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내에서도 스마트폰은 대세가 되었다. IT업계 종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대중도 휴대폰 구매 시 스마트폰을 1순위로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이폰을 이용하는 것을 엣지있게 생각하는 강남 아줌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미 수년 전부터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스마트폰이 휴대폰의 최신 트렌드를 이끌고 있었는데, 드디어 국내에서도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대중적인 유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에 따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출시 한달 만에 20만대가 개통된 아이폰의 선풍적인 인기, 경쟁 스마트폰 가격의 하락, 적절한 스마트폰 요금제의 등장뿐만 아니라 ‘아이폰 대 옴니아’를 주제로 쏟아진 수많은 신문 기사와 인터넷 상의 글들을 보라. 모바일 산업이 요통치고 있다.
그런 드러난 사실들에 대한 언급은 여기에서 마치겠다. 필자가 이 글에서 얘기하려는 것은 스마트폰 플랫폼(OS)의 경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아이폰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꼽고 있다. 안드로이드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주요 스마트폰 플랫폼들의 경쟁 현황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위 스마트폰 플랫폼에는 빅6가 있다. 애플의 아이폰, 구글의 안드로이드, RIM의 블랙베리, 노키아의 심비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모바일, 팜의 웹OS가 그것이다. 이중에서 심비안과 윈도모바일은 오래 전에 PDA폰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서 현시점에서 보면 여러 면에서 꽤나 진부하다. 특히 UI가 그렇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스마트폰에서 UI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UI의 편의성과 속도에 따라 사람들이 앱과 웹을 이용하느냐 아니냐가 정해질 정도로 중요하다.
심비안은 점유율이 매분기마다 급락하고 있다. 이미 그것이 대세가 되었다.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한때 어떤 기업도 넘볼 수 없었던 노키아는 피처폰(특히 고급기종)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세에 치이고,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애플과 RIM의 공세에 치여 최근에는 13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윈도모바일은 PDA폰 시절에는 가장 인기 있는 플랫폼이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동안 너무나 신경을 안 썼다. 수년전의 버전이나 최신 버전이나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이다. 아이폰의 성공에 놀란 마이크로소프트가 뒤늦게 7.0 버전을 완전히 새롭게 개발하고 있지만 올해 말이나 출시될 예정이다. 너무 늦다. 윈도모바일은 심비안과 더불어 점유율이 매분기마다 급락하고 있다.
사실 심비안과 윈도모바일이 그리 나쁜 플랫폼은 아니다. 단지 다른 경쟁 플랫폼(특히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이 너무 뛰어날 뿐이다. 심비안과 윈도모바일이 다시금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기회는 거의 없어 보인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시간이 없다. 물론 그들도 무언가를 하겠지만, 그들이 새 제품을 내놓을 때면 애플과 구글은 이미 멀리 달아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스마트폰 중의 하나인 블랙베리는 메시징 기능에 특화되어 있다. 그에 따라 북미 지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비즈니스맨을 중심으로 탄탄한 고객층을 자랑하고 있다. 블랙베리는 아이폰, 안드로이드와 더불어 주목할만한 플랫폼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앱에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많이 밀리고 있어서, 향후 전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스마트폰이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팜의 웹OS는 일부 전문가와 이용자들에게 관심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빅6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미약하다. 괜찮은 플랫폼이지만 향후에 작은 점유율을 차지하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래 스마트폰 플랫폼의 핵심 선수는 애플과 구글이 될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지 그들의 플랫폼이 기술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하나의 주된 이유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두 업체는 수많은 팬보이들을 거느리고 있고,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마켓을 통해 가장 많은 앱을 보유한 1위와 2위 업체이고, 또한 언제나 업계의 관심과 이슈의 중심에 서있다. 두 업체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가 되고 인터넷에서 수많은 논쟁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다른 업체들은 앱이 별로 없고, 만들려는 개발자들도 적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놔도 대중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반전시킬 기술도 전략도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게임의 룰은 애플이 만들었고, 현재는 구글만이 경쟁자로서의 적절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앱을 많이 보유한 플랫폼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앱이 없는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가 없는 컴퓨터와 같다. 앱의 양이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다. 앱이 많으면 그만큼 다양한 욕구를 가진 여러 이용자층을 만족시킬 수 있다.
필자는 앱의 개수야말로 스마트폰 성공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라고 본다. 앱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질이 높아지고 킬러앱이 등장하게 된다. 즉, 양이 질을 만든다. 그런데 많은 앱이 만들어지려면 플랫폼이 강력하게 통제될 필요가 있다. 윈도모바일처럼 폰마다 해상도가 다르고 OS 버전에 따라 제조사에 따라 앱 호환에 일부라도 문제가 있어서는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없다. 이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호환성 문제가 대두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점이 현재의 안드로이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이며 누구든지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어서 앱의 호환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해상도에 따라서, 사용된 OS 버전에 따라서, OS의 어떤 부분을 빼고 추가했는가에 따라서(이런 것까지 모두 가능하다!), 어떤 기기에서는 구동되는 앱이 어떤 기기에서는 구동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안드로이드폰을 출시한 제조사들이 적어서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지 않지만, 올해 여러 제조사들에서 안드로이드폰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이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바로, 과거에 윈도모바일이 겪었던 그리고 현재도 겪고 있는 문제점과 일치한다.
