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ZTE를 안보 위협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 신경전은 경제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의회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화웨이와 ZTE 장비를 사용하는 국내 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8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는 7일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 화웨이와 ZTE의 통신장비가 대량의 데이터를 중국으로 빼돌릴 수 있다고 발표했다. 주요 정보의 국외 유출 가능성이 높으니 미국 내 통신사업자이 화웨이와 ZTE 장비를 구매하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도 함께 담았다.
정보위원회는 지난 11개월 동안 조사를 실시한 결과 화웨이가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버전쟁 부대에 특별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화웨이 전 직원에게서 입수한 내부문건을 근거로 내세웠다.
정보위원회는 화웨이, ZTE의 미국 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미국 기업 인수합병(M&A)도 금지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중국이 화웨이와 ZTE를 배후에서 조종해 악성 프로그램을 숨긴 통신장비를 납품하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내 안보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놨다.
마이크 로저스 정보위원장은 “화웨이 장비를 통해 미국 기업들의 정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보고가 여러 건 있었다”며 “불법행위 여부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회의 권고가 나온 이틑 날, 시스코시스템즈가 움직였다. 외신은 시스코가 ZTE와 영업 파트너 관계를 청산했다고 보도했다. 시스코는 수년간 ZTE와 협약을 맺고, ZTE가 시스코 장비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시스코의 ZTE와 계약 파기는 이란과 미국 사이의 문제 때문이다. ZTE는 이란에 시스코 장비를 공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시스코와 미국 상무부(USCD)의 조사에서 ZTE가 시스코 라우터를 이란텔레콤컴퍼니(TCI)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미국 정부는 기술 유출을 이유로 이란에 대한 통신 장비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내 공장설립과 주식상장을 준비중이던 화웨이, ZTE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화웨이는 “신빙성 없는 주장”이라며 “조사의 목적이 시장 경쟁을 방해하고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입을 막으려는 데 있다”라고 비난했다. ZTE는 “시스코 측과 의견을 나누고 있으며, 이란과 관계에 대해 미국 정부 조사에 적극 협조해 적절한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ZTE는 “미국 기업의 통신 장비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된다”라며 “미국 정부 논리를 따르면 모든 통신장비를 국가 안보 위협 대상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도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의회가 사실을 존중하고 편견을 버려야 한다”라며 “중미 무역협력 관계에 유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화웨이와 ZTE는 국내 통신사업자들에도 다수의 장비를 납품했다. 두 회사는 국내에서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내세워 시장점유율을 키워왔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은 기간망을 제외한 기업고객 대상 회선에 화웨이 장비를 다수 사용하고 있다. 케이블TV방송사들에도 다량 공급돼 있다.
국내 통신장비업계 관계자는 “화웨이와 ZTE 장비에 대한 보안 우려에 대해 국내 고객들도 이미 관심을 갖고 있다”라며 “무역 마찰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中 화웨이, 미국서 성공하려면…“일단 폰부터”2012.10.09
- 칼 빼든 EU…화웨이, ZTE 등 덤핑 조사2012.10.09
- 시스코, 화웨이에 독설 "모조품"2012.10.09
- 화웨이, 美정부 환심사기 안간힘, 왜?2012.10.09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향후 화웨이코리아나 ZTE코리아에 대한 국내 기업의 경계심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통신장비의 정보 유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한 전문가는 “기술적으로 정보를 유출하는 프로그램을 심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며 “현재로선 실제 사례가 알려지지 않은 우려 수준”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