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미래창조과학부에 적(籍)을 뒀으면서도, 조만간 적(敵)으로 만날지 모르는 두 협회가 있다. 이들은 정부의 국산ICT장비산업 육성정책에 대한 입장차 때문에 대립하게 됐다. 미래부 담당 공무원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국내 서버 및 스토리지 제조사 10여개 업체의 연합인 '한국컴퓨팅산업협회'와, 국내 정보통신공사업체 8천여곳이 가입한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다. 이들은 연내 결정될 서버와 스토리지 장비의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이하 경쟁제품)' 지정 여부를 놓고 맞선 상황이다. 양측이 이번주 예정된 조정회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래부는 어떻게 대응할지는 확실치 않다.
경쟁제품 지정제도는 특정 품목에 대해 국내 중소기업에만 공공시장 납품 기회를 주는 제도다. 이에 지정될 경우 그 품목을 파는 대기업과 외국계 제조사는 원칙적으로 공공시장에서 일정 기간 납품 기회를 얻지 못한다. 중기청을 통해 올 연말께 지정 공고될 품목들은 2016~2018년 3년간 경쟁제품으로 분류돼, 공공입찰 과정에서 대기업 및 외국계 제조사들과의 경쟁을 걱정하지 않게 된다.
■한국컴퓨팅산업협회(K-CIA) "국산 서버·스토리지, 공공시장 우대 필요"
한국컴퓨팅산업협회(이하 '산업협회')는 국내 서버 및 스토리지 장비 제조업체의 연합으로 지난해 1월 출범했다. 최대 설립 명분은 중기청 경쟁제품 목록에 서버와 스토리지 품목을 포함시켜, 공공시장에서 국산장비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재작년 발표된 정부의 국산ICT장비산업 육성정책과 맞물린다. 미래부는 지난해 2월 협회의 사단법인 설립을 인가하고 그 활동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담당부서는 정보통신산업과다.
산업협회에선 현재 회장사인 이트론, 부회장사인 이슬림코리아와 태진인포텍, 이사사인 가야데이터, 글루시스, 넷클립스, 디포커스, 명인이노, 삼화에이스, 어니언소프트웨어, 이나루티앤티, 클루닉스, 테라텍, 틸론, 패브릭시스, FA리눅스, HPC코리아, KTNF 등이 기업 회원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되는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기타공공기관에 해당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부의 정보통신표준화사업 위탁관리대상자로 지정된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등은 특별회원이다.
산업협회는 미래부가 추진 중인 국산ICT장비산업 육성정책 일환으로, 국산 서버 및 스토리지 품목을 중기청의 경쟁제품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 중이다. 중기청은 지난해 상반기 임시로 진행한 '추가지정' 과정에서 산업협회 측 신청을 검토 후 한차례 기각했다. (☞관련기사) 산업협회는 올해 다시 진행된 2016~2018년 경쟁제품 지정 절차에 다시 참여 중이다. 이에 대한 중기청의 승인 여부는 연말께 나온다.
서버와 스토리지를 경쟁제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충 이렇게 요약된다.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연구개발부문 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해 국산ICT장비와 관련 솔루션 산업의 세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국내 장비제조업체는 외산 제품 쏠림이 고착화된 국내 시장에서 자체 투자를 지속하려면 어느정도 안정된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국내업체의 수익증대 요구와 미래부의 공공부문 ICT장비 국산화란 대의명분이 맞물렸다.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KICA) "국산 서버·스토리지, 경쟁제품 지정 반댈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이하 '공사협회')는 정보통신공사업법(구 '전신전화설비공사업법') 41조에 근거를 두고 국내 정보통신공사업자들의 영리활동 지원과 정보제공, 업계 전문가 경력관리, 관련법령 및 제도 개선을 수행하는 특수법인이다. 공사협회 측은 현재 회원으로 가입된 정보통신공사업체가 8천여곳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일부 IT산업매체, 정보통신공제조합,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 등 단체와 전국 주요 광역시·도 자치단체, 조달청과 특허청 등을 '유관기관' 목록으로 내걸었다.
공사협회는 지난 1963년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전신전화공사협회'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 지난 1971년 12월 '한국전신전화공사협회'란 이름으로 출범했다. 지금의 명칭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정부 위탁으로 정보통신기술자 경력관리업무를 맡게 된 1998년부터다. 공사협회의 소관 정부부처는 한국 IT전담부처의 흐름과 맥을 함께 했다. 공사협회는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법정법인으로 등재돼 있다가 현 정권 출범 후 설립된 미래부 소속이 됐다. 지금은 미래부 통신정책기획과 소관이다.
