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보고서 ‘직업의 미래’에는 2020년까지 50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로봇, 인공지능,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없어질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이세돌 9단이 AI 알파고와의 대국에 패하면서 전세계인이 AI에 대한 공포심을 가질 무렵, WEF의 일자리 감소 전망은 기술로 인한 디스토피아 시대를 연상시켰다.
이에 로봇, AI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반씩 갈렸다.
혁신적인 기술로 사람들의 일상의 더욱 편리해질 것이란 기대와, 반대로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역할이 줄고 일자리마저 앗아갈 것이란 공포심이 맞섰다.
이 때문에 많은 혁신 기업들이 앞다워 AI 기술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을 발표했음에도 관심과 우려가 공존했다.
얼마 전 배달음식 중개앱 ‘배달의민족’을 서비스 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발표한 음식배달 로봇 ‘딜리’에 대한 시각도 비슷했다. 스타트업이 로봇 개발 투자에 나섰다는 소식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구글, IBM, 소프트뱅크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도 아닌 아직은 성장 단계인 스타트업의 로봇 개발에 업계의 이목이 쏠렸다.[☞관련기사: 배달의민족,배달로봇 개발...“5년뒤 상용화”]
반면 이륜차 배달기사들의 일자리마저 로봇이 빼앗는 거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시각을 보이는 이도 여럿 보였다.
우아한형제들은 이르면 5월 천안에 위치한 한 복합몰 푸드코트에서 첫 연구 테스트 시연을 실시한 뒤, 5년 내 일상에서 음식배달을 하는 로봇을 상용화 한다는 목표다.
1단계 시연 버전은 한정된 공간에서 음식을 날라주고 빈그릇을 회수해 오는 수준이지만, 5년 뒤에는 인도를 통해 음식점과 소비자 사이를 오가면서 음식을 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 대학 연구진은 물론, 로봇 연구 인력들이 모인 전문기업, 그리고 미국 등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도 타진하고 있다.
아직은 꿈같은 얘기로 들리지만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로봇 시대를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사고 위험이 끊이지 않는 오토바이 배달 사고를 줄일 수 있어 사회적 이익이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해에 배달 음식하면서 사망하는 기사 수가 무려 20명이나 돼요. 다치는 사람은 1천명 이상이고요. 사회 초년생들이 많다 보니 다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죠. 로봇이 사람의 직업을 없애는 것도 맞지만,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잖아요. 한해 스무 명의 청년들이 죽는 건 정말 심각하지 않나요?”
김봉진 대표가 생각하는 음식배달 업무를 단계적으로 로봇이 대체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다. ‘혼밥족’이 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음식을 배달 시켜 집에서 먹는다. 그러나 늘어나는 배달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는 기사 수는 한정돼 있다. 지금도 많은 업체들이 배달기사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또 인구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10년 뒤 짜장면을 배달하는 청년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하지만 음식을 시켜먹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아질까요. 이미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통일과 같은 큰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거라 봅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이미 지난해 3월 인공지능 분야에 100억원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전문 인력을 충원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단순 배달음식 중개를 넘어 진정한 IT 기술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로봇 개발 역시 우아한형제들이 ‘푸드테크’ 기업으로 가는 중요한 전기를 마려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투자금과 기업공개(IPO) 등으로 풀어간다는 계획이다.
미국 지역 정보 검색 사이트인 옐프는 ‘옐프 잇24’를 통해 로봇 음식 배달 서비스를 지난해 선보였다. 이 회사는 작년 4월 로봇 제작 업체인 마블과 협력해 특정 지역에 한정해 레스토랑에서 1.6km 거리에 있는 고객에게 로봇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시범 서비스로 눈길을 끌었다.
피자 체인인 도미노는 2016년 이미 ‘드루’(Domino’s Robotic Unit)라고 불리는 자율주행 배달 로봇을 마라톤 타깃이라는 호주의 스타트업과 함께 개발한다는 발표를 했다. 당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드루의 최고 속도는 20km/h며, 반경 20km까지 한 번 충전으로 배달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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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대표는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봤을 때 로봇을 통한 음식배달은 먼 얘기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관련 시장을 외산 기업에 빼앗긴다는 위기의식도 갖고 있다.
“이 기술은 해외에서도 준비를 많이 하고 있어요. 다른 곳에 우리가 시장을 뺏길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주문처리를 많이 하는 건 배달의민족이기 때문에 로봇을 더 잘 만드는 곳이 있다면 협업을 통해서도 로봇 배달이 가능하다고 봐요. 방식은 다양하게 열려있어요. 저희도 기술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일반 도로에서 배달로봇을 만나는 일은 더 이상 먼 얘기,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