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웹사이트에는 박근혜 대통령 저서를 모아둔 페이지가 있다. 우리나라 검색엔진은 이 간단한 정보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검색엔진의 성능이나 검색업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에 무지하고 관계당국의 정보화지침과 공공데이터의 민간 활용에 무관심한 관행 때문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의 주요 부처별 웹사이트에 게재된 온라인 자료 상당수는 5년마다 생명력을 잃는다. 새로운 정보가 제때 반영되지도 않는다. 최근 십수년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정책기조를 공표하며 수시로 주요 부처 및 산하기관의 통폐합과 명칭 변경을 추진해온 게 근본 원인이다.
우리나라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사이트들은 이름을 바꾸면서 사이트 주소도 쉽게 바꿔왔다. 그렇지 않더라도 청와대처럼 사이트 구조를 아예 바꿔넣기도 한다. 이 경우 과거 배포된 자료의 출처나 게재 시점이 현재와 달라 해당 부처가 내놓은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또 현재 제공중인 자료들의 링크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는 현실로 치면 몇년마다 불시로 관공서 건물이 이사를 다니거나 새로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외국은 정부부처의 명칭과 도메인 변경, 웹사이트 재구축에도 보수적으로 접근한다. 이는 흔히 `고유링크`라 번역되는 퍼머링크(permalink)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퍼머링크는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를 찾아갈 수 있는 영구적인 주소란 뜻이다. 퍼머링크를 잘 활용할수록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도, 이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커진다.
민간에서 퍼머링크를 활용하는 사례는 개인과 기업의 블로그, 트위터와 페이스북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표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글과 정보를 추가하는 블로그나 SNS사이트에선 시각적인 글의 위치가 쉽게 변한다. 그래서 각각의 글에 영원히 고정된 주소로 퍼머링크가 부여된다. 인터넷의 발원지 미국의 정부기관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자료들도 대부분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처럼 잦은 개편과 도메인 변경을 시행할 경우, 관련 정보를 필요로하는 일반 국민들이나 산업계, 공공기관 등의 업무담당자들은 우리나라 정부부처의 과거 자료를 참조, 활용, 검증하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공공사이트에 올라가는 자료들의 보존성, 접근성, 신뢰성이 블로그나 SNS보다 떨어진다.
■너무 자주 바뀌는 정부 홈페이지 주소
앞서 지적한 청와대 사례는 도메인을 갈아엎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좀 나은 편이다. 다만 박 대통령의 저서와 별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서를 보여주는 페이지 역시 살아있는데, 전체 디자인을 '박 대통령의 청와대'로 꾸며놓은 탓에 어색하다.
좀더 심각한 문제를 찾으려면 IT전담부처로 불리던 '정보통신부'와 그 해체 이후 주요 업무를 담당했던 '방송통신위원회' 이력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 1994년 체신부에서 이름을 바꿔 14년간 지속된 정통부 사이트 주소는 'mic.go.kr'이었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방송위원회(kbc.go.kr)'에 통합, '방통위(kcc.go.kr)'로 편입됐다. 국민들이 브라우저에 과거 정통부 주소를 넣어 봤자 결과는 현 정부의 방통위 홈페이지다.
현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msip.go.kr) 출범에 따라 기존 정통부 자료들의 위치는 완전히 바뀌었다. 외부에 링크돼 있던 인터넷상의 정통부 주소든, 어떤 논문이나 신문기사에서 참고문헌으로 가리키는 정통부 발표자료든, 이제 그 자리에 없다.
전 정부가 방통위를 출범시키며 생긴 홈페이지에 기존 방송위 사이트(old.kcc.go.kr)가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주소도 '새 것'이라 과거 사이트에 게재된 정보를 찾는데 도움이 안 된다. 나머지 부처들의 구성 및 명칭 변경에 따른 도메인 변화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밖에 외교통상부(mofat.go.kr)는 외교부(mofa.go.kr)로, 통상산업부(motie.go.kr)였다가 산업자원부(mocie.go.kr)에서 바뀐 지식경제부(mke.go.kr)는 또 산업통상자원부로(motie.go.kr) 바뀌었다. 문화관광부(mct.go.kr)는 문화체육관광부(mcst.go.kr)로, 여성부는 여성가족부(mogef.go.kr)로 개편됐다.
