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은 곤란합니다."이번으로 딱 네 번째 듣는 말이다. 10년 동안 4번이라니 어찌 보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닐지 모르나,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장면은 모두 필자의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0년 전 한 일본 업체의 소프트웨어 컨버전 작업을 할 때였으며 네 번째는 얼마 전 일본 SI업체의 임원을 만났을 때였다."한국 회사들이 소개하는 소프트웨어들을 보면 한결같이 최신 기술로 꾸며져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기술적 깊이가 떨어지고, 설계 및 관련 자료가 거의 없고, 테스트를 충분히 하지 않아 버그가 많고, 결과적으로 날림 공사와 같습니다."일본의 중견 SI업체 임원인 나카지마씨의 말이다. 개발자 출신인 필자는 무언가 변명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도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또한 일종의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정해야 했을까? 아니면 변명이라도 해야 했을까?얼마 전 ‘네트로21’이라는 웹 에이전시 업체의 부도 소식을 들었다. 작년에 동경 아이파크(i-Park)에서 네트로21의 임원을 만난 적이 있었기에,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업체이다. 네트로21은 매출액면에서 볼 때 그리 큰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일찍이 1997년부터 웹 에이전시 업체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국내 웹 에이전시 협회의 회장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에도 진출하여 일본 업체와 수십억 원의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신문 기사도 있었고, 국내 IT인력을 일본에 취업시키는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 업체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일본 진출의 모습과는 달리, 무리한 일본 진출이 회사의 재정을 급속도로 악화시킨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많은 한국 업체들이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된다.일본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우리의 업체들과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본 업체와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몸소 느껴봤을 것이다. 그 차이는 단지 문화적 차이라기보다는, 일을 하는 방식의 차이이고 결과물의 완성도에 대한 차이이다. 일본에서는 무엇이든 3년 이상 하지 않으면 그건 했다고 말하지 않는 정서가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꼼꼼하고 완벽하게 하는 것을 추구하며, 그것은 IT 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대충주의와 철두철미의 차이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국내 모 업체가 자신들이 개발한 e-Biz 솔루션을 일본 업체에서 관심을 가져서 데모를 한 일이 있었는데, 일본 업체의 담당자가 좀 더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시스템 셋업과 매뉴얼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한 국내 업체는 그 쪽에서 원하는 조치를 취해주고 연락을 기다렸는데,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긍정적인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 업체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수백 쪽의 검토 자료와 함께 500개가 넘은 질문이 피드백 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에는 자신들이 간과했거나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었으며, 그것을 본 국내 업체의 사장님과 개발팀은 완전히 질려버렸다고 한다. 이 일이 TV 프로그램의 '진실 혹은 거짓'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일본에서 이와 같은 일은 아주 일반적인 사례이다. 철두철미함. 그것이 바로 그들의 핵심 키워드이다.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철두철미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던 계기가 있다. 10년 전 필자는 한 일본 업체의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하고 국내 환경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그때 사용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C였으며 최종 실행 파일의 크기는 대략 200KB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하지만 그 200KB의 작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C 함수들은 모두 3000개가 넘었고 모두 의미 있는 상세한 주석이 달려있었다. 소스 파일 개수 또한 3000개 이상이었고,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관련 문서도 수천 페이지가 넘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하는 의문을 가졌고, 또한 소스를 보면서 프로그래밍 기술면에 있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솔직히 프로그래밍 기술 자체만 놓고 본다면, 국내의 유능한 개발자들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체계적이고 성실한 설계와 프로젝트 관리, 상세한 보조 자료, 철저한 유지 보수. 일본 소프트웨어 업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업체들에게도 똑같이 요구한다. 지난 10년간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러한 일본의 철학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다. 이것은 특히 SI, SM, 솔루션 등 엔터프라이즈 IT에 해당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사실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한국 업체들에게 개발 용역을 주거나 또는 한국 엔지니어를 데려다 쓰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업체와 엔지니어들이 일본의 철두철미한 개발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단지 일본의 방식일 뿐이고,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우리의 '빨리빨리' 방식은,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또한 빨리 적응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는 논리이다. 필자도 그것에 동의한다. 적어도 그것만은 전세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있기 때문에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 높은 경지를 존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는 분명히 있고 그것이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세계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훨씬 나은 체계가 있어서 그들에게 그것을 존중받든가, 아님 그들의 체계에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대단한 기반 기술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업계로서는, 겉포장만 화려하다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빨리빨리' 방식을 적용한 대가로 기반 기술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그것은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다.물론 일본이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너무 꼼꼼하고 너무 철저하다. 일본의 그러한 완벽주의적 정서가 일본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이미 선진국의 대열에 입성한 일본 스스로 풀어야 할 '배부른 숙제'이다. 왜 수많은 외국의 전문가들이, 한국이 아직까지도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철두철미함의 부족'이라고 얘기하겠는가? 직접적인 IT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많은 대형 사고들 또한 그러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무엇을 하든 더욱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어려운 숙제이다.오늘도 국내 모 업체가 일본에서 몇 십억 원의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뉴스를 본다. 하지만 수많은 국내 업체들이 일본에 진출하여 계약까지는 어찌하여 성사시켰으나 이후 품질 문제로 페널티를 물게 된 수많은 사례는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패 사례를 감추는 것은 IT 업계에서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마인드를 바꾸자. 아니면 변명을 준비하든가지금이라도 정부와 업계는 신기술 도입 및 이용에만 급급하지 말고, 그것을 확실히 소화하고 체계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철두철미한 마인드'를 보급하는데 힘 써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구현보다 기초와 원칙을 중시하는 교육 시스템, 충분한 기획 및 설계 기간, 철저하고 성실한 프로젝트 관리 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또한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의 방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무책임한 낙관주의와, 그러한 변화는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패배주의를 경계한다.우리는 변화해야 하고 또한 변화할 수 있다. 만일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몇 십, 몇 백 번에 걸쳐서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은 곤란합니다'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할 것이다. 이도 저도 못마땅하다면 훌륭한 변명거리라도 준비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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