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개발자들 사이에서 델파이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한 존재가 됐다. 학교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학생들도 델파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다보니, 사회에 나와서는 자바나 닷넷으로 몰려들 뿐이다.
델파이에 대해서는 '그게 뭐야?' 아니면, '들어는 봤는데 정확히는...'이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젊은 개발자들에게 델파이는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영역으로 통한다. 델파이 쓰는 사람은 옛날 사람인듯 쳐다보는 장면도 연출된다.
실제로도 그러냐고? 그건 아니다. 지금도 압축 프로그램과 같은 각종 유틸리티나 많은 보안 솔루션들이 델파이로 만들어진다. 해커들도 델파이를 갖고 공격툴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은행도 주력 개발 환경으로 델파이를 쓰고 있고, (지난주에 방문해서 지원) 다수 시중은행, 증권사, 보험사들이 델파이 고객이다. 통신 업체들도 업무 시스템에 델파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병원 IT시스템에서도 델파이는 여전히 인기다.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도 델파이로 만들어졌다.
델파이를 국내에 공급하는 데브기어의 박지훈 부장은 "요즘도 델파이 쓰는 사람있냐고 묻는 이들도 있는데, 여전히 광범위한 사용자 기반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것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델파이는 파스칼 언어에 기반하고 있다. 파스칼 언어에 C++ 요소가 가미되면서 델파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와 개발툴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불린다. 강점은 탁월한 생산성. 이를 위한 콤포넌트들도 풍부하게 제공된다. 박지훈 부장은 "자바와 비교해 빠른 개발이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발에도 강점을 지닌다. 대규모 시스템을 개발할때도 유용한 플랫폼이다. 이같은 강점을 앞세워 델파이는 90년대말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델파이 개발 업체인 볼랜드가 애플리케이션 수명 관리(ALM) 사업에 집중하고 툴은 자회사인 코드기어로 넘기면서 델파이의 대중성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국내는 특히 그랬다. 볼랜드 국내 지사의 부침이 두드러졌다. 볼랜드는 알아도 코드기어는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다.
이런 가운데 볼랜드는 2008년 코드기어를 데이터베이스 툴 전문 업체인 엠바카데로 테크놀로지에 매각했다. 한국에서는 엠바카데로 영업조직이 없었던 만큼, 코드기어 지사가 그대로 엠바카데로 국내 사업을 담당하게 됐다.
상황은 계속 좋지 않았다. 당시 델파이가 한국에서 생태계를 키우려면 엠바카데로 본사 차원의 대규모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한국만 특별대접 해줄 수 없다는게 본사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손바닥만한 한국 지사에서 투자를 밀고 나갈 형편도 못됐다. 결론은 한국지사의 독립이었다.
데브기어 박지훈 부장은 "2008년말 엠바카데로 본사와 지사 사이에서 한국 지사를 독립시켜서 자체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오갔고 지난해 3월 지사 독립 분할이 확정되면서 데브기어가 출범하게 됐다"고 전했다.
델파이로 대표되는 개발툴 사업을 포기했던 볼랜드는 지난해 5월 영국 기업으로 코볼 개발 플랫폼 업체인 마이크로포커스로 넘어갔고 현재는 홈페이지만 남아있는 상태다.
개발 업체가 부침을 겪다보니 델파이 국내 기반은 예전보다 위축됐다. 그 자리는 자바나 C++ 프로그래밍 언어가 대체해 나갔다. 학교에서 델파이는 배우는 학생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개설된 과목 자체가 거의 없다.
이는 기존 델파이 생태계가 개발자 세계에서 고립된 섬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많은 고객 기반을 갖고 있더라도 새피가 수혈되지 않는 플랫폼에 대해 미래 지향적이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데브기어가 최근들어 델파이 생태계 복원을 시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데브기어는 7월 한달동안 전국 각 대학 및 대학원 졸업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델파이 무료 교육을 실시하고 수료생 전원에 대해 취업도 주선해주는 교육 프로모션을 진행중이다. 박지훈 부장은 "델파이 개발툴은 국내 거의 모든 업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개발자 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무료 교육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출판과 커뮤니티 활성화에도 적극적이다. 클라이언트 SW 개발에 있어 델파이가 보여주는 생산성도 부각해 나가기로 했다.
사용자 경험(UX)도 전진배치했다. 자바와의 경쟁을 의식한 전술이다. 자바 플랫폼 시장에서 이슈로 떠오른 UX는 델파이의 강점중 하나란게 데브기어 설명이다.
박지훈 부장은 "성능이나 기능성이 중요한 시스템들은 아직도 델파이를 많이 쓰고 있다"면서 "그런만큼, 자바가 강세를 보이는 업무 시스템 시장에서 자바 기반 UX와 리치인터넷애플리케이션(RIA)의 한계를 파고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