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뉴욕에 위치한 퀄키(Quirky) 사무실에서는 일주일동안 제안된 수많은 아이디어 중 최종 사업화할 제품을 선정하는 일종의 기획회의가 열린다. 한 주 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들의 의견수렴과 투표를 거쳐 걸러진 아이디어들이다. 이 회의 현장은 온라인 생방송으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전 세계에 커뮤니티 회원들은 투표나 온라인 채팅을 통해 최종 선택에 참여할 수 있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퀄키가 보유한 4대의 3D프린터를 통해 즉각 시제품 제작에 들어간다.
세계 각지에 제조파트너들을 통해 최종 생산된 제품은 미국의 홈데포, 프랑스의 오샹, 한국의 크로베리 등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전 세계에 판매된다. 첫 아이디어 제안자는 물론 제품 개발 과정에 참여한 모든 커뮤니티 회원들은 기여도에 따라 공평하게 수익과 로열티를 분배받는다.
퀄키가 만든 최고 인기상품인 피봇파워(Pivot Power)는 일(一)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휘어지는 형태의 멀티콘센트 제품이다. 덩치가 큰 플러그가 콘센트 구멍을 막는 일이 없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입소문을 타며 전 세계에서 70만개가 팔려나갔다. 처음 퀄키에 아이디어를 제안한 디자이너 제이크 지엔은 현재까지 56만달러, 우리돈으로 6억원을 벌어들였다.
2009년 미국에서 설립된 퀄키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 사업모델에 기반한 회사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여러 제약 때문에 실제 상품화를 포기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터준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놓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곧 자산이다.

퀄키는 이 같은 사업모델을 제조업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미래로 제시했다. 처음 한국을 찾은 퀄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벤 코프먼은 25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퀄키의 사업모델이 기존 제조업을 상당부분 보조하고 있고 향후 이를 대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코프먼은 1986년생으로 고등학생이던 지난 2005년 모피(Mophie)라는 아이폰 액세서리 회사를 설립하면서 창업에 뛰어들었다. 2007년 모피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후 2009년 퀄키를 설립했다. 모피를 창업한 경험은 퀄키라는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큰 보탬이 됐다.
코프먼 CEO는 “모피에서 상품 개발을 직접 경험하면서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개발과정에서 어려움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신념이 퀄키의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퀄키에서는 누구나 커뮤니티에 회원가입을 하고 10달러의 제안비만 내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퀄키는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 개발과 디자인, 생산과 유통망 확보, 마케팅과 홍보 등 역할을 대신해준다. 아이디어가 상품화 될 경우 제안자에게는 수익의 30%가 돌아간다. 아이디어 제안과 평가, 제품화, 출시에 이르는 각 과정에서 기여도에 따라 수익배분을 받을 수 있다.
얼핏보면 매우 간단한 시스템이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사례는 아직 그리 많지 않다. 퀄키는 자사의 모델이 다른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첫 번째 요소로 커뮤니티의 힘을 꼽았다. 커뮤니티는 아이디어 제안에서부터 채택, 제품 개발과 생산까지의 모든 협업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퀄키 커뮤니티 회원수는 현재 100만명에 이른다. 홈페이지에 접수되는 아이디어만 일주일에 매주 3천개가 넘는다. 코프만 CEO 역시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로 커뮤니티를 들었다. 그는 “각자 다른 성격을 가진 회원들이 우리의 아이디어를 믿지 않는다면 사업모델이 성공할 수 없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데 가장 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회원들이 참여정도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통해 개발한 영향력 엔진으로 기여도를 평가한다. 상품화를 결정하는 투표와 회의도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한다. 아직까지 내·외부적으로 특허분쟁이 일어난 사례는 없지만 가능성에 대비해 제품 보호와 특허 확보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라우드소싱이라는 개념이 시장에 자리잡기 전부터 쌓아온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코프만 CEO는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스타트업과 달리 퀄키는 디자인부터 제조, 마케팅, 판매, 유통, 재무까지 7개 이상의 사업분야를 종합해놓은 복잡한 사업모델”이라면서 “근 10년 동안 이러한 과정을 완성해왔고 경쟁사들 대비 선취효과도 존재하는 만큼 퀄키의 사업모델을 쉽게 따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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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퀄키의 매출은 전년 대비 155% 증가한 4천873만달러(약 512억원)를 기록했다. 판매되는 제품 수도 지난 2012년 65개에서 지난해 104개로 늘어났다. 지난해 채택된 아이디어는 200개로 지금까지 개발된 제품수는 427개에 이른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성장한 1억5천만달러를 매출 목표로 잡고 있다.
국내도 퀄키 열풍에 예외는 아니다. 현재 퀄키에서는 이찬호㉙씨가 제안한 아이디어 제품을 포함해 한국인이 제안한 제품 2개가 판매되고 있으며, 4개의 아이디어가 채택돼 개발단계에 있다. 한국인들의 보다 많은 참여를 위해 퀄키코리아라는 정식 법인도 설립됐다. 한국 내 유통파트너사인 크로베리는 아시아 시장으로 유통망을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