공사협회는 미래부가 추진 중인 국산ICT장비산업 육성정책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국산 서버 및 스토리지 품목을 중기청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대 논리는 그간 외산장비업체, 그 유통 및 솔루션 파트너들을 통해 제기된 '수요자(발주기관)의 피해' 논리와 어느정도 겹친다. 발주기관에게 적정가격에 필요한 성능과 기능을 갖춘 제품, 호환성과 안정성이 예측가능한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데 선택을 국산제품 테두리로 제한하는 경쟁제품 지정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관련기사)
12일 관련 질의에 답변한 공사협회 정책사업본부의 공대진 제도개선국장의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국컴퓨팅산업협회 신청품목의) 경쟁제품 지정을 반대한 게 맞다. 우리는 서버와 스토리지 품목만이 아니라, 이번에 (다른 법인에서) 경쟁제품 신규 지정을 신청한 전자정보통신분야 품목 대부분에 지정 반대 의견을 냈다. 우린 발주기관들이 제품이 외산이든 국산이든 필요한 사양에 맞춰 선택하길 원한다고 본다. 이미 구성된 인프라와 기술규격 등 제품 호환성 측면에서 신경쓸 부분도 간단치 않다. 이걸 무시하고 갑자기 국산제품으로 일괄 제한하는 건 안 맞다. 정부의 국산 중소업체 육성취지엔 공감하지만 중소기업들은 이미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상 대기업참여제한 규정으로 80억원이하 규모의 사업 참여시 보호를 받고 있지 않나."
■미래부-한국컴퓨팅산업협회 '당혹'
사실 서버 및 스토리지의 경쟁제품 지정에 반대 의견을 낸 곳은 한둘이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공공구매정보망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재한 '경쟁제품 신청제품 반대의견 접수 및 조정회의 일정' 표에 따르면 공사협회와 한국HP 포함 71곳이 서버 품목 지정을 반대하고, 공사협회 포함 13곳이 스토리지 품목 지정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링크)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한 산업협회와 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미래부 입장에선 여러 이해당사자와 협의하고 그들을 설득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서버와 스토리지의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한 쪽과 반대하는 쪽은 오는 20일 오전10시부터 중기중앙회 제2소회의실에서 만나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산업협회 측은 공사협회의 지정 반대 입장이 뜻밖이란 입장이다. 12일 산업협회의 김진택 사무국장은 공사협회가 지정 반대의견을 접수했다는 얘기를 듣자 "공사협회는 통신장비와 지하선로공사 등 이름 그대로 '공사업' 위주 활동하는 회원사들이 대부분이라 그들에겐 큰 이해관계가 없을 것이라 봤는데 이해하기 어렵지만 확인해 보겠다"며 "우리는 지난해 (추가 지정 절차 과정 당시) 제기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고, 외산 제품 관련 업체들과 상생 방안 마련하는 것도 계속 논의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산업협회뿐아니라 미래부에서도 공사협회의 입장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지난 11일 당시 미래부 정보통신산업과 ICT장비산업육성담당 장영호 사무관은 관련 질의에 "공사협회 반대 의견을 냈다는 얘기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항"이라며 "확인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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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협회는 지난해 경쟁제품 추가지정 절차가 진행될 때 이미 반대 입장을 취한 상태였다. 공대진 국장은 "지난해 중기중앙회 공청회에서 공개발언을 하진 않았지만, 반대의견은 접수를 했었다"며 "당시 중기청에서는 최종적으로 서버와 스토리지 제품의 지정을 기각한 뒤 올해 진행될 재지정 절차를 통해 '이해당사자간 의견 조율을 해보라'는 회신을 줬다"고 설명했다.
또 공 국장은 공사협회가 서버와 스토리지 제품의 지정여부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공사업법시행령의 '별표'에 등재된 전산, 방송, CCTV 등 업종을 포괄한 장비와 설비 구축까지 공사업의 분야로 보고 있다"며 "공사업을 단지 통신용 케이블을 깔고 잇는 분야, 관로와 선로공사 쪽에 국한시키는 건 구시대적 관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