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미취업자의 대안 직업이 아니다

류한석입력 :2006/11/18 02:54

류한석(IT 컬럼니스트)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폴리텍1대학이 협력하여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 1천명을 양성한다는 기사가 최근 보도된 바 있다. 기사에 따르면 대졸자 취업난 해소와 건전한 소프트웨어 인력 수급을 위해 3년간 360여명의 초중급 개발자와 720여명의 고급 개발자 및 아키텍트를 육성한다고 한다.기사에서 언급된 한국폴리텍대학은 아마도 많은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름의 대학일 것이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지난 3월 전국의 기능대학과 직업전문학교를 통합하면서 도입한 명칭이며 교육부가 아니라 노동부가 관할부처이다. 한국폴리텍1대학은 예전의 서울정수기능대학이다.기술 직종에 대한 인기가 계속 추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기술 직업 교육의 체계화 및 질적 향상을 위해 한국폴리텍대학이 출범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폴리텍대학이 기술 직업 교육에 있어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해주기를 기대한다.여기까지는 덕담이고, 다음은 이번 컬럼의 본론으로 들어가서 까칠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다.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대졸 미취업자들의 대안 직업인가?이런 보도에는 언제나 대졸 미취업자들의 취업난 해소에 대한 얘기가 따라 다닌다. 예전 외환위기 시절부터 개발자가 미취업자들의 대안 직업으로 치부된 지 오래인데, 과거에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추진한 IT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양성된 개인이나 업계 모두에게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 찍힌 지 오래이다.업계에 필요한 중고급 인력이 아닌, 저임금의 초보 웹 프로그래머 위주로 양산이 됨으로써 해당 개인은 과중한 업무와 저임금에 시달리다가 수년 뒤 상당 수가 전직(직업을 바꿈)을 했다. 그리고 초보 인력의 공급 과잉에 따라, 단기적 비용 절감에 집착한 많은 영세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적절한 중급 인력 대신 저임금의 초보 인력을 선호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그에 따라 초보 인력들은 착취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으며, 업계 전반의 소프트웨어 품질은 하락하였고 기존 중급 인력의 지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초급 인력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고급 인력들이 해외로 떠나거나 아예 전직을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많은 대중들이 알고 있으며, 닷컴 시절의 버블 붕괴와 더불어 IT 직종의 브랜드 가치는 완전히 추락했다. 하지만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 일본, 인도 등의 경우 한국의 사정과는 다르게 IT 직종의 브랜드 가치가 여전히 살아있다.그에 따라 현재도 수많은 국내의 중고급 인력들이 전직을 하거나 해외로 떠날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더하여 잘못된 정부 정책의 결과가 많은 IT 인력들에게 고통과 불신을 안겨준 것이다.우리나라는 IT 강국이 아니라 사실 IT 엔터테인먼트 강국이다. 분명한 점은, 소프트웨어 강국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제까지 소프트웨어 직종을 취업난 해소를 위한 대안 직업으로 활용할 것인가? 그렇다고 제대로 활용도 못하면서 말이다.고급 개발자 및 아키텍트를 양성한다?더 나쁜 사실은 이제는 고급 개발자 및 아키텍트를 양성하겠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에서 솔솔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 소프트웨어 업계에 초급 개발자보다는 중급 이상의 개발자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맞다.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폴리텍1대학의 협력 내용을 보면, 3년간 무려 720명의 고급 개발자 및 아키텍트를 양성한다고 되어있다. 아마도 많은 대중들이 이 기사를 보고 “음, 그런가” 라며 별다른 이견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고급 개발자를 양성한다는 말은,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이승엽, 박지성 같은 프로 선수를 양성한다는 말과도 같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모두 알만한 초일류 선수를 예로 들었지만, 일반적인 프로 선수들을 고급 개발자에 비유해서 생각하면 된다.고급 개발자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진정한 프로 선수인 것이다. 그리고 아키텍트는 히딩크와 같은 감독 직업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아키텍트는 전체 그림을 그리고 개발자들의 역할을 조율하고 기술적인 방향을 제시한다.고급 개발자 및 아키텍트는 교육 기관, 대학에서 양성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아니다. 그저 신기술, 방법론에 대한 일부 교육 정도는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교육 과정이 고급 인력들의 체계적 지식 정리에 어떤 도움은 되겠지만, 그런 교육을 통해 결코 프로가 육성되거나 양성될 수는 없다. 그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엔터프라이즈 시스템을 개발하는 고급 개발자를 예로 들면, 비즈니스 요구사항과 테크니컬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하드웨어/소프트웨어/네트워크의 전체 구조를 이해하고, 대형 분산 시스템의 사양을 설계하고 문서화하고, 다른 개발자 및 고객에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고급 개발자의 모든 역량은 철저하게 경험에 의해 축적된다.그것은 마치, 프로 축구 선수에게 있어 A매치의 출전 경험이 아주 중요한 것과 동일하다. 경험에 의해 성장하며 경험은 그 무엇과도 대치될 수 없다.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국내에 고급 개발자가 많이 부족하고 아키텍트급 인력이 거의 전무한 이유가 지금까지 그러한 인력이 양성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이 점에 대해 개발자 출신이 아니라면 명확히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며 또한 대답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개발자 출신인 필자가 알고 있는 그것의 답은,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충분히 A매치를 경험하지 못하고 진정한 프로 선수가 될 정도의 경력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개 5년 정도 일한 후에는 다들 이 직업에 회의를 느끼며 떠날 생각을 한다. 