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기업용 핵심업무를 위한 고성능 유닉스 서버 브랜드 '슈퍼돔(Superdome)'란 이름을 유닉스 구동이 불가능한 x86 서버 제품에 허용했다.
약 3년간 추진해 온 '오딧세이(Odyssey)' 프로젝트의 결과물 '슈퍼돔X' 얘기다. 이제 HP는 고성능 서버 시장에 아이태니엄칩을 품은 유닉스 서버 '슈퍼돔2'와 인텔 제온칩 기반 서버 슈퍼돔X를 함께 판다. 하지만 대대적인 전략 변화보다는 안정된 시장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HP는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런 슈퍼돔X를 국내에 소개했다. 현장에 참석한 한국HP 임직원들은 본사가 지난 2011년 11월부터 추진한 오딧세이 프로젝트의 배경과 그 결과물인 슈퍼돔X의 특징 및 장점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리고 국내서 슈퍼돔X와 슈퍼돔2 사업을 함께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HP에 따르면 슈퍼돔X는 여느 유닉스서버 못잖은 성능을 낸다. 슈퍼돔2 시스템 아키텍처와 인텔의 10코어나 15코어 제온 아이비브릿지 E7 v2 프로세서를 쓴다. 단일시스템에서 최대 16소켓 확장시 240코어, 12테라바이트(TB) 메모리를 쓴다. 지난 8월자 HP 내부 벤치마크로 100만jOPS를 달성했고 3년전에도 당시 유닉스에 준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나온 'DL980 G7' 서버의 9배 몫을 한다.
슈퍼돔X에는 '미션크리티컬'이란 수식어가 붙는 애플리케이션을 안정적으로 돌리기 위한 HP만의 노하우도 녹아 있다. HP는 시스템컴퓨넌트, 펌웨어, 패브릭, 하드웨어 파티션, 온라인 수리기능, 슈퍼돔2 분석엔진으로 유닉스급 인프라 신뢰성을 챙기고 원격지원, 서비스가드리눅스, 미션크리티컬서비스로 애플리케이션 가용성도 강화했다.
그래서 HP는 전통적인 유닉스의 성능과 안정성을 신뢰하는 고객들에게 슈퍼돔X 도입시 광범위한 x86 소프트웨어(SW) 활용 기회가 있음을 강조한다. 슈퍼돔X가 기존 아이태니엄 유닉스 슈퍼돔 시리즈에 준하는 성능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x86 리눅스와 윈도 및 그 OS 기반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선택권'을 준단 메시지다.
이런 HP의 슈퍼돔X 디자인은 기존 아이태니엄 유닉스와 x86 시스템의 장점만 취한 것으로 요약된다. 슈퍼돔X 환경에서 리눅스와 윈도의 풍부한 독립SW개발사(ISV)의 애플리케이션을 돌릴 수 있고, HP-UX로 대표되는 아이태니엄 기반 유닉스 OS를 기술적으로 배제했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가용성과 '미션크리티컬 서포트'를 약속하는 식이다.
■HP의 제온-아이태니엄 슈퍼돔 '분업론'
HP 측은 간담회에서 슈퍼돔X가 슈퍼돔2를 대신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업용 핵심업무 애플리케이션 인프라용 서버 시장에 두 제품군이 각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여전히 인텔의 아이태니엄 칩 로드맵이 불투명해, 슈퍼돔2를 비롯한 HP의 전체 유닉스 사업에 뚜렷한 중장기 비전을 내놓지 못하는 게 한계였다.
이창훈 한국HP 엔터프라이즈그룹 서버사업부 이사의 설명에 따르면, 비즈니스크리티컬시스템(BCS) 사업부에서 아이태니엄 기반 슈퍼돔을 다루던 담당자들이 제온 기반의 슈퍼돔X 영업도 맡는다. 다시 말해, HP는 기존 아이태니엄 유닉스 도입 고객층에 제온 기반의 신제품인 슈퍼돔X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슈퍼돔X는 핵심업무용 서버 시장을 겨냥해 나왔지만, 리눅스나 윈도 운영체제(OS)를 구동한다. 당연히 리눅스나 윈도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돌려야 한다. 기존 슈퍼돔2 서버처럼 HP의 유닉스OS 'HP-UX'를 구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슈퍼돔X가 인텔의 아이태니엄 프로세서 대신 x86 아키텍처 프로세서 제온을 쓰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슈퍼돔2 인프라를 슈퍼돔X로 전환할 경우, 호환성 이슈에 발목을 잡힐 공산이 크다. OS를 리눅스나 윈도로 바꾸고, 유닉스기반 업무용 애플리케이션도 리눅스나 윈도 기반으로 이식하거나 대체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상용 소프트웨어(SW)를 써 왔다면 개발사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내부 개발 SW일 경우 비용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를 뒤집어보면, 슈퍼돔X는 HP-UX를 돌리는 아이태니엄 기반 슈퍼돔2 시리즈를 써 온 고객들에게 '업그레이드'나 '차세대' 시스템을 위한 선택지로 만들어진 게 아닌 듯 보인다. 실제로 HP측은 슈퍼돔X가 유닉스급 고성능, 신뢰성, 안정성을 원하는 시장에서 아이태니엄 기반 슈퍼돔 시리즈의 수요와는 '겹치지 않는 영역'을 겨냥한다고 설명했다.
