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사태 장기화…우려되는 악재들

[이슈기획③]기업 미래 경쟁력 약화시킬 수도

홈&모바일입력 :2015/07/08 08:40    수정: 2015/07/08 13:57

정현정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를 놓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의 주주이익을 훼손하려 한다는 엘리엇의 주장과 빈 틈을 노려 기업을 위협하는 외국계 '먹튀 펀드'의 주도면밀한 공격이라는 논리가 맞서고 있다. 양측은 합병 결의를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각각의 논리로 주주를 설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엘리엇의 가처분 신청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다양한 구조개편을 시도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디넷코리아는 삼성물산과 엘리엇 공방의 배경과 우려 사항을 3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삼성 흔드는 엘리엇, '정의의 사도'인가

②공격 받은 삼성, 무엇을 준비하나

③엘리엇 사태 장기화…우려되는 악재들

“많은 행동주의 펀드들은 마치 강도들이 진열장을 깨서 물건을 훔쳐가는(smash and grab) 것과 유사한 수법으로 기업들의 재무제표에서 여유자금을 빨아들이는 공격을 행한다. 기업이 투자나 연구개발(R&D) 등 힘을 쏟는 대신 자사주 매입을 위해 빚을 지게 하거나 배당금을 높여 주가를 올리는 행위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 제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미국 경제주간지 배론스에 실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로렌스 핑크 회장의 말이다. 헤지펀드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를 이끄는 넬슨 펠츠 회장을 조명하는 이 기사에서 핑크 회장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이미 트라이언이나 칼 아이칸, 서드포인트 등 이른바 행동주의(Activism)를 표방한 헤지펀드들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재계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일부에서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주주가치를 극대화시킨다는 옹호론이 있는 반면, 사실상 '표퓰리즘'을 악용해 단기적인 주가 띄우기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비판론도 상당수다.

특히 행동주의 투자자들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업들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가 부양에만 자본을 투입하다 보니 정작 기업의 연구개발(R&D)이나 인력확충(고용) 등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도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에서도 이같은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사태 초기만 해도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치부됐지만 엘리엇이 장기간 치밀하게 공격을 준비해 온 정황이 드러나고 '물고 늘어지기식' 집요한 요구사항이 나오면서 국부 유출과 경쟁력 악화 우려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 외국계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경영권을 위협받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SK그룹과 소버린 사태다. 지난 2003년 영국 소버린자산운용은 SK 주식 14.99%를 매입해 2대주주에 오른 뒤 2년3개월 동안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최태원 회장 퇴진 등 경영진 교체와 계열사 청산 등을 요구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상승하자 소버린은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로 변경한 뒤 SK 지분 14.82%를 전량 매각하며 1조원에 달하는 시세차익과 배당금을 챙겨 떠났다. 그러나 SK는 당시 우호세력을 만드는 등 경영권 방어에만 1조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했다.

지난 2006년에는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이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T 주식 6.59%를 사들인 뒤 사외이사 1명을 확보, 자회사 매각과 주요 자회사 한국인삼공사 기업공개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개입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칼 아이칸은 그 해 말 주식을 매각해 1천500억원을 얻어 떠났지만 KT&G는 아이칸 측의 요구를 수용해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최대 2조8천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행동주의 펀드는 그동안 '무배당 철학'으로 유명하던 애플도 바꿔놨다. 고(故) 스티브 잡스 시절 애플은 사내유보금을 배당에 쓰는 대신 신제품 개발과 인수합병(M&A) 등 전략적 재투자에 몰두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칼 아이칸은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유도해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애플은 오는 2017년 3월까지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을 통해 주주들에게 2천억달러를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헤지펀드의 이같은 집요한 공격이 경영권을 흔들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으로 하여금 이를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 투입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수조원의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기업들이 투기자본의 요구에 따라 현금자산 배당에 나설 경우 미래경영을 위해 투입돼야 할 자금이 외국계 자본으로 흘러가면서 투자 위축이 불가피해진다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국내 대기업의 경우 배당 증가가 개인투자자들의 이익 증대 보다는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엘리엇 역시 이미 중간배당과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하는 취지의 정관변경을 제안한 상태다. 또 삼성물산 현 이사진을 독립적인 인물로 교체하고 이사회 내 위원회를 신설 또는 재설치하는 등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역시 엘리엇의 공격에 맞서 합병 법인의 배당 성향을 30% 수준으로 확대하고 주주권익 보호를 위한 거버넌스 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주주친화 정책을 약속했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지분 참여가 장기적으로 경영권에 큰 위협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7.12%의 삼성물산 지분을 가진 엘리엇은 제일모직과의 합병 후 지분율이 2.05%로, 지분 규모를 3% 이상으로 늘린다면 주요주주로 주주자격을 행사할 자격이 생긴다. 특히 실질적인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되는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전체에 대한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점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대부분의 행동주의 펀드가 가장 먼저 현금 자산 배당을 요구하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만 있을 뿐 주가의 지속적인 가치 상승을 가져오는데는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장기적인 저평가를 해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투자를 하지 않고 외국펀드 등의 요구에 따라 배당만 많이 하다가는 기업의 미래가 없고 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투자자와 펀드투자자의 미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찬반 논쟁이 활발하다. 찬성론자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참여로 주가가 오르면서 주주가치가 제고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과도한 자사주 매입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배당을 강요받으면서 기업 본연의 미래 경영과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반대론자는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워렌 버핏은 지난 5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50주년 주주총회에서 "내재가치 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기업에게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건설적인 행동주의라고 볼 수 없다"면서 "행동주의 펀드들과 의기투합할 생각은 없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버핏 회장은 평소 “배당 보다 재투자가 주주들에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이유로 무배당 원칙을 고수하기로 유명하다.

관련기사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미래 투자에 대한 판단이 서면 신속한 생산라인 증설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든든한 자산규모는 기업의 미래 전략 수립에 필수적"이라면서 "자산이 없으면 신기술을 빠르게 제공할 수 없고 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기업에게 현물배당 요구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데이브 휘셀 프록시모자이크리서치 연구원은 최근 행동주의 펀드 관련 보고서에서 “자회사 매각이나 기업 분할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행동주의 펀드들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시도에서 주당순이익(EPS)을 오히려 희석시키는 경향을 보였으며 기업지배구조 개선 시도가 주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근거 데이터는 없다”면서 “자사주 매입의 효과는 단기적이며 장기적으로 운영 효율을 높이지 않으면 자사주 매입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증대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