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희생양 삼지 말라’ 논의 물꼬

일반입력 :2012/02/16 11:34    수정: 2012/02/16 11:56

전하나 기자

학교폭력근절대책의 일환으로 게임 규제 특별법이 발의되면서 게임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시행된 ‘셧다운제’ 논의 과정 때에도 무력감만이 번져 있던 업계에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위기를 헤쳐가려는 대응 움직임이 시작됐다.

업계는 우선 게임산업협회와 게임문화재단을 주축으로 게임에 대한 올바른 인식 확산에 힘쓴다는 입장이다. 특히 게임과 학교폭력의 연관성을 다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지난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청소년과 게임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는 이러한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다.

토론회에는 넥슨, 엔씨소프트, 네오위즈게임즈, NHN, 넷마블 등 주요 게임사의 임직원들이 다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 각계의 전문가들은 게임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체계적이고 장기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도 게임의 역기능 해결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약속했다.

먼저 학계는 게임과 학교폭력의 연관성을 증명할 만한 연구가 지나치게 부족하고 이마저도 편향적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최태영 대구카톨릭대병원 교수는 20년 전 신문보도를 인용하며 온라인 게임이 보급되기 이전에도 학교폭력과 일진, 왕따 등의 문제는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기존에 나와있는 연구들이 모두 방법론적으로나 통계적으로나 결함이 있다고 부연했다.

미디어와 폭력성의 연관 관계를 두루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은 이어졌다. 경기대 송종길 교수는 “미디어와 폭력성은 상관성이 있다고 전제하더라도 인간의 행위를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듯 그 관련성을 인과관계로 단순하게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오승호 박사도 폭력성이 있다고 해서 폭력행동으로 모두 나아가는 것은 아니며 학교폭력 역시 가정양육태도, 또래집단 폭력성, 대중매체나 사이버 폭력경험, 학교성적 등 다양한 요인을 통해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규제일변도 정책에 대해서도 비난이 줄을 이었다. 성신여대 박형준 교수는 “폭력게임이 공해라고 하는데 공해는 정화시켜야 하는 것이지 없애는 것이 아니다”며 “이제껏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처해오지 못한 교육당국과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마녀사냥식으로 게임에 전가하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대 황승흠 교수는 “우리나라는 청소년유해매체에 대한 논의를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시작했고 미디어에 대한 규제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학교폭력근절과 관련해 문화를 규제하려는 노력은 20여년 동안 만화, 게임 등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주기적이고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고 꼬집었다.

토론에 참여한 청소년전문가들도 일방적 게임규제의 효용성이 크지 않다는데 공감했다. 유형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소장은 “게임이 이미 아이들에게 문화적 상징이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통로로 자리잡은지 오래인데 이를 단순히 규제하는 것보단 게임 이용에 관한 주도적 판단역량을 키울 수 있는 리터러시 교육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새누리당 원희룡 의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현직 국회의원이 공개토론회에서 축사가 아닌 토론자 자격으로 참석한 것은 이례적 행보다. 원 의원은 “정부가 게임업체 곤장 때리기 식으로 학교폭력 해결에 나섰는데 학부모들의 아우성에 뭔가를 보이기 위한 구색맞추기일 뿐”이라며 “이는 우리 사회 미래를 위한 긍정적 가치의 싹을 모두 자르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강도높게 성토했다.

그는 또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한 게임규제 특별법안을 사회적 합의나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처리되도록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원 의원은 “국회라는 공론의 장을 통해 많은 의견을 수렴해나가겠다”며 “단순히 말도 안되는 입법을 막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게임산업의 미래와 사회문제를 논의해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게임업계도 이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한 주체로서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게임업계는 오는 21일 ‘게임의 현재와 미래 : 나는 게임이다’라는 주제로 2차 토론회를 마련, 게임산업 생존 해법 찾기를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한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를 기반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자발적인 연대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한 누리꾼의 제안으로 개최를 앞둔 ‘게임, 게이머, 게임산업에 대한 편견 타파 컨퍼런스(가칭)’는 발표자와 청중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만 120여명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높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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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부터 정부의 게임 규제 정책에 반발한 게임 개발자들이 1인 시위에 참여한 사례도 생겨났다.

업계 전문가는 “게임산업이 불과 10여년의 시간 동안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아직 성숙되지 못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가 부정적인 대외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비로소 해야할 일을 자각한 것으로 앞으로도 생산적인 논의를 주체적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