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EMC, VCE 삼각동맹 와해 가속

일반입력 :2014/12/19 16:45

시스코시스템즈가 자사 유니파이드컴퓨팅시스템(UCS) 서버와 스위치 장비에 파트너의 스토리지를 결합한 통합솔루션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한때 'VCE연합' 안에서 손 잡았던 EMC와의 관계를 더 멀리하고 있다. 2개월 전 EMC가 VCE의 시스코 지분을 인수하면서 예견된 흐름이다.

시스코는 지난 8일 UCS서버와 IBM 스토리지 장비를 통합한 '벌사스택(VersaStack)'을 출시했다. 벌사스택은 시스코 UCS서버와 IBM '스토와이즈 V7000' 모델을 결합한 통합솔루션이다. (☞관련기사)

그로부터 1주일만인 지난 15일 UCS서버와 퓨어스토리지 올플래시 장비를 통합한 '플래시스택(FlashStack) CI'도 등장했다. 플래시스택CI는 퓨어스토리지의 올플래시스토리지 '400' 시리즈를 품었다. (☞관련기사)

이들은 기존 시스코 UCS서버, 스위치와 파트너의 스토리지를 결합한 통합솔루션 출시 대열의 선두주자다. 시스코를 중심으로 유사한 협력 구도는 이미 여러 번 그려졌다. 시스코는 4년 전 EMC, 넷앱과도 파트너십 기반 통합솔루션을 내놨다.

우선 시스코와 넷앱은 지난 2010년 11월 '플렉스포드(FlexPod)'라는 이름의 통합솔루션을 선보였다. 시스코 UCS서버와 스위치, 넷앱 'FAS3200' 스토리지를 하나로 묶은 장비였다. (☞관련기사)

플렉스포드는 그보다 6개월 먼저 나온 시스코와 EMC의 협력 솔루션 'v블록(vBlock)'과 종종 비교 대상이 됐다. 지난 2010년 5월 출시된 v블록은 시스코, EMC, VM웨어 투자합작사 'VCE연합'의 이름으로 공급됐다. (☞관련기사)

시스코 UCS서버와 스위치 제품을 결합해 만드는 장비의 스토리지 파트너가 4곳으로 다양해지면서, 이가운데 한때 시스코가 한 배를 탔던 VCE연합과의 관계는 그리 특별하지 않게 됐다.

표면상 시스코가 원하는 것은 4년 전이나 최근이나 '스토리지'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EMC와 2위 넷앱의 스토리지를 원했는데 이제는 3위 IBM과 순위권 밖 군소 업체 퓨어스토리지 장비를 찾는단 점이다.

시스코가 갑자기 여타 스토리지 업체와 손잡은 배경이 뭘까.

기술적인 차이를 배제하면, EMC와 만든 V블록이나, 넷앱과 만든 플렉스포드나, IBM과 내놓은 벌사스택이나, 퓨어스토리지와 만든 플래시스택CI나, 시장 접근을 위한 마케팅 메시지조차 4개 업체의 솔루션 모두 대동소이하다.

각 스토리지 업체는 자사 통합솔루션이 특성에 따라 시스코UCS 서버에 최적화된 클라우드,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 애플리케이션 구축과 배포 시나리오 등에 대응하며 제3의 파트너인 VM웨어의 가상화SW와 손쉬운 통합을 지원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단지 통합솔루션 고객들에게 다양한 스토리지 선택권을 제공하려 했다는 얘기 정도로는, 기존과 신규 파트너 협력 시점에 4년이란 시간차가 생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이제 와서 UCS서버와 결합하는 스토리지 제품의 공급업체의 고객 접점을 통해 접근 가능한 시장 영역을 넓히려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미 EMC와 넷앱이 여러 산업군별 고객층을 갖췄고 그에 맞는 여러 제품군을 공급해 온 상태다.

다만 시스코는 기존 스토리지 전문업체와는 다른 사업 특성을 갖춘 파트너와 손잡음으로써, EMC와 무관하게 UCS서버의 공급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늘리게 됐다.

일례로 IBM 벌사스택은 대기업 데이터센터, 프라이빗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석 인프라를 겨냥해 나왔는데, 향후 시스코 '애플리케이션중심인프라(ACI)' 및 '인터클라우드패브릭' 통합과 IBM 비즈니스애플리케이션 최적화를 예고했다. IBM이 스토리지 장비만 파는 게 아니라 여러 기업용 SW솔루션을 공급해 왔기에 제시할 수 있는 계획이다.

그리고 퓨어스토리지 플래시스택CI는 가상서버용과 VDI용, 2가지 모델로 소개됐는데 모두 단시간내에 수백대에서 수천대 가상 시스템을 확장, 배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왔다. 이는 올플래시스토리지 전문업체인 퓨어스토리지 장비의 높은 I/O 성능을 전제한 것으로 해석된다.

어쩌면 시스코가 UCS서버 동맹을 확대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효과는 따로 있다. 연말께 EMC 사업조직에 편입될 VCE에서 확실히 발을 빼더라도 충격을 줄일 수 있게 대비했다는 점이다.

EMC는 지난 10월 23일 시스코가 보유한 VCE 지분을 10%만 남기고 모두 사들이기로 했다. 두 회사의 구체적언 거래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계약에 따라 올 4분기 안에 VCE는 EMC의 내부 사업 조직가운데 하나로 편입된다. (☞관련기사)

EMC로 통합 작업이 완료되면 VCE는 더이상 시스코에게 EMC, VM웨어와 협력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게 된다. VM웨어는 이미 EMC의 자회사였고, 향후 지분관계상 VCE 역시 EMC가 지배권을 행사하는 자회사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시스코는 남은 지분만큼 VCE 투자자 자격만을 유지하게 된다. 다른 스토리지 파트너들과 서버 및 네트워킹 장비 통합솔루션을 내놓으면 결국 v블록 사업에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을 공산이 크다.

시스코에게 v블록 사업은 사실상 실패였기에 VCE연합에 이미 특별한 애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시스코는 VCE 설립이래 지난 7월까지 7억1천600만달러 투자, 6억4천400만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시스코에겐 당장 v블록 사업 손실을 만회하고 새로이 UCS서버를 공급할 다른 스토리지 파트너들과의 관계 증진에 나서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반면 EMC가 당장 v블록을 통한 시스코 UCS 서버와 스위치 장비 공급을 중단하진 않을 수 있다. EMC는 2천명에 달하는 VCE 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하고 프라빈 아키라주 최고경영자(CEO)의 자리도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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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스코가 v블록 사업과 별개인 통합솔루션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면, EMC 역시 그에 상응하는 협력 생태계 구축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 EMC 자회사 VM웨어가 지난 8월 하순 선보인 통합솔루션 '에보 레일(EVO RAIL)'을 예로 들 수 있다. (☞관련기사)

에보 레일의 주축은 VM웨어지만, 그 파트너 생태계엔 여러 시스코를 제외한 여러 서버 사업 중심 업체가 합류했고 EMC와 히타치데이터시스템즈(HDS)만이 스토리지 업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HDS는 에보 레일 생태계에서는 서버 솔루션 공급업체에 가깝게 움직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