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저녁을 먹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이 석사 과정 중 학교 메인프레임을 사용해 해저밑 석유탐사를 했다는 야기다. 수십년전 얘기다. 당시 메인프레임(대형 컴퓨터) 가격은 꽤 비쌌다. 한번 사용할때마다 돈을 내야 했다. 물론 이 돈은 학교에서 지원 해줬다. 하지만 지인은 메인프레임 사용으로 실험실 예산을 혼자 다 쓰는 경우가 생기곤해 고혹스러웠다고 한다.
지인이 다녔던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곳이고 학비도 쌌다. 거기가 그랬으니, 다른 대학은 메인프레임 사용이 더 어려웠을 거다.
지인이 한 해저밑 자원 개발은 보통 선박에 가로세로 수백미터씩 센서를 격자배치하고 끌고 다니고, 바다에 초음파를 쏴 반사되는 정보를 받아 신호를 처리한다. 바다속 깊이 들이있는 암반 구조와 조성 물질 등을 분석해 석유탐사를 하는 것이다. 자료 분석 등에 대형컴퓨터 이용이 필수적이다.
이공계는 어쩌면 속칭 '장비빨'이다. 얼마나 좋은 슈퍼컴퓨터(슈퍼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연구결과가 달라진다. 미국 박사들이 슈퍼컴퓨터를 비용에 상관없이 마음대로 쓸때, 우리나라는 고성능 컴퓨팅을 100분의 1 밖에 사용 못한다면 연구 결과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바다 속 자원 연구는 얼마나 촘촘하게 많은 센서를 갖추는냐에 따라 정밀도가 달라진다. 이런 센서를 사용해 자원, 기후, 날씨, 재료, 반응을 검출하고 검출된 데이터를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수치해석을 통해 결과를 얻어낸다. 지인은 "미국과의 컴퓨팅 능력 차이가 연구결과를 얻는데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노벨상에 굶주려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노벨상 받을 기회를 슈퍼컴퓨터가 없어 못받는지 모른다. 대개의 가치 있는 연구는 결정론적 연역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화학만 해도 Chemistry 라는 단어가 Chem. is try 로 해석한다는 화학 교수님도 있다. 우숫게 소리지만 화학은 이것 저것 물성을 배합해 실험해 보는 방법밖에 없다. 무조건 많이 시도하고 던져보고 실험해서 가장 좋은 결과를 선택하는 과정이 화학이다.
기초분야는 이런 실험과 연구가 많다. 또 이런 연구에는 모델링과 변수 시뮬레이션을 위한 슈퍼컴퓨터 사용이 절대적이다. 최근 중국이 미국보다 빠른 슈퍼컴을 제작했다고 한다.
차제에 우리나라도 슈퍼컴퓨터용 CPU 를 만들면 어떨까한다. 물론 AMD 나 인텔 CPU 를 슈퍼컴 용으로 라이센싱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슈퍼컴퓨터용 CPU를 만드는게 전혀 허황되지 않은 게 우리한테는 세계최고 반도체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7nm 공정에 이어 5~3nm 공정을 ASML EUV 장비를 사용해 셋업 중이다.
슈퍼컴퓨터 설계는 프로세서 성능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코어를 작은 단위 면적에 집적하고 적은 전력으로 구동할 수 있는냐가 관건이다. 아직까지 미세 공정기술은 D램(DRAM), 플래시(FLASH) 메모리 양산에서 보듯 한국이 최고다. 우리혼자 힘으로 어렵다면 미국과 조단위 과제를 협력해 슈퍼컴퓨터용 CPU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초절전 고성능 슈퍼컴을 만들면 하드웨어 수출 효과도 있을 것이다.
부수적으로 CPU 공정을 테스트 하면서 3-5 nm 공정은 자동으로 셋업하고 양산 준비를 할수도 있다. 멀티 코어 설계, 병렬 프로세싱, 연산 코프로세서, 고속메모리 IP 셋업, 네트워크, OS 운용기술, 비지니스 셋업 등 하나같이 슈퍼컴퓨터와 결부된 기술은 고부가이고 고급 기술이다.
이런 과제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도 혼자 할 수 없다. 범국가적 노력과 산학협력이 꼭 필요하다. 삼성전자 2018년 3분기 영업이익은 17조 5천억이며 상반기에만 6조2천억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연간으로 10조원의 법인세를 내는 회사에 1조원의 슈퍼컴퓨터 과제 기획은 '특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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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슈퍼컴퓨터를 수입해 사용하는 것은 결국 장기간 운영하면 비용상 한계가 있다. 슈퍼컴은 우주, 항공, 제트엔진, 배터리, 물성 연구, 기후 예측,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자원탐사, 고성능 그래픽 프로세싱 등 사용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고성능 연구컴퓨터를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는 대가로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해외 연구소와 연구 과제도 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용 CPU 개발은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 일석 칠조의 기술이다. 정부가 충분히 추진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4대강, 창조경제보다 슈퍼컴퓨터에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의 대형 사업 실패를 타산자석으로 삼아 슈퍼컴퓨터 투자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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