앱의 호환성을 보장하기 위해 단일 기업에 의해 플랫폼이 강력하게 통제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픈소스가 가진 장점이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서는 약점이 되어 버린다. 필자는 지난 30년간 수많은 플랫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오픈소스 그리고 어느 기업이나 마음대로 고쳐서 쓸 수 있는 OS란 커뮤니티적으로는 참 좋은 것이지만 비즈니스적으로는 좋지 않다.
비즈니스적으로 가장 성공한 OS인 윈도우 OS와 맥 OS를 보라. 모두 단일 기업에 의해 강력하게 통제되는 OS들이다. 역사는 반복되며 스마트폰 플랫폼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글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를 아무 회사나 막 가져다가 마음대로 고쳐서 폰을 만들고 그로 인해 안드로이드가 많이 퍼지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여러 제조사들이 만들었던 심비안이나 윈도모바일은 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오픈소스가 아니라서?) 오픈소스가 사업의 성공요인일까? 플랫폼의 강력한 통제를 통해 앱의 호환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일일까?
필자는 계속 이와 같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구글은 직접 만든 안드로이드폰인 넥서스원을 자사 홈페이지(http://www.google.com/phone)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세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구글은 처음부터 플랫폼을 통제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었으나 전술적인 측면에서 안드로이드를 오픈소스로 개방했다는 시나리오이다. 그렇다면 구글은 엄청나게 영악한 행동을 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공개 초기에 OHA를 통해 수십여 개의 업체들과 제휴를 맺어 업계의 커다란 관심과 지지를 얻어내고 수많은 뉴스를 만들어냈다. 아이폰과 달리 오픈소스이고 어떤 업체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지극히 개방적인 이미지를 통해 아이폰의 경쟁자로서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는 절묘한 타이밍에 직접 넥서스원을 출시한 것이다.
플랫폼사가 하드웨어까지 직접 파는 것은(비록 HTC와 제휴를 해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삼성전자, LG전자,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등의 제조사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이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은 어떤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시나리오에서 제조사들은 한방 먹은 것이다. 향후 모든 안드로이드 앱은 넥서스원을 기준으로 만들어질 것이며, 제조사들은 넥서스원 호환 기종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둘째, 구글이 초기에는 플랫폼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나 뒤늦게 깨닫고서 넥서스원을 출시했다는 시나리오이다. 여러 제조사에서 다양한 안드로이드폰이 출시되면 앱의 호환성 문제가 야기될 수 밖에 없다. 안드로이드는 완전한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놓을 경우 그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이미 안드로이드마켓의 수익에 실망한 나머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안드로이드마켓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앱 개발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호환성 문제까지 불거지면 안드로이드마켓을 떠나 앱스토어에 치중하는 개발사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OS를 개발하고 성공시켜본 경험이 없는 구글(안드로이드는 구글이 벤처 기업을 인수하여 확보한 OS이다)이 안드로이드마켓의 운영 경험을 통해 플랫폼의 본질을 뒤늦게 깨닫고는, 초기 전략과는 달리 직접 넥서스원을 출시한 것이라고 보는 시나리오이다. 결국 구글이 플랫폼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첫째 시나리오와 결론이 동일하다.
셋째, 넥서스원은 구글이 그냥 한번 출시해본 것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첫째 시나리오도 아니고, 둘째 시나리오도 아니라면, 결국 이것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구글은 넥서스원을 재미 삼아 출시한 것일까? 아니면 레퍼런스폰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순진한 생각에 출시한 것일까? 이 시나리오는 실제로 가능성이 크지 않다. 왜냐하면 특별한 명분 없이 넥서스원을 출시하기에는 너무나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플랫폼사가 제조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협력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실제로 넥서스원 출시 후 제조사들은 구글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 제조사들은 구글의 속내를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그렇게 될 줄 구글이 몰랐을 리 없다.
구글은 제조사들의 신뢰를 잃더라도 넥서스원을 출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참고로 마이크로소프트도 직접 스마트폰을 출시한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또한 구글은 아이폰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건 안드로이드 밖에 없다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제조사들은 별다른 대안이 없다. 시장은 이미 스마트폰이 대세이고 그 중 아이폰이 파죽지세의 상승세인데, 윈도모바일이나 심비안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결국 안드로이드 밖에 다른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필자는 구글이 이런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넥서스원이 플랫폼 통제의 첫발을 내디딘 구글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뚜껑을 열어보면 알 것이다.
어쩌면 넥서스투, 넥서스쓰리가 나올 즈음에는 많은 휴대폰 제조사들이 현재 PC 제조사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마진도 얼마 안 남는 PC를 만들며 마이크로소프트의 배만 불리고 있는 것처럼, 구글의 배만 불리는 상황만이다. 혹시라도 구글이 플랫폼 통제에 나서면서 OS 라이선스 비용을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돈만 많이 벌린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구글도 예외는 아니다. 설사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구글은 어쨌든 모바일 광고로 큰 돈을 벌 것이다. 그럴 경우 스마트폰 가격은 쌀수록 좋다. 구글은 제조사들을 가격 경쟁으로 이끌어 안드로이드폰 시장은 레드오션이 될 수도 있다.
여러 변수를 고려해보건대, 향후 스마트폰 업계는 의심의 여지없이 ‘애플 대 구글’이라는 양자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업체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다른 업체들은 들러리가 될 것이다. 아이폰이 두려운 나머지 안드로이드폰에 올인하려는 제조사들이여, 구글을 조심하라. 애플은 명백한 적이지만, 구글은 친구인척 하는 적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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