이라 불리는 패킷전송네트워크(PTN) 장비같은 신기술 기반 제품도 광다중화장치 품목에 묶여서 대기업 및 외국업체의 조달 입찰이 불가능해진다.
MSPP 장비는 이더넷,T1,E1 프로토콜을 함께 처리하는 반면 PTN장비는 이더넷이 아니었던 광역망(WAN)구간을 포함해 모든 전송망을 이더넷으로 단일화해 처리한다. 국내 관련 장비 개발과 출시를 준비해 온 업체는 SNH, 코위버, 우리넷, 텔레필드, 다산네트웍스, 유비쿼스 등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캐리어이더넷 시장에서 지난 2012년 국제표준이 결정되기 전까지 국내 업체들은 통신사 인프라에 적용할 수 있는 대용량 장비 기술 대응과 제품 출시를 미뤄 오다가(☞관련기사) 제품 개발이 이뤄진 뒤부터 상용화 의지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PTN 국제표준은 알카텔루슨트, 화웨이 등 전송기술에 기반이 강한 업체가 참여한 ITU-T 표준(MPLS-TP)방식과 시스코, 주니퍼 등 라우터 기술에 기반이 강한 업체가 참여한 IETF 표준(MPLS)방식으로 2가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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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업체들은 국내 사업자들에 비해 기술적으로 대응이 앞서 있었기에 국내 캐리어이더넷 시장에 대한 기대가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PTN장비를 경쟁제품에 공식 포함시킬 경우 서버 시장에서처럼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이미 올상반기 진행된 부산교통공사 철도무선통합망(LTE-R) 구축사업에서 광다중화장치 품목에 MSPP가 아닌 PTN장비도 경쟁제품에 포함된다는 중기청의 해석이 내려지면서, 장비 공급업체로 사업에 참가했던 알카텔루슨트와 화웨이가 입찰 기회를 잃었던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