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 SK텔레콤이 가입자말고 개발자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서도 분주한 모습이다. 앞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개발에 응용할 수 있는 방대한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 'T API'를 내놓고, 두 달 전 이를 소개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제목에 내건 책까지 엮어 오프라인으로 출간했다.
SK텔레콤이 내놨다는 책은 지난 2월 중순께 출간된 'SK텔레콤의 T API'다. 책의 핵심 주제는 T API라는 '기술'이지만, 이 책은 '기술서' 또는 개발 실습서와 성격을 달리 한다. 특정 기술을 다루는 프로그래밍 지식을 전달하려고 예제 소스코드와 그 결과물을 나열하는 구성을 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SK텔레콤은 몇년간 외부 개발자 지원 의지를 천명해 왔다. 시범 운영해 온 모바일 웹 및 앱 개발자 지원센터 'T디벨로퍼스'를 지난해 10월 정식 개장했고, 이후 국내 개발자 대상 세미나 또는 컨퍼런스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사 인프라 자원을 활용한 T API 소개와 확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종이책 출간도 업계 이목을 사로잡기 위한 T디벨로퍼스의 최근 행보다. 변화가 빠른 T API 소개를 위해 종이책이라는 정적인 매체를 동원했다는 점이 엉뚱해 보이지만, 달리 해석하면 그만큼 SK텔레콤에서 꾸준히 T API라는 기술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려고 애쓴 모양새다.
출간 주체인 T디벨로퍼스는 T API 기술 개발을 겸하고 있는 SK텔레콤의 개발자 에반젤리스트 조직이다. 지난 2년간 공식 사이트와 오프라인 개발자 대상 행사를 통해 SK텔레콤에서 개발하고 관리,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개발 기술을 알리고 의견을 받는 소통 창구 역할도 맡아 왔다.
SK텔레콤이 개방된 개발자 커뮤니티 확대에 적극 나서는 까닭은 뭘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같은 기술 플랫폼 거인들의 '개발자 유치 경쟁'에 끼어들기로 결정한 것일까? 또 이런 노력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책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한 단서를 함께 담았다. SK텔레콤의 T API 종이책은 지난 2월 16일 초판 1쇄로 나왔다. T디벨로퍼스에선 향후 그 개정판 내지 후속판 및 전자책 출간 가능성을 열어 뒀다. 공동저자 5명 중 오픈소스 개발자 1명(이종은)을 제외한 4명(유광엽, 이수경, 이준호, 최진호)은 T디벨로퍼스 활동과 T API 개발 담당 실무자들이다.
■프로그래머만을 위한 책 아니다
책은 개발자들에게 SK텔레콤의 T API라는 기술의 구체적인 사용법을 제시하는 대신, 이 기술의 아이디어와 활용 시나리오를 폭넓은 독자들에게 가급적 부담스럽지 않게 전하는 데 주력했다. 본문에 최소한의 예제 소스코드를 곁들이긴 했지만 나머지는 전적으로 '코딩 안 하는' 독자를 고려한 모양새다.
책이 흔한 기술서와 다르다는 건 각 장별 제목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1장 '새로운 API의 등장'과 2장 '왜 T API와 T디벨로퍼스인가'의 내용은 SK텔레콤이 T API를 내놓게 된 배경과 의의를 설명한다. 3장 'T API의 모든 것'은 주요 제공 항목과 최소한의 예제 소스코드, 활용분야를 제시한다. 이게 전반부다.
나머지 후반부 내용 역시 본격적인 프로그래밍을 위한 게 아니다. 4장 'T디벨로퍼스로 프로젝트 관리를'은 T API를 서비스하는 SK텔레콤 T디벨로퍼스 기반의 프로젝트 관리 방법을, 5장 'BaaS'는 T디벨로퍼스의 서비스형백엔드(BaaS)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한 것 뿐이다.
