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뒤흔든 망중립성…대체 뭐길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철학적 배경과 논쟁 쟁점

데스크 칼럼입력 :2017/12/13 16:11    수정: 2017/12/15 08:2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타이틀2가 대체 뭐야? 그리고 커먼캐리어는 또 뭐지?”

미국 전역에 때 아닌 고급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망중립성 논쟁입니다. 인터넷, 통신업계에선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용어이지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복잡합니다. ‘타이틀2’와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란 단어가 마구 등장합니다.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이란 말도 낯설긴 매한가지이지요.

팩트부터 한번 따져볼까요? 아짓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지난 5월 ‘인터넷 자유 회복’이란 문건을 하나 발표합니다. 핵심은 ‘타이틀2’인 유무선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를 타이틀1으로 재분류하겠다는 겁니다. 2015년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겁니다.

FCC는 오는 14일(현지시간) 전체회의에서 이 문건 도입 여부에 대한 표결을 할 예정입니다. 5명 FCC 위원중 3명이 공화당 출신이어서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5명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가운데가 아짓 파이 위원장이다. (사진=FCC)

언론들이 막연하게 망중립성 폐지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산업분류 조정’입니다. 망중립성 폐지는 그 결과인 거지요. 물론 망중립성을 폐지하기 위해 산업분류를 조정하는 거니까, 뭐 둘러치나 메어치나 매한가지이긴 합니다.

타이틀2는 미국 통신법 706조에 포함된 조항입니다. 유선전화 사업자가 포함된 산업군이지요. 타이틀1은 정보서비스업종입니다.

■ 2003년 팀 우 교수가 '망중립성' 용어 처음 사용

그런데 이 얘길 하기 전에 먼저 망중립성이 뭔지 한번 살펴봅시다. 망중립성이란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팀 우(Tim Woo) 교수입니다. 컬럼비아대학 로스쿨 교수로 상당히 진보적인 학자입니다.

팀 우가 처음 망중립성이란 말을 쓴 건 2003년이었습니다. 통신시장 규제 원칙으로 제시한 겁니다. 그 때 그가 내세운 원칙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단대단 원칙(end-to-end principle)과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입니다.

따라서 망중립성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 두 가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대단 원칙’은 말 그대로입니다. 망의 양 끝단에 있는 이용자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거지요. 차별금지, 차단금지 같은 망중립성 원칙들은 따지고 보면 ‘단대단원칙’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인 셈입니다.

팀 우 컬럼비아대 교수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커먼 캐리어’입니다. 타이틀2에 분류된 기업들이 차별금지, 차단금지, 급행회선 금지 같은 원칙을 지키도록 하는 기본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커먼 캐리어는 생각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동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이 쪽 전문가들의 다수 학설입니다. 커먼캐리어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마을에 있는 유일한 여관, 항만, 외과의사 등은 합리적 가격에 서비스하도록 하라.”

커먼캐리어가 왜 중요한 지 아시겠죠? 이 원칙은 19세기 미국에서도 중요하게 적용됐습니다. 당시 미국 국가 기간망인 철도사업자를 규제하는 최우선 원칙이었지요.

당시 미국 정부는 철도를 비롯해 증기선, 전신, 전화 등에 커먼 캐리어 의무를 부과합니다. 이 때문에 철도 사업자들은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거나, 경쟁 사업자의 통행을 막는 등의 횡포를 하는 것이 금지됐습니다.

여기서 상호접속이란 또 다른 원칙이 등장합니다. 중소 철도 사업자들이 요구할 경우엔 대륙 횡단 철도와 연결해주도록 한 겁니다. 그래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FCC의 전신인 ICC는 철도 사업 규제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신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무렵 전국사업자로 성장한 AT&T의 횡포 때문입니다.

■ 1996년 통신법 때 네 가지 산업분류 첫 적용

이 과정에서 미국의 1934년 통신법이 탄생합니다. 1996년 의회가 통신법을 개정하기 전까지 무려 62년 동안 적용된 법입니다. 이 법과 함께 탄생한 것이 바로 FCC입니다.

1934년 통신법은 망중립성 원칙이 탄생하는 과정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전까지 철도 등에만 부과되던 커먼 캐리어 의무를 통신 쪽에도 적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에 따라 시내외 전화사업자는 부당한 차별이나 우대 없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요금으로 서비스하도록 하는 의무를 갖게 됐습니다.

이 법은 이후 62년 동안 미국 통신시장을 규정하는 핵심 법 역할을 합니다.

이 법이 개정된 건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6년이었습니다.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지 위한 것이죠.

1996년 통신법은 사업 분류를 크게 넷으로 나눴습니다. 타이틀1, 2, 3, 4입니다. 요즘 망중립성 공방과 함께 중요하게 거론되는 타이틀2는 이 때 탄생한 겁니다.

타이틀1은 정보 서비스입니다. FCC는 타이틀1에 대해선 부수적 관할권만 갖게 됩니다.

