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세계 1등 한국 기업들의 딜레마

기자수첩입력 :2013/01/15 08:04    수정: 2013/01/15 11:54

남혜현 기자

110인치 초고해상도(UHD) TV, 구글 2.0 플랫폼을 탑재한 스마트 TV, 풀HD 스마트폰

얼핏 들으면 삼성전자가 올해 선보인 신제품 라인업이다. 헌데 이같은 첨단 제품은 더이상 한국 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 대표 가전업체인 하이신도 110인치 UHD TV를 비롯한 관련 제품들을 올해 CES에서 대거 공개했다.

중국 기업들은 반년 사이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지난해 가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때만 하더라도 한국과 중국 기업간 격차는 최소 5년으로 느껴졌다. 윤부근 삼성전자 가전(CE) 부문 사장도 중국 업체는 보급형 시장, 한국 기업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활동 영역이 다르다며 은근한 자신감을 보였었다.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중국업체들의 형형색색 부스엔 삼성과 유사한 110인치와 85인치 UHD TV가 걸렸다. 구글 TV는 물론, 5인치 풀HD 스마트폰도 함께 공개됐다. 하이신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도 놀랍다는 말을 연발했다. 디자인이나 마감재같은 세세한 부문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분명 이들 업체는 국내 기업의 제품들을 기술적으로 상당 부분 따라잡았다. 삼성전자나 LG전자만큼 관심을 끌며 북적인 곳이 바로 중국 업체들의 부스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CES에서 가장 좋은 목에 제일 큰 부스를 지었다. 관람객 동원에서도 성공적인 성적을 거뒀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이렇다할 신제품이 없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제기했다. 그나마 올해 최대 히트작인 '곡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도 개막 직전 열린 프레스컨퍼런스에선 공개되지 않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공개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한 탓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1위 업체들은 늘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에, 탄탄한 내수 시장으로 든든한 자금줄도 쥐고 있다. 업계는 하드웨어 경쟁에서 중국이 한국을 따라 잡는걸 시간문제로 본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수장들이 중국 업체들이 따라한다며 비밀병기 공개를 꺼린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딜레마가 있다. 하드웨어 경쟁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단순히 껍데기만 베껴선 쫒아올 수 없는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윤부근 사장이 올해 TV 시장을 '새판짜기'로 본 것은 이같은 경쟁상황을 다분히 의식한 결과다. 중국이 쫒아온다고 후발업체들과 하드웨어 경쟁을 해선 삼성이 득볼게 없단 해석이다.

새판짜기는 모바일을 뜻한다. 한 사람당 하나씩 스마트폰을 쓰는 것처럼, TV도 개인화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로 진화해야 새 시장을 만들 수 있단 이야기다. 윤부근 사장도 올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날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삼성전자 경쟁상대는 모바일 업계나 이런데서 나오지 않을까, 그 쪽으로 대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은 올해 CES 현장에서 삼성전자를 서프라이즈의 귀재라고 칭했다. 새로운 하드웨어에 대한 자신감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자꾸만 나한테 신제품이 언제 출시되느냐만 묻는다. 답답하다고도 했다. 좁게는 TV, 넓게는 IT가전 전체의 미래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즉 '스마트'에 있단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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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직 소비자들은 의아하다. '사용하기 쉬운 스마트, 시청자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웨어'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 스마트TV를 쓰지 않는 소비자들도 스마트TV가 뭔지는 안다. 지난 3년, 우리 기업들이 끊임없이 스마트에 미래가 있다고 외쳐온 까닭이다.

올해 국내 TV업체들에 주어진 숙제는 바로 이 '편안하고 차별화된 스마트TV의 현실화'다. 소프트웨어 차별화를 이뤄내야 중국 업체들의 맹추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야 소비자들도 돈을 더 주고서라도 국내 TV를 사려고 할 것이다. 한국산 TV가 주는 가치는, 바로 기업들이 강조하는 그 '새로운 경험'을 현실화할때야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