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수컷들 사이의 경쟁이 교미 시간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화제다. 지난해 경쟁자들에게 노출된 수컷 초파리가 섹스를 더 오래한다는 사실을 밝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연구진은 10일 이 과정을 조절하는 상세한 메카니즘을 밝혀냈다고 소식을 전했다. 특히 이번 연구를 주도한 과학자는 UCSF의 김우재 박사로 SNS 상에서 초파리 박사로 통한다.
수컷에게 생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더 많은 먹이를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선택은 어떻게든 자신의 유전자를 많인 남긴 수컷의 유전형을 선호한다.
찰스 다윈은 주로 수컷들이 암컷을 두고 다양한 경쟁을 벌이고 암컷의 선택에 따라 유전자 풀이 바뀌는 이 현상을 ‘성선택’이라고 불렀다. 성선택은 공작새의 꼬리, 다양한 종에서 보이는 구애행위 등의 진화를 설명하는 가장 유용한 이론이다.
연구진은 잠재적인 경쟁자들에게 둘러쌓인 초파리 수컷이 그렇지 않은 수컷보다 5분 이상 섹스를 오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행동에 ‘Longer-mating-duration(LMD)’라는 이름을 붙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LMD 를 유도하는 자극이 시각으로 충분하다는 것인데 주변에 경쟁자들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초파리 수컷은 움직이는 빨간 점들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 점에 착안해서 홀로 자란 초파리 수컷에게 거울을 보여주고 교미 시간을 측정한 결과, 거울을 보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거울을 보고 자란 초파리의 교미 시간이 훨씬 길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처럼 시각 자극만으로 발생하는 복잡한 초파리의 행동을 조절하는 최소단위의 신경회로를 밝혀냈다. 연구진은 뉴로펩티드라는 신경세포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조각과 그 수용체들의 조합에 의해 복잡한 행동양식이 조절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다양한 스크리닝을 통해 PDF 와 NPF 라는 두 종류의 뉴로펩티드와 그 수용체들의 조합에 의해 LMD 가 조절됨을 밝혀냈다.
특히 이 신경회로는 초파리 뇌에 존재하는 10 만여개의 신경세포들 중 단 18개의 신경세포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복잡한 행동양식을 조절하는 최소단위의 신경회로를 찾는 최신 연구동향에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김우재 박사는 인터뷰를 통해 “초파리 수컷에게는 포르노가 거울인 셈이지요.”라는 말로 LMD 라는 흥미로운 행동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이 연구가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 이유는 하등동물이라고만 생각하던 초파리가 자신이 처해 있는 사회적 환경을 인지하고 행동을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즉 초파리를 이용해서 사회성 행동양식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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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LMD는 시각자극만을 이용하는 독특한 행동양식이고 세계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행동양식을 이용하면 사회성에 대한 많은 지식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성 연구를 통해 개미나 꿀벌에서 보이는 진성사회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어쩌면 인간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생물학>을 쓴 개미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벤저가 프로이트보다 낫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벤저는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창시한 인물로 국내에는 <초파리의 기억>이라는 그의 평전이 번역되어 있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UCSF 의 유넝 잰(Yuh Nung Jan)은 벤저의 제자로 초파리 신경유전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이 연구는 2013 년 뉴런 12월호에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