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이 사라졌다. 1954년 처음 시작한 대구에서도, 1976년 준공됐던 경기도 의왕에서도 제일모직은 사라졌다.
물론 이름은 남았다.
패션사업부를 받은 삼성에버랜드가 이름을 이어 받았으니 역사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제일모직 본사가 있던 의왕 지역 주민들의 느낌은 달랐다.
■다 이사 가는 거 아니었어요?
“거기 다 이사 가는 거 아니었어요? 갈 일이 아직 있어?”
지난달 30일, 경기도 의왕에 제일모직 간판이 걸린 마지막 날 기자가 제일모직 본사를 가기 위해 탑승한 택시 기사는 이렇게 물었다. 다수의 지역 주민들은 의왕 사업장이 완전히 정리 수순을 밟는 줄로 알고 있었다.제일모직이 처음 의왕 지역에 자리잡은 것은 지난 1976년이다. 안양공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제일모직은 이듬해 증설에 나섰다. 원단 제조를 하던 제일모직이 기성복 시장에 본격 진출하던 시기다. 제일모직은 이 곳에서 남성복을 제조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갤럭시 브랜드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은 스마트폰 브랜드로 활용되고 있다.
“제일모직 여공들이 이 지역에서 수입이 꽤 높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돈도 잘 썼지. 그때 지역 경기도 꽤 활성화 됐었는데, 지금은 좀 아쉽네요”
한 지역 주민은 제일모직 안양공장이 한창 활발하게 돌아가던 1980년대를 회상했다.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여직원들은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외출이 허락된 주말이면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와 여유를 즐겼다고 한다.
이 주민은 “제일모직이 부지를 조금씩 중소기업들에게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아지니) 지역 경기도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제일모직은 안양공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점차 기성복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화학 사업을 강화하고 전자소재 사업을 시작하면서 의왕 사업장은 더 이상 의류 공장이 아닌 화학사업부문 연구센터로 변모해갔다. 이제는 삼성SDI 의왕사업장으로 이름을 바꿔 화학사업 조직만 잔류한다.■이미 삼성SDI로 변경 시작…3대 경영 시대로의 전환
기자가 찾아간 6월의 마지막 날, 제일모직 입구는 한산했다. 별다른 행사도 없는 통합은 조용하게 진행됐다. 입구에는 아직 ‘제일모직’ 상호가 남아 있었지만 입구 안내문은 이미 ‘삼성SDI’라는 문구로 교체돼 있었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54년 9월 창립한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故 이병철 회장이 유일하게 대표이사를 맡았고 마지막까지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던 회사다. 현재 삼성그룹의 모태이자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섬유 소재를 국산화한 국가적인 의미도 갖는다.
이 때문에 화학 사업 강화에도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을 떼지 못했고, 패션사업부 양도 후에도 사명 변경을 미뤄오다 결국 패션사업부를 양도 받은 삼성에버랜드가 이 사명을 승계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그룹 고위층은 물론 원로 그룹에서도 제일모직이라는 명칭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삼성 관계자의 전언이다.현재 제일모직이 시작된 지역인 대구와 현재 본사인 의왕에서 별도로 제일모직을 기념하는 작업은 별도로 준비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제일모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관련 언론 보도를 챙겨보며 매출액이나 직원 규모 등의 정보를 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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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은 이제 3세 경영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섬유업으로 일어났던 1대와 반도체, 스마트폰으로 세계 1위에 오른 2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우연찮게도 제일모직은 변환점을 맞았다.
“아주 떠나는 건 아니라니 다행이네”라는 한 주민의 말에서 여운이 느껴진다. 삼성그룹은 모태인 제일모직과 함께 새로운 지점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