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슈피겔의 처절한 고백…"급진적으로 변하자"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04/01 11:22    수정: 2016/04/01 11:3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우린 환상에 젖어 있다. 부서 업무만 생각할 뿐 회사 전체를 위한 협업은 잘 하려들지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장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또 다시 전통미디어의 적나라한 고백이 여과없이 공개됐다. 이번엔 독일의 대표 미디어그룹인 슈피겔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한 바탕 미디어업계를 뒤흔든지 2년 만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2014년 5월 버즈피드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이후 곧바로 원문이 공개됐다. 슈피겔 혁신보고서는 독일 방송사 SWR이 단독 입수한 뒤 보도했다. SWR이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슈피겔 혁신보고서 원문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진 않았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슈피겔 본사. (사진=위키피디아)

■ 직원 22명이 작업한 61쪽 분량 보고서 유출

슈피겔은 독일의 대표적인 미디어그룹이다. 자매 미디어만 37개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또 수많은 특종과 깊이 있는 기사로 독일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된다. 지난 10년 사이 발행부수는 23.61%가 감소했다. 2000년 이후 광고는 70%가 줄었다.

곧바로 슈피겔 혁신보고서를 보도한 SWR 기사를 찾아봤다. 독일어로 된 사이트라 어쩔 수 없이 크롬 브라우저에서 영어로 번역한 뒤 읽어야했다.

61쪽 분량으로 된 슈피겔 혁신보고서는 사내 전분야 직원 22명이 작업한 결과물이다. 이들은 2015년 6월에 결성됐다고 돼 있다.

독일 방송사인 SWR이 슈피겔 내부 혁신보고서를 입수한 뒤 단독 보도했다. (사진=SWR)

고백의 수위는 꽤 높은 편이다. 좋았던 과거의 영광은 잃고 있는데 여전히 ‘자화자찬(Selbstherrlichkeit)’ 에 빠져 있다. 특종(Exclusivitat)이나 숨겨진 배경을 파헤쳐주는 기사(Hintergrunde)가 실종됐다는 처절한 고백도 있다.

‘어떻게 우리 브랜드가 훼손됐나’란 제목 아랜 더 처절한 얘기들이 담겨 있다. 이런 얘기들의 출발점은 70년 동안 이어져왔던 슈피겔의 성공 신화가 무너졌다는 처절한 현실인식이다.

그런 배경을 깔고 보면 슈피겔 보고서의 고백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 협업 문화 실종에 대해 집중 비판

실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과장하고 있다거나, 약점을 인정할 줄 모른다는 비판은 영향력이 쇠락하면서도 옛 영광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조직에 대한 처절한 비판으로 읽힌다. “놀랄줄 모른다”거나 “새로운 걸 너무 시도하지 않는다”는 고백 역시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 우선 순위를 잘못 설정하고 있다는 전략적 비판도 예사롭지 않다.

한 마디로 종이매체와 디지털 매체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얼마나 거대하고 중요한 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골자다. 디지털 분야 종사자들은 여전히 ‘2류’ 취급받으면서 홀대받고 있다는 비판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슈피겔 온라인과 잡지부문 종사자간에 적잖은 알력이 있을 것이란 짐작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SWR 보도에 따르면 슈피겔 직원 90%가 “진정한 협업 문화가 없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대화와 협업은 아예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자기 부서 생각만 하고 공통의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태도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진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장은 사내에선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세계에 대해선 거침 없이 분석하고 비판하면서도 자기 문제엔 눈 감고 있다는 비판도 담겨 있다.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문화적 혁신 없인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 ‘안전지대’를 벗어나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 따라서 변화하기 위해선 ‘급진적이어야 한다’는 권고도 하고 있다.

이런 대안의 출발점으로 입주한 지 5년 밖에 안 된 본사부터 옮겨야 한다는 권고가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사옥 이전을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는 타당해보인다. 지금 사옥의 구조로는 부서간의 진정한 협업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 과연 슈피겔은 변할 수 있을까

슈피겔 혁신보고서를 (간접적으로) 읽으면서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언론사 전통 부문 종사자와 뉴미디어 종사자들은 끊임 없이 갈등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현상 유지’에 무기를 싣고 있는 그룹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주도하기 쉽다는 것.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직을 바꾸는 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구성원의 의식을 바꾸는 건 뼈를 깎는 노력 없인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남의 회사 보고서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슈피겔이 얼마나 변할 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사내 협업 문화나 부서 간의 묘한 갈등 같은 것들은 혁신 조치만으로 쉽게 극복되기 힘든 문제들이다. 그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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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런 문제를 까발렸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는 있어 보인다. 모든 변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중간 생략)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 김수영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