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고함, 인터넷을 논하라

윤종수입력 :2008/08/08 14:37    수정: 2009/01/04 23:44

윤종수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기사가 하나 눈에 띄었다. 어느 정당을 방문한 A사이트 회원들에 관한 기사였는데 읽다 보니 “그들은 야구모자나 선글라스를 썼다...[중략]...서로를 '와우님' '흡연구역님'이라는 식으로 실명보다는 필명으로 불렀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내가 잘 못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사에서는 ‘그들은 정상적인 사회인들이라기보다 마치 비밀조직원처럼 수상쩍은 사람들이다’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꼭 그런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그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들은 그런 취지로 이해했을 것이다.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 수 밖에 없는 게 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모르지만, 필명으로 부른다는 것이 어떤 건지는 알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천리안과 하이텔이 천하를 양분하던 PC 통신 시절에 천리안 모 동호회의 시삽을 맡아 활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 동호회는 주로 직장인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회원들끼리는 본명 대신 대화명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게 관례로 굳어져 있었다.

‘게스’(청바지 브랜드가 아니고, guess who란 록밴드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라는 대화명을 사용하던 나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이름대신 그렇게 불리었다. 심지어는 전화를 걸어서 게스님을 바꿔 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당사자인 우리들은 너무나도 편안했다. 온라인에서 서로 모르는 상대방을 호칭하기에는 이름보다는 대화명이 자연스러웠고 처음 만나서도 쉽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름 뒤에 따라붙는 직책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어 좋았고 특히 개성 있는 대화명은 그 주인을 쉽게 기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넷보다 더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던 PC 통신 시절에도 다 큰 어른들이 이런 닉네임을 부르며 커뮤니티를 꾸려가고 있었으니 지금의 인터넷에서는 오죽 하겠는가.

하지만 이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호칭은 너무나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의 인터넷(단순한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인터넷이 아니라 그 물적 설비와 그 위에 형성되는 관계, 흔히 사이버스페이스라 불리우는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인터넷)을 둘러싼 상황은 참으로 정신없다.

위 사례도 어찌 보면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사안이긴 하지만 일련의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생기는 인터넷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터넷이 갖는, 또는 특정 인터넷 사이트가 갖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굳이 부정할 거까지는 없다. web 2.0, 롱테일(longtail) 등 한참 인기를 끌던 인터넷의 화두들도 결국은 개인들의 능동적 참여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정치적 텍스트로 자연스럽게 귀결되지 않았던가.

다만 그것이 현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었고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 서로 의견이 나누어지고 때로는 격하게 충돌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정말로 예민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인터넷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마치 기회로 삼았다는 듯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각종 인터넷 규제안들이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뜨거운 감자라고 할 만한 이슈들이 마치 여태까지의 논란을 잠재울 정당성을 얻은 것처럼 서로 경쟁하듯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더 답답한 건 이를 둘러싼 논쟁들이 대부분 ‘인터넷은 어떤 곳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한 쪽은 ‘인터넷은 제멋대로의 혼란스러운 곳’으로 현실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부작용을 간과할 수 없으니 여러 규제 장치를 인터넷에 더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인터넷은 자율과 자유가 보장되는 곳’으로 그 본질적 가치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되며 실제로도 이를 통제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접근이 다를 뿐 다들 ‘인터넷은 현실세계보다 훨씬 자유로운 곳이다’라는 관념을 공고하게 가지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곳, 원래의 아이덴티티를 숨기고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페르소나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수도 있는 곳, 사회적 간섭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 육체적․물리적 제한으로부터 해방되는 곳, 다른 사람에 의해 감시되거나 추적될 수 없는 곳, 그렇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곳이 인터넷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인터넷은 그야말로 빅 브라더(Big Brother)가 꿈에 그리던 곳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모든 사람들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과자를 흘리고 다닌다. 오죽 했으면 쿠키(coockie)라는 기술이 나왔겠는가. 자신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미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자신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스스로 갖다 바치고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IP 어드레

스라는 이름표를 이마에다 계속 붙이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먹고 있을 뿐이다.

흘리는 정보를 최대한 막는다고 하더라도 데이터마이닝 기술은 사소한 과자부스러기를 모아 특정 주체에 연관된 정보로 프로파일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오히려 바깥세상인 오프라인이 더 자유롭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걸어다니며 자신의 신분을 누설함이 없이 광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실례를 범하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내가 이야기 나누는 그 사람이 진짜 누군지 알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던가?

세상이 발전해서 위성사진으로 찍고, CCTV로 찍고, 신용카드사용으로 추적한다고 해도 그건 극히 일부분이다. 이른바 자유체제 하에서는 오프라인에서 개인의 자유는 온라인의 경우보다 훨씬 양호하다.

시공간과 육체를 초월한 자유, 이것도 사상누각이다.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으니 영역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무한한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자유이다.

단 한 줄의 코드를 삽입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될 수 있고 케이블 하나 뽑아버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 이건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단체도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위력을 떨치던 존재도 간단한 조작만으로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꼼작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릴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야 컨테이너로 길을 막아도 위로 넘어갈 수도 있고, 점포가 폐쇄되면 노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데도 과연 인터넷이 본질적으로 자유의 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통제하기 어려운 제멋대로 날뛰는 공룡이고, 손을 댈 수도 없고 대 봐야 소용없는 성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인터넷은 확실한 정체성도 없을뿐더러 그 자체의 기반이 너무나 취약한 플랫폼에 불과하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이러 이러한 곳’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아키텍쳐(architecture)’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어떻게 설계를 하냐에 따라서 완전한 자유의 땅이 될 수도 있고, 현실의 세상보다 더 억압된 통제의 땅이 될 수도 있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어떻게라도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의 땅이라는 점 뿐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는 인터넷의 본질론이나 당위론의 문제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키텍쳐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본질론에 집착하여 원리적인 논리만을 내세우거나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당위론을 앞세워 전체 아키텍쳐를 무시한 채 여기저기 벽돌쌓기를 하는 건 더 위험하다.

더구나 절대로 그럴 리 없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정치적인 의도에의 부합이나 이해관계의 타산에 따라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든가 관료주의의 무책임함에 힘입어 아무 생각 없이 덩달아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 위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혹자는 어차피 인터넷의 아키텍쳐를 설계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규제들이 필요하게 되고 결국 같은 것이 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안 그럴 수도 있다. 그건 우리의 선택의 문제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진 건 가능성 밖에 없는 그 취약한 플랫폼을 기껏 어렵게 만들어 놓고 이를 현실과 똑 같은 아니면 오히려 현실보다 더 경직된 전화선망으로 만드는 것이나, 새로운 참여의 에너지와 창의를 끌어내고 다양성과 민주성을 극대화 시키며 혁신적인 경제의 부흥이 가능한 두 번째 세상(second world)를 만들어 내는 것 모두 우리의 선택이다.

스스로 디지털 강국,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하던 자산이었던 하드웨어 망이 이미 다른 나라와의 차별성을 잃고 있는 지금 그 소프트웨어가 다시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 결정되는 것도 역시 우리의 선택인 것이다.

진정으로 바라건대, 어떠한 선택을 해야되는지 진지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벽돌쌓기를 서두를 것이 아니라 전체 아키텍쳐의 설계를 고민하기 바란다.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지금 꼭 필요하다.

대한민국이여, 인터넷을 논하라!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