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목표로 하면 안 되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크 저커버그보다 돈을 더 벌 수 없는 게 분명하고, 돈으로 1등 하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내가 내린 성공의 정의는 배우자에게 사랑받고 존경 받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에요.”(김봉진 대표)
개인적으로 성공에 대한 정의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라 답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회사를 경쟁사인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해 업계 큰 화제가 됐습니다.
국내에서 ‘요기요’와 ‘배달통’을 서비스 중인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의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는 40억달러(약 4조7천500억원)로 평가됐습니다. 김봉진 대표와 주요 경영진들이 갖고 있는 13%의 회사지분은 추후 딜리버리히어로 본사 지분으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또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은 아시아 지역 사업을 총괄할 합작회사(JV)인 ‘우아DH아시아’를 싱가포르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신설 법인 총괄 수장은 김봉진 대표가 맡기로 했습니다. 이 합작사는 한국을 포함, 홍콩 필리핀 타이완 등 딜리버리히어로가 진출한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우아한형제들 투자사들은 성공적으로 투자금 회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회사의 주요 투자사로는 힐하우스캐피탈, 알토스벤처스, 골드만삭스, 세콰이아캐피탈차이나, 본엔젤스, 네이버,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이 있습니다. 2011년 창업한 회사가 10년도 안 돼 5조원에 가까운 기업가치 평가를 받았으니 미래를 내다보고 배팅한 투자사들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투자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김봉진 대표 입장에서는 이번 결정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질까요. 우선 김 대표가 좁은 국내 시장을 넘어 아시아 배달앱 시장을 호령하게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입니다. 김봉진 대표 특유의 도전정신과 아이디어, 리더십이 더 크게 발휘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대가 모아집니다. 13% 개인 지분 중 김 대표의 정확한 지분은 모르겠으나 10%라고 하고, 당장 현금화 한다고 가정할 경우 대략 5천억원 정도의 수익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적과의 동침...우려 반 기대 반
아쉬움과 의문도 많습니다.
사업 초기 때부터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동종업계 경쟁사면서 앙숙 같은 사이였습니다. 경쟁이 가열되면서 식사 자리를 함께 할 만큼 가까이 지냈던 김봉진 대표와 당시 나제원 요기요(알지피코리아) 대표의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요기요는 독일 회사고 배달의민족은 국산 토종 회사라는 점을 홍보 전략 중 하나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또 요기요의 결제 수수료가 배달의민족보다 높다는 부분을 공격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배달의민족은 요기요의 광고 캠페인 물량 공세에도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요기요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TV 광고에 큰 돈을 쓸 수밖에 없다”며 볼멘소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최근에는 배달의민족의 요기요 매출 정보 무단 수집 논란이 일면서 양사 간 내용증명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사업 전략도 달랐고, 브랜드 색깔도 전혀 달랐습니다. 선의의 경쟁도 했지만, 때로는 날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요기요는 톱스타 연예인을 내세워 인지도를 높이고 할인 쿠폰 지급을 통해 이용자를 끌어 모으는 전략을, 배달의민족은 재치있고 기발한 메시지를 던져 이용자들 기억에 각인되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또 전용 서체 무료 배포와 굿즈 판매, 배민 신춘문예 등 부가 사업과 이벤트로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전략을 폈습니다.
배달음식 중개 서비스라는 사업 형태만 같을 뿐 너무나 달랐던 두 회사가 이제는 한 몸이 되겠다고 하니 궁금증이 커지는 건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두 회사의 방향이 극명히 다른데 서로의 지혜를 잘 모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익 실현을 1순위로 꼽을 수밖에 없는 투자사의 압박이 크지 않았겠냐는 추측부터, 국내 스타트업 업계를 대표하는 역할에 갑자기 커진 회사까지 짊어진 김봉진 대표의 부담과 피로도가 컸기 때문 아니겠냐는 얘기도 들립니다.
국내 시장만 놓고 봤을 때 두 회사는 요기요와 배달통, 배달의민족의 독자적인 서비스를 유지하고 지금과 같은 경쟁 관계를 이어간다는 계획입니다.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 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배달의민족 특유의 문화와 신사업 등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이 약속이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은 이용자나 회사 임직원들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참고로 요기요가 배달통을 인수할 당시에도 비슷한 계획을 공개했지만, 현재 두 회사는 브랜드만 다를 뿐 사실상 하나의 조직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 김봉진 대표 평가는 이제부터
김봉진 대표는 이번 회사 매각 결정을 두고 약간의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
김 대표는 사내공지를 통해 “창업자로서 직접 상장을 하지 못한 점, 독일에 상장하는 회사가 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만 서비스를 잘 한다고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점은 이미 선배기업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더 큰 도전의 기회들이 여러 아쉬움을 넘어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배달의민족이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으로서 잘 성장해 상장에도 성공하고, 글로벌 시장에도 직접 진출해 국위 선양하는 그림을 많은 이들이 그렸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란 광고 카피처럼 애국심이 불끈 솟는 잘 된 한국 기업의 탄생을 기다린 게 아닐까요.
김봉진 대표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년 간 한국 스타트업 발전을 위해 힘썼고 업계 힘을 모으는 데 앞장서 왔는데,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회사 지분을 털고 나가는 그림은 김 대표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선택지였을 것 같습니다.
치열해진 경쟁 환경과 규제 속에서 회사를 더 키우기에 한계점이 보이니 글로벌 진출을 고민하게 됐고, 그러려면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란 현실을 깨닫게 됐을 것 같습니다. 결국 해외에서 이미 성공 경험이 있고 자금력이 있는 회사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딜리버리히어로였던 것입니다. 서로 성격도 다르고 때론 싸우기도 했지만, 하나의 산업에서 경쟁도 해봤고 업의 특성을 아는 만큼 손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회사 지분만 사는 게 아니고 합작사를 설립해 동반자로서 아시아 시장 공략에 힘을 모으겠다고 하니 이를 믿고 과감한 도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배달의민족, 그리고 김봉진 대표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김 대표가 아시아 시장에서 얼마나 능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가 정말 딜리버리히어로 본사 임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시아 지역 확장에 성공한다면 한국 기업이 독일 회사의 힘을 빌려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한 성공사례가 될 것입니다.
반면 몇 년 해보고 주요 경영진에서 내려오거나 개인 지분을 털고 나온다면 성공한 기업가는 될지언정 지금처럼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 김봉진 대표는 왜 경쟁사에 회사 넘겼을까?2019.12.16
- 김봉진 "난 여전히 봉대표…국내선 요기요와 계속 경쟁"2019.12.16
- 요기요 본사, 국내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 인수2019.12.16
- 배달의민족, 식당 가는 길에 주문하는 '배민오더' 확장2019.12.16
다시 한 번 김봉진 대표가 한 스타트업 행사에서 했던 발언을 끝으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그가 앞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돈을 목표로 하면 안 되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크 저커버그 보다 돈을 더 벌 수 없는 게 분명하고, 돈으로 1등 하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내가 내린 성공의 정의는 배우자에게 사랑받고 존경 받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