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갔을 때 느낌은 '어? 이건 뭐지?'였다. 확실히 올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마련한 '디브온'은 다른 개발자 행사들과는 달라 보였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재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행사장 앞 풍경부터 그랬다. 방송 세트같은 무대가 마련됐고 방청석에는 의자 수십개가 놓였다. ENG카메라도 몇대 눈에 띄었다. 무대 중앙에는 의자가 2개 놓였다. 개발자 대담을 위해서란다.
무대를 지나자 시끌벅적한 각종 전시부스들이 나왔다. 부스를 차린 이들과 구경하는 이들이 어울려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제품 및 서비스 시연과 체험 행사도 낯설지 않다. 약간 오버하면, 행사장 전체가 전시부스처럼 보일 정도다. 나름 신경쓰고 봐야 한켠에 있는 작은 방에서 미트업과 강의세션이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좀더 구석구석 행사장을 둘러보니 미디어아트존도 보이고, 그 뒤엔 놀이터도 눈에 띈다. 한켠엔 개방된 강의 공간도 시야에 들어왔다. 24일 개막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디브온 2013 행사장 풍경은 대충 이렇게 요약된다.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이다. 틈틈히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기자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이들이 꽤 되는 것 같다.
행사장 한켠에서 이번 행사 전체 기획을 담당한 다음 DNA랩의 윤석찬 팀장을 만났다. 지난 2년간 디브온을 더 시끄럽고, 분주한 공간으로 밀어넣은 장본인이다.
그동안 디브온을 해오면서, 왜 우리나라 개발자들은 강의만 듣고 돌아갈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외국 개발자 행사도 강의 위주긴 하지만, 해외 개발자들은 강의 외에 소통을 더 활발하게 하거든요. 한국사람은 외국 행사 가서도 강의만 듣고 오죠. 그래서 개발자들이 더 소통하게 하고, 커뮤니티가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얼핏보면 윤 팀장은 '왁자지껄'과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같다. 그런데도 그는 일부러 디브온을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행사로 꾸렸다. 한국 개발자 중에는 소심한 이들이 많아요.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방안에 갇혀 코딩만해선 개발자가 발전하기 힘들어요. SW개발은 특수한 일이기 때문에 고수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받는 게 중요합니다. 유명 개발자가 쓴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건 그 때문이죠. 그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거에요. 나쁘게 말하면 인맥이지만,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정보를 주고받고 교감하면서 얻고, 해결할 수 있는게 더 많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성격도 바뀌고, 더 발전할 수 있었거든요.
올해 디브온 행사는 윤 팀장의 이같은 생각을 구체화시킨 결과물이다. 다음은 올해 디비온 행사장을 꾸미면서 만남, 나눔, 공감, 즐거움이란 4개의 주제별로 각자 하나씩의 공간을 배정했다.
중앙에 전시부스를 배치한 이유를 물었다.
올해 소통을 큰틀로 잡은 만큼 행사장 배치부터 바꿨습니다. 일단 작년까지 30% 수준이었던 부스규모를 늘리고 행사장 한가운데 배치했어요. 스타트업, 커뮤니티, 학교들이 채우는 곳이죠. 유명 연사 강의가 중심이 되면 정작 주연이어야 할 부스는 들러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해 부스를 개발자에게 익숙한 트리구조로 배치했습니다. 바닥 색깔을 따라 가면 모바일, 오픈소스, 웹, 서버, 프로그래밍 등 색깔을 가진 부스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행사 콘셉트와 행사장 분위기 사이의 연결고리가 좀더 분명하게 잡힌다. 주로 강연을 듣는 성격 위주의 컨퍼런스에선 어깨에 힘 빼고 편하게 소통하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가뜩이나 소극적인 한국 개발자들을 입을 열게 하는데는 벼룩시장 콘셉트가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찬 팀장은 다시 한번 국내 개발자들이 외부 세계와의 소통에 좀더 적극 나서줄 것을 강하게 주문한다.
개발자는 밖으로 나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갇히게 됩니다. 대부분의 개발자는 회사 보스에게 모든 걸 의존합니다. 정보도, 지식도, 경험도 배울 사람은 자신의 보스뿐이에요. 하지만 밖에는 보스보다 더 뛰어난 사람도, 나와 비슷한 사람도 많아요. 그들에게 배울게 훨씬 더 많죠. 회사에, 조직에 갇히면 결국 그 속에서 자라다 끝납니다. 틀에 갇히고, 성장은 멈춰버리는거죠. 밖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요. 틀을 깨는 게 중요합니다.
다음은 올해 디브온 행사를 부스 참가자들에게 많이 맡겼다. 다음이 앞장서서 이래라 저래라 한건 많지 않다. 무료로 부스를 마련할 수 있도록 했고, 행사와 맞는 스타트업들도 참여시켰다. 대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부스참여를 개방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GNUvill, 동덕여대 한이음, 아주대 A.N.S.I., 카이스트 INCLUDE, 부산대 untoC, 한성대 POCS , 연합동아리 YAPP, 드림스타와 명신고 컴퓨터 AI연구소, 미림여자정보과학고 게임메이커 등은 이렇게해서 디브온에 무스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은 관람객과 소통하면서 쓸 기념품 비용도 지원했다. 약 3천개의 기념품이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미트업 세션에서 가장 인기를 끈 건 '미니대안언어축제'란 제목의 공간이었다. 8개 프로그래밍 언어를 5시간 동안 배울 수 있는 기회인데, 간단히 언어를 배우고 퀴즈로 실습하는 방식이다.
국내 주요 인터넷 업체들이 개최하는 개발자 컨퍼런스가 연례행사로 자리잡아가는 추세다. 네이버는 데뷰, 다음은 디브온, SK플래닛은 테크플래닛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개발자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업체간 컨퍼런스의 색깔도 달라지는 느낌이다.
관련기사
- 다음, 개발자 컨퍼런스 '디브온2013' 개최2013.10.27
- 네이버, 개발자 컨퍼런스 'DEVIEW' 개최2013.10.27
-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으세요?”2013.10.27
- 美, 삼성 반도체 보조금 6.9조원 확정…원안 대비 26% 줄어2024.12.21
네이버가 최근 개최한 데뷰는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전체 분위기는 차분했다. 반면 디브온은 소통과 공감이 강조되다보니, 전체적으로 왁자지껄했다. 디브온와 데뷰는 같은 개발자 행사지만 DNA는 이렇게 달라보였다.
다음달에는 SK플래닛이 테크플래닛2013 행사를 개최한다. 데뷰나 디브온과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