전직을 하지 않으면 35세(회사에 따라 40세)를 전후로 퇴출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이에 대해 개발자의 직업 정신 부재를 탓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업무는 아주 과중하고 몸값은 싸고 건강은 계속 나빠지고 자기계발은 힘들고 비전은 안보이기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다. 스스로 불안하기 위해 불안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한 가지 실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좋아해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류대 전산 관련 전공에 입학한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대학 중간에 휴학을 하고 군입대 대신 병역특례로 복무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업체에 개발자로 취직을 했다. 하지만 특례 3년 동안 개발자의 실상을 절절하게 경험한 후에, 개발자를 포기하고 한의대에 재입학을 했다. 지인의 아들 얘기이다.요즘 젊은이들은 영악하다. 스스로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을 위해 결코 작은 시간조차 낭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소질이 있는 공학/과학을 포기하고 한의대, 의대, 경영대에 진학하거나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것은 완전히 최신 트렌드가 되었다.이렇듯 업계 위기의 상황에서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개발자를 양산하고, 단기 교육을 통해 고급 개발자와 아키텍트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은 실소를 자아낸다.교육 기관과 업체간의 제휴를 통해 고급 개발자 및 아키텍트와 관련 있는 지식 교육 일부를 제공한다는 표현은 몰라도, 양성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수년 전부터 자꾸 소프트웨어 고급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하고, 실제로 양성은 안되고, 그런 고급 인력이 마치 양성될 수 있는 싼 인력으로 치부되는 상황은 현직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불신만을 조장할 뿐이다.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교훈을 주는 유사한 사례로, 한국 영화 산업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한국 영화에서 대단한 성공을 이루어 내었으며 이제는 전세계인들이 한국 영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것은 영화 쉬리가 등장한 1998년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한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영화 배우와 스탭, 감독 또한 많이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배우나 스탭, 감독을 양성함으로써 영화 산업이 부흥했는가? 아니다.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한국 영화 산업의 성공이 가능했다. 그리고 인정을 받고 돈이 벌리니까 자연스럽게 유능한 인재들이 모였다. 물론 영화 산업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라서 소프트웨어 산업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하지만 영화 산업이 주는 힌트가 있다. 한국 영화는 독특한 정서를 내포한 좋은 영화들이 많다. 소프트웨어도 그럴 수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제조, 서비스, 웹 등 아주 많은 분야를 다룬다. SI(시스템통합)와 SM(시스템관리) 말고도 여러 분야가 있다. 우리가 실제 성공하였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의 인기를 얻고 돈이 벌리면 유능한 인재들은 자연스럽게 모인다.한국 영화 산업의 성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적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공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얻고 실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템의 개발을 통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본질적인 부분은 간과한 채로, 현재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시장도 없고 돈 버는 사람도 없는데, 자꾸 미취업자들을 이 업계로 데려오고 양성될 수도 없는 프로 선수와 감독을 양성하겠다고 선전하는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다.시장을 생각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분야와 아이템을 생각하자. 그리고 어떻게든 성공 모델을 만들어내자.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성공 사례를 발굴하고, 대중들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경영인이 아니라 개발자 및 아키텍트들 중에 사회적 지위 및 경제력을 갖춘 성공 모델이 등장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이 상태가 아닌가?어려운 숙제이지만 이것을 해결하려고 노력을 해야지, 자꾸 초급 인력을 억지로 업계에 투입하고 실현 불가능한 프로의 양성을 선전한다면 그것은 앞과 뒤가 바뀐 것이다. 사람이 없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해야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무엇보다 먼저, 기존 업계 인력들이 어떻게든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논의하기 위한 실천 방안의 한 예로,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 깊은 애정과 경륜을 가진 고급 개발자들을 주축으로 개발자 다수가 모여서 언컨퍼런스(Unconference) 형태의 난상토론을 하는 것을 들 수 있다.이러한 토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이러한 다수의 움직임들이 모여서 올바른 소프트웨어 개발의 큰 물줄기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꿈꾸는 많은 개발자들의 관심과 호응을 기대한다. 업계는 우리 스스로 바꾸어야 하며 반드시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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