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 이후 각종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가운데 자율규제기구의 위상 확립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주최로 열린 토론회 발제자로 참석한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이번 헌재 결정은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직접 규제 모델에서 민간의 자율규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법령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100% 회원사의 회비로 운영하며 독립적 재정 기반을 갖춘 KISO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이날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정에 대해 “국가가 명확한 인과적 근거와 법리판단 없이 사회규범을 지나치게 법규범으로 전환해서 표현에 대한 과잉규제를 불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안겨준 것 동시에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포털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 기대되는 사회적 책무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행 국내 법규에서 민간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행정적 규제기구가 있는 데다 관련 법령이 많아서 자율규제기구 활동 자유도가 굉장히 낮다”며 “정부와 사회영역에서 민간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책임이 단순히 도덕적 의무가 아닌 책무 행위로 나타나기 위해선 제도적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KISO의 외적 정당성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범세계적으로 인터넷 규제는 국가와 민간의 역할분담을 통해 이뤄진다”면서 “외부에서 KISO의 기본 역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규약정비는 물론 공청회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소통 증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직 KISO의 정책결정은 사안별 필요성에 기반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볼때 KISO의 정책방향 전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결국 이것이 외적 정당성을 얻는데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KISO는 지난 2009년 출범 이후 현재까지 15호의 정책결정만 이뤄진 상태다.
황 교수는 “KISO는 규약체계의 정비를 통해 기구의 역할, 수행 절차를 명확히 드러내고 게시물 처리기준이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포털 사업자들이 모니터링 강화 등은 장기적으로 최소화하고 KISO와 함께 균형적으로 건전한 이용자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업자에 의한 규제보다 이용자들의 자발적 자기규제가 가능토록 이용자 중심적인 규제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선 사업자도 이해를 같이 했다. 한종호 NHN 정책실 이사는 “포털들이 책무성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모니터링 강화, 필터링 시스템 고도화 등의 개편을 진행 중인데 이는 사실상 공적 규제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사적 규제 과잉으로 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책임이 막대해진 사업자 입장에선 이용자 권리 침해로 인한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사업자가 자율규제 공포로 인해 사적 검열로 가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적 기구로서 KISO가 재조명 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 이사는 또 이 같은 사적 규제가 산업 발전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그는 “실명제 위헌 결정 이후 NHN과 다음은 댓글 모니터링 인력을 현재 500여명에서 2배씩 증원하겠다는 방침인데 여기에 드는 엄청난 비용은 신생사업자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KISO의 역할론 확대를 위해선 회원사 확보가 절실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유향 국회 입법조사처 팀장은 “KISO가 5개 회원사로 구성돼 있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에 비해 턱없이 작은 규모”라고 지적했다. 한종호 이사도 “KISO로 표상되는 자율규제가 사회적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선 회비를 적게 받더라도 작은 인터넷 기업들도 가입해 의사결정을 같이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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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회원사 확보만이 대안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업자, 이용자들에게 단일한 기준이 사실상 강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방심위와 같은 행정 기구를 대체하는 차원에서의 KISO는 아무 의미없다”고 지적했다.
이해완 KISO 정책위원장은 “KISO가 회원사 몇 개에만 국한되서는 효용이 없다, 그렇다고 회원사 대폭 늘려 공적 업무를 위탁하는 형태로 탈바꿈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영역별 자율규제 기구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등 여러 의견을 받아들여 더 깊은 고민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