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터넷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로 대국민 토론회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정부 구현에 초석을 쌓은 ‘사건’이다. 지난 3월 23일 오후 1시, 30만여 명의 네티즌들이 컴퓨터 브라우저 한 켠에 동영상 창을 띄워놓고 세계 최초로 이루어지는 대통령과의 인터넷 토론에 이목을 집중했다. TV를 통해 이뤄지는 신년대담이나 토론과는 달리, 국민이 실시간으로 자기 의견을 게재할 수 있는 쌍방향 토론 방식이었던 것이다. 30만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양극화 현안 토론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을 주축으로 네이트, 야후!코리아, 엠파스, 파란 등 5개 포털이 주관한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사회 양극화 현상’에 대한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주부, 대학생, 교수, 회사원 등 선발된 5명의 네티즌이 패널로 참가했다. 각 포털은 토론회 일주일 전부터 이벤트 페이지를 개설해 개별적으로 운영했으며, 토론방에 올려진 질문들을 중심으로 교육, 부동산, 복지, 일자리 등에 나타나는 양극화 문제를 주제로 선별해 진행했다. 당초 토론회는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1시간 동안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 의사에 따라 예정 시간을 1시간 가량 초과했다. 온라인 생중계를 관람한 총 접속자 수는 다음이 13만여 명, 야후!코리아가 8만여 명 등 총 30만 명 가량이 접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적 선전 수단’, ‘포털 권력화’ 악용인터넷 문화 측면에서나 정치적으로 새로운 도전이긴 했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여론몰이, 우민화 등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포털 사이트의 권력화에 대한 우려다. 실제 이날 토론회에서는 네티즌이 실시간으로 답글과 의견을 게재했지만 대통령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을 설명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또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론몰이를 해왔던 포털 사이트가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미디어’를 천명하고 나서, 네티즌과 여론을 등에 업은 권력형 미디어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국내 최대 사이트인 네이버는 포털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겠다는 자사 정책을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토론회 접속자 수가 기대에 못 미쳤던 원인이 됐다. 그리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전자민주주의 시발점내재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터넷 토론회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하향 평가될 수 없다. 아직은 이상주의자들의 가치이긴 하지만 가장 진보된 민주주의 형태인 ‘직접 참여’의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포털의 권력화와 정치적 이용에 대한 견제 장치와 사회 감시 체계가 먼저 마련돼야 하며, 온전한 쌍방향 토론에 대한 기능적인 발전 또한 필요하다. 이번 인터넷 토론회는, 사적인 인터넷 공간이 가장 공적인 공간의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줬다. 한국 인터넷 시장을 기점으로 전자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이 과연 우리 생활을 어디까지 바꿔놓을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