한국HP 미션크리티컬서버 제품 매니저 김규진 부장은 미션크리티컬(핵심업무) 시장은 여전히 아이태니엄 기반 슈퍼돔 제품군으로 주력할 것이라며 슈퍼돔X는 고객들이 ERP, 데이터베이스(DB)서버나 DB분석, 일부 x86 애플리케이션 등 유닉스 수준의 고가용성을 요하는 핵심업무를 x86 인프라로 대응하려는 '중간영역'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형광 한국HP 프리세일즈 총괄 상무는 슈퍼돔X는 본격적으로 열리는 'U2L(유닉스를 대체하는 리눅스 시스템)' 시장에서 기성 유닉스를 온전히 대신할 플랫폼을 찾는 수요에 대응하는 제품이라며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를 (경쟁사 유닉스 라이선스료가 비싸서 x86 기반으로) 이전할 경우 등 비용절감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HP는 고객사가 슈퍼돔2에서 슈퍼돔X로 전환을 원한다면 그 'U2L 마이그레이션'에 필요한 컨설팅, 기술지원, 서비스 제품을 모두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기존 슈퍼돔2 사용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IBM 파워 서버 또는 오라클-후지쯔의 M시리즈같은 경쟁사 유닉스 서버 사용자를 공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아이태니엄 슈퍼돔3, 나오나 못 나오나
HP는 슈퍼돔X와 슈퍼돔2, 각 제품에 대한 HP의 중장기 기술 개발과 사후 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약속하고 있다. 이는 한국HP가 슈퍼돔X 간담회장에서 제시한 계획대로 두 제품군의 역할을 구별하고, 향후 두 제품군으로 미션크리티컬 서버를 필요로하는 사용자들의 수요에 폭넓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상 '상식적인 제스처'에 속한다.
지난 2010년 출시된 슈퍼돔2는 그해 인텔이 상용화한 아이태니엄 9300 시리즈 프로세서, 코드명 '투퀼라'를 탑재하고 있었다. 인텔은 이듬해인 2011년 투퀼라의 후속 칩 로드맵을 내놨다. 지난 2012년 출시한 아이태니엄 9500 시 리즈 프로세서, 코드명 '폴슨(Poulson)'과 올해 또는 내년중 출시를 예고한 코드명 '킷슨(Kittson)'이다.
2년전 인텔이 폴슨을 출시함에 따라 HP에서도 신형 칩을 탑재한 슈퍼돔2 신모델을 출시했다. 당시 사전감지, 에러 교정 등 내장된 지능화 도구로 신뢰성을 높이고 향상된 칩 성능과 단일시스템의 256코어 확장성 등 개선점을 강조하기 위해 '슈퍼돔2.5'라는 별명을 쓰기도 했다. 새 프로세서에 대응하는 유닉스 OS 'HP-UX 11i v3'도 이 때 나왔다.
이후 HP는 기존 슈퍼돔2 사용자를 위해 실질적인 2가지 계획을 제시해야 했다. 하나는 새로운 슈퍼돔2의 사용자를 위해 그 후속 SW개발 및 기술지원 시한을 보장하는 내용, 다른 하나는 킷슨 기반의 차세대 슈퍼돔2 에 대한 로드맵이다. 한국HP의 슈퍼돔X 출시 간담회장에서도 이 2가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슈퍼돔X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HP 담당 임원들의 발언과 이달초 본사 발표 등으로 이미 확인된 사실을 종합해 보면, HP가 중장기 유닉스 사업과 관련된 의혹을 날려버릴만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슈퍼돔2를 비롯한 HP-UX OS 기반 서버로 기업 핵심업무 애플리케이션과 DB를 돌리고 있는 여러 사용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긴 부족했다는 얘기다.
HP는 SW개발 및 기술지원 지속 여부에 대해, HP-UX 버전 업그레이드와 마이너 업데이트를 위한 R&D 조직과 담당 엔지니어 인력을 오는 2022년까지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슈퍼돔2 사용자들이 현재 사용 중인 유닉스OS 'HP-UX i11 v3' 버전을 향후 7~8년 더 쓸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서버 교체 주기 1번 정도를 버틸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런데 HP는 킷슨 기반의 차세대 슈퍼돔 출시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슈퍼돔2 사용자들에게 후속 제품이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남아 있는 이유다. 기존 유닉스 제조사의 차세대 시스템이 없을 경우, SW지원 기간이 끝나기 전에 타사 유닉스나 x86 시스템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한 시간과 비용, 도입 후 안정화 모두 위험요소다.