어쩌면 책이 기술서와는 거리가 멀다는 건 기자 혼자만의 착각이고, 실은 본문에 초고수 개발자들에게만 따로 보이는 암호문이 숨어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겼다. 책의 공동저자 중 1명인 SK텔레콤 T디벨로퍼스 유광엽 에반젤리스트에게 책의 기획 의도를 물었다. 그의 답변은 이렇게 요약됐다.
SK텔레콤의 T API라는 책은 독자를 일반적인 '프로그래머'에 한정짓지 않은 게 맞습니다. 독자로 전제한 '개발자'가 꼭 코드를 짜는 사람을 지칭한 것은 아니에요. 모바일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 대부분을 개발자로 표현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책이 업계 종사자 전반을 겨냥한 '기술 소개서'에 가까운 건 사실이다. 이는 책의 부제 '기획자와 개발자를 위한 IoT 시대의 개발 가이드'만 봐도 짐작 가는 부분이다. 사물인터넷(IoT)이란 용어도 얼핏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성격이 서로 다른 T API의 요소기술을 아우르기 위한 선택으로 이해된다.
T API에서 다루는 요소기술은 웹표준 '웹RTC(WebRTC)'를 응용한 양방향 실시간 통신기술 '플레이RTC(PlayRTC)', 증강현실(AR) 지원기술 'T-AR', 지오펜스 기술 '플레이지오(PlayGeo)', 음성인식 기술 '티케(Tyche)', 이밖에 안정적인 푸시 알림 또는 개인화를 위한 데이터 분석 서비스 등 다양하다.
■이동통신사가 API 세트 공개하는 이유
아직 T API라는 이름으로 묶인 기술들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명하지 않다. 개발자들의 관심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시기다. 고급 지식 확산은 그 다음 숙제다. 또 T API라는 기술은 지금도 빠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지면에 담기엔 한계가 있다. 책이 기술서가 아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SK텔레콤은 기존 사업 영역인 통신망 제공 역할을 벗어나 자사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 기획자와 개발자의 신규 서비스 개발이 이뤄지길 원한다. 외부 개발자들의 참여로 확보한 부가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OTT)가 장기적으로 SK텔레콤의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다.
SK텔레콤이 T API를 확산시키고 나선 것도 이런 관측의 연장선에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긴 부족한 시기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통신사 입장상 외부 개발자, 서비스 업체들과 상생 목적으로 자체 기술을 개방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당분간 개발자들의 신뢰를 쌓겠다는 게 목표다.
전반부 중 SK텔레콤이 T API사업 목적을 밝힌 다음 몇 줄이 인상적이었다. T디벨로퍼스는 API 유료화라는 단기적 사업 관점에서 벗어나 (…중략…) SK텔레콤에서 연구개발 과제로 진행 중인 다양한 플랫폼과 기술을 API로 과감히 오픈하고 있습니다. (본문 42쪽) 당장 돈 안 되는 걸 각오했단 얘기다.
이것만으로 SK텔레콤이 국내 서비스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와 기획자의 마음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같은 IT거인들은 이전부터 각자 개발자들에게 끊임없이 신기술을 선보이고 그 활용 수단을 가능한한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면서 기술 저변을 확장해 왔다. SK텔레콤이 이들과 맞붙을 경우 승산은 높지 않다. 이런 시각에 대해 유광엽 에반젤리스트는 이렇게 답했다.
(T API를) 구글같은 회사 따라서 만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그렇진 않아요. 인공지능이나 지오펜스 등 타사에선 내놓지 않은 (SK텔레콤만의) 기술 자산을 T API로 제공합니다. 다른 회사와 기술 생태계 경쟁에 따른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개발 과정에서 연계(매시업)를 통한 시너지를 기대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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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책의 후반부 다음으로 이어지는 '마치며'에 쓰인대로, SK텔레콤의 진정성을 담은 메시지가 실현될 수 있을지 지켜봄직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SK텔레콤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개발자 센터는 회사의 사업 방향에 따라 없어질 수도 있는 서비스라고 인식되는 것입니다. (…중략…) 한 개 두 개씩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개발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이 듭니다. (본문 229~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