타이틀2에는 유선 사업자가 포함돼 있습니다. 타이틀2에 소속된 사업들은 강력한 커먼 캐리어 의무를 지게 됩니다.

라디오, 텔레비전 및 무선전화는 타이틀3로 규정돼 있으며, 타이틀4에는 케이블 사업자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케이블 사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할 경우엔 타이틀2를 적용받게 되겠지요.

그런데 1996년 통신법은 한 가지 시대적인 한계를 안고 탄생했습니다. 그 무렵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겁니다.

언뜻 보면 의아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안 준비에 몇 년씩 걸리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질 수록 FCC는 고민에 빠집니다. 새로운 통신수단으로 떠오른 인터넷을 어떻게든 담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02년 케이블 모뎀 규칙(Cable Modem Declatory Rule)을 내놓습니다. 당시 FCC는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를 타이틀1으로 분류합니다. 반면 디지털 가입자 회선(DSL)은 타이틀2 통신 서비스라고 교통 정리했습니다.

■ 2014년 항소법원서 패소한 FCC, 2015년에 초강력 망중립성 도입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같은 인터넷 서비스인데, 서비스 방식에 따라 사업 성격이 달라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FCC는 2005년에 DSL도 타이틀1으로 재분류하게 됩니다. 또 2007년 3월엔 무선 인터넷 접속 서비스도 정보 서비스로 분류합니다.

FCC는 그 뒤 본격적으로 망중립성 규칙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첫 결실은 2010년에 나왔습니다. ‘오픈인터넷규칙’을 통해 차별금지, 차단금지, 합리적 망관리란 3대 원칙을 규정합니다.

그런데 이게 2014년 법원 판결로 무력화돼 버립니다. 연방항소법원이 타이틀1인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에게 커먼캐리어 의무를 부과한 건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고 판결한 겁니다.

당시 법원 판결문엔 “산업 분류를 바꾼다면 모를까~”란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법원 판결 이후 FCC에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초기에 인터넷 산업분류를 잘못하는 바람에 망중립성을 둘러싼 혼란이 생겼다는 게 비판의 골자입니다. 처음부터 타이틀2에 포함시켰더라면 이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거죠.

과연 그럴까요?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지만, FCC의 정책 기조를 보면 꼭 그렇게 비판할 것만도 아닙니다.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 망중립성 원칙을 확립할 당시 FCC 위원장을 역임했던 톰 휠러. (사진=씨넷)

FCC는 초기 사업에 대해선 가급적 규제를 하지 않습니다.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규제를 하는 것이 좋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초기에 FCC가 ISP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했다면 지금처럼 인터넷이 거대 사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항소법원에서 패소한 FCC는 절치부심합니다. 판결 직후엔 ‘급행회선 허용’을 골자로 한 약한 망중립성 원칙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의견 수렴 과정에서 집중 포화를 맞습니다.

그러자 FCC는 진짜 강수를 던집니다. 아예 유무선 ISP를 타이틀2로 재분류해버린 거죠. 여론에도 부합하고, 법적으로도 문제될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조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FCC는 상당히 조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타이틀2 규정 중 700개 이상은 적용하지 않은, 가볍게 건드린(light-touch) 규제 프레임워크를 적용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통신 및 케이블 회사들은 강하게 반발합니다. 당연히 소송으로 이어졌지요. 하지만 FCC가 워낙 정교하게 준비한 탓에 다시 뒤집히는 일은 없었습니다.

■ 인터넷 서비스 성격 둘러싼 철학적 공방도 흥미진진

그런데 변수가 생겼죠. 친통신 성향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첫 선택은 아짓 파이를 FCC 위원장으로 지명한 겁니다. 아짓 파이는 대표적인 망중립성 반대론자입니다.

아짓 파이는 트럼프의 의중대로 2015년 ‘오픈인터넷규칙’을 무력화하는 제안을 내놓습니다. 그게 ‘타이틀1 재분류’를 골자로 하는 ‘인터넷 자유 회복’ 문건입니다. 14일 전체회의에선 이 문건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게 됩니다.

‘인터넷 자유회복’은 2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 중 핵심은 ‘인터넷 서비스’를 어떻게 보느냐는 부분입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의 망중립성 폐지 조치에 항의하는 이용자들이 느려진 로딩 속도를 상징하는 그림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씨넷)

특히 FCC는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정보가 저장된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정보에 접속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소비자들은 단순 전송 기능 이상의 서비스를 위해 돈을 낸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를 토대로 ISP는 ‘기본 서비스’가 아니라 ‘고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부가가치 통신이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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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덧붙여 FCC는 ISP들이 때론 콘텐츠의 형태와 내용을 때론 적절하게 수정하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해로운 콘텐츠를 차단하기 위해 방화벽을 설치한다거나, IPv4와 IPv6 망을 적절하게 혼용하기도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 대충 정리가 되셨나요? 망중립성 원칙이란 건 단순히 "망 차별 하면 안 돼"란 수준의 간단한 논쟁이 아닙니다.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꽤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과 만나게 돼 있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