김영채 한국HP 서버사업부 총괄 전무는 슈퍼돔X 출시 간담회에서 여전히 업계에 회자되는 인텔의 아이태니엄 칩 개발 중단설을 부인했다. 관련 질문에 대해 현재 HP 본사 차원에서 인텔과 칩 부문 로드맵에 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시장의 니즈가 충분하다면 (인텔이) 아이태니엄 칩을 다시 개발할 수도 있다고 답한 것이다.
HP도 인정했듯 유닉스 시장 규모와 실적은 감소 추세다. (☞관련기사) 더불어 인텔이 그리는 미래엔 아이태니엄이 없다. 인텔은 제온으로 범용 서버칩 수요를 장악한 가운데 더이상 서버 시장 수익만으로 성장이 어려워지자 모바일과 사물인터넷(IoT) 기기 프로세서로 x86 아키텍처 영토확장에만 바쁘다. (☞관련기사) HP가 아무리 유닉스 강자라 해도 이쪽에 인텔의 막대한 칩 개발 투자를 유도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슈퍼돔X의 또다른 의미, 'x86 기반 HP유닉스' 폐기
현재까지 인텔은 아이태니엄 단종을 공식화한 적이 없지만, 오라클이 지난 2012년 5월 소송 상대였던 HP에서 2007~2011년 작성된 내부 문서 12건을 폭로하며 인텔이 아이태니엄 개발을 중단하려 했고, HP는 이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당시 HP는 문건이 오히려 인텔이 아이태니엄 지원을 지속하는 증거라 반박했다. (☞관련기사)
오라클이 아이태니엄 유닉스용 SW 개발을 중단해 불거진 계약 위반 시비로 HP와의 법정싸움은 HP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관련기사) 4년 전부터 HP가 x86 기반 유닉스 개발 계획을 추진한 정황을 담은 문건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곡절이 많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HP는 아이태니엄 기반 유닉스OS를 x86 칩에서 돌릴 수 있는 버전으로 만들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이는 결실을 맺기 전에 취소됐다.
먼저 알려진 HP x86 기반 유닉스 개발 계획은 지난 2010년 초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레드우드(Redwood)' 프로젝트다. 레드우드 프로젝트는 HP-UX를 1년뒤인 2011년초에 인텔 제온E7 시리즈급 프로세서 환경으로 이식한다는 내용으로 추진됐다. 이는 HP 내부에서 아이태니엄 칩 개발 중단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는 정황 증거다. (☞관련기사)
레드우드 프로젝트는 곧 취소됐다. 대신 2010년 하반기 HP는 제온 프로세서 기반으로 HP-UX를 사용케 하는 또다른 계획 '키네틱(Kinetic)'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아이태니엄과 제온을 CPU 소켓 수준에서 호환되게 만들고, HP-UX를 2가지 칩 각각에 맞춰 돌아가게 만드는 내용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 계획도 실현되지 않았다. (☞관련기사)
이후 HP는 2011년 오딧세이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x86 제온 프로세서로 유닉스OS를 사용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있었다. 대신 초기에는 인클로저 하나에 유닉스용 아이태니엄 칩과 윈도나 리눅스같은 x86 OS용 제온 칩을 함께 설치하고, 이들간의 워크로드 분배와 관리 작업을 일원화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관련기사
- x86 품은 고성능 서버 '슈퍼돔X' 출시2014.12.18
- 전문가 눈에 비친 솔라리스의 현재2014.12.18
- HP, PC-x86 서버로 버텼다…매출 1%↑2014.12.18
- HP, 유닉스OS '오픈VMS' 단종 계획 철회2014.12.18
그리고 HP 공식발표(☞링크)에 따르면 오딧세이 프로젝트 초창기 계획된 제품은 '드래곤호크(DragonHawk)'와 '히드라링스(HydraLinx)'라는 2가지 모델이었다. 이가운데 히드라링스는 C클래스 인클로저에 제온 기반 2, 4, 8소켓 블레이드서버도 결합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의 코드명이었다. 다만 오딧세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지금 그 결과물의 행방은 불분명하다.
드래곤호크는 반대로 아이태니엄 유닉스 서버인 슈퍼돔2의 인클로저에 제온 기반 32소켓 블레이드서버를 장착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의 코드명이었다. 이번에 정식 출시된 슈퍼돔X가 그 결과물이다. 슈퍼돔X는 슈퍼돔2와 동일한 인클로저를 채택하고 실제로 고성능 제온E7 칩을 장착하도록 만들어졌는데, 현재 16소켓으로 후속 로드맵을 통해 32소켓을 구현할지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