또 행정자치부(mogaha.go.kr)는 행정안전부(mopas.go.kr)가 됐다가 안전행정부(mospa.go.kr)가 됐다. 보건부(moh.go.kr)는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복지가족부(mohw.go.kr)로 바뀌었다가 다시 보건복지부(mw.go.kr)로 돌아왔다. 건설교통부(moct.go.kr)는 국토해양부(mltm.go.kr)를 거쳐 국토교통부(molit.go.kr)로 되바뀌었다.
해당 부처들이 개편하기 전 사이트의 도메인으로 올려졌던 자료들은 어떻게 됐을까.
산업통상자원부 개편에 따라 부처 홈페이지 구축업무를 담당한 정보전략팀 관계자는 정부의 정보화전략 관련 가이드라인에 조직개편 이전의 사이트를 어떻게 보존하라는 지침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새 홈페이지 구축은 개편방향에 따라 기존 콘텐츠의 활용과 사이트 구성 등 전반적인 컨설팅을 받아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다른 부처들의 새로운 홈페이지 역시 기존 도메인으로 찾아낼 수 있는 자료의 가치를 살리는 쪽으로는 고려되지 않았다. 새로운 부처 홈페이지를 통해 과거 자료가 보여지도록 만드는 식으로만 재구성됐다. 결국 최소 5년에서 길게는 십수년간 지속된 부처 사이트와 그에 담긴 자료들은 조직개편을 단행한 새 정권의 출범과 함께 사라졌다.
■'데드링크'에 발목 잡힌 정부3.0
현실에선 행정구역 명칭이나 분류체계가 바뀌어도 물리적으로 해당 장소에 찾아가면 그만이다. 반면 디지털 세계에서 바뀐 도메인의 퍼머링크로 연결된 자료들은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이처럼 도메인이 바뀌어 그 연결지점이 원래 정보를 찾아주지 못하는 링크를 '데드링크(dead link)'라 부른다.
기관과 부처 명칭을 바꾸는 게 뭐 대수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바뀌는 공식사이트의 도메인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기관이 공식사이트에 기존 도메인을 버리고 새 주소를 채택하면 앞서 수년간 누적된 온라인상의 역사는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다. 남는 건 해당 사이트에 일일이 찾아가 기존 자료를 수고롭게 찾는 것뿐이다. 우리나라 공공사이트가 제공하는 검색은 실효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웹사이트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도메인은 그 사이트의 성격과 평판을 가리키는 지표이자 자산으로 작용한다. 이가운데 공공기관의 도메인 변경에 따른 문제는 일반 기업의 같은 행위에 비해 파장이 더욱 크다. 공공의 이익을 뒷받침해야 할 정부기관의 인터넷주소에는 명패 내지 현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부는 조직개편 때마다 부처 명칭과 함께 공식사이트 주소를 갈아치우는 탓에 스스로 공공성이 큰 정보의 자산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 이는 대국민서비스를 내걸고 공공의 이익을 지원한다는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사이트들의 행태로는 부적절하단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정책 '정부3.0'에도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정부3.0은 공공정보 개방 확대, 정부내 협업시스템 구축, 정부와 민간협업 확대, 정부 지식경영시스템 구축과 활용으로 정책역량 강화, 맞춤형 서비스 정부 구현, 국가 미래전략센터 구축과 운영을 실행과제로 내건 사업이다.
그런데 정부가 운영해온 사이트의 개별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고 퍼머링크를 통해 정보 확산 기회를 키우는 것은 정부3.0이 아니라 정부1.0부터 이뤄졌어야 할 기본중의 기본이다. 인터넷 정보의 퍼머링크가 중요하다는 인식도 갖춰지지 않은 정부에서 각각의 실행과제가 기대대로 추진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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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달말 정책제안문 '정부3.0과 소프트웨어'에서 기존 전자정부시스템의 문제로 ▲공공정보 개방이 제한적이었고 ▲정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미래정책에 활용하는 체계가 미흡했으며 ▲모바일, SNS기술 보편화 등 새로운 IT환경 및 기술변화 대응이 부족했음을 꼽았다.
지난 4월초 안전행정부는 정부3.0 구현을 통해 국민 개개인에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몇년간 주요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정보를 앞다퉈 개방했지만 유기적인 정보 활용에 무관심한 정부의 일방적 공개가 민간의 활용을 장려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처럼 정부부처와 주요기관들이 공식사이트를 통해 외부에 공개한 자료들이 영구적인 위치를 보장해주지 않을 경우 '공공